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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ul 17. 2018

번아웃으로 마음의 문이 닫혔을 때

당신이 지쳐있을 때, 당신의 9V친구는 누구입니까

요놈이 이 초복 찜통더위 속에서 날 구했다. 날 정말로 살려냈다. 사연인즉슨, 내가 매일같이 손가락으로 만져주는 터치 디지털 도어록이라는 놈과의 이야기다. 2년째 스킨십으로 친해진 나를 놀려먹기라도 하듯 비밀번호를 맞게 눌러도 열리긴 커녕 자꾸 깜빡깜빡 거리는 거였다.


'응, 갑자기? '


얼마전 허리를 삐끗한 바람에, 막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재활(?)겸 걷기 운동을 가로수 그늘 산책길에서 설설 해볼 참이었다.


그런데 다행이(고양이)가 쪼르르 현관까지 따라온 걸 보고도 문을 쾅 닫아 버리고 만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손이라도 흔들어 주기 위해 현관문을 다시 열려고 하는데, 예상치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어라? 왜 안 열리지?'


밖은 체감온도가 35도를 웃도는 찜통더위라 땀은 삐질삐질 나는데, 이건 실제 긴급상황이었다. 아, 역쉬 인생은 실전이로구나.

도어록 손잡이 위에 '열쇠'라고 전화번호가 써 붙어 있어서 전화를 했는데 여차저차 사정을 말하니 열쇠집 아저씨가 수화기 너머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안쪽 건전지가 방전된 것 같은데, 가까운 편의점에서 9V(볼트)짜리 건전지를 사야 돼요"


"9V 건전지를 바깥문 어디쯤 튀어나온 곳에 대보면 급속 충전이 되니까 해보세요."


처음엔 전화기 음질도 안 좋고 해서 '편의점'과 '구볼트'라는 말만 긴가민가하게 듣고서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어느새 높은 습도로 온 몸이 끈적끈적 X2 힘들어요 상태가 되었다.

불쾌지수 송


때마침 손잡이 아래쪽 도어록 밑동에 '디지털 도어록 24시 A/S'번호가 쓰여있는 걸 발견했다. 크로스체킹(?) 확인 차 바로 전화했다. 통화 중이란다. 먼저 전화했다면 좀 짜증이 났을 것 같았지만 누구 탓도 아니었다.


편의점으로 향하며 네이버 검색을 했다. 비슷한 디지털 도어록은 많은데 똑같은 건 없었고, 툭 튀어나온 것은 아직 발견하지 못해 살짝 우려스러운 상태였다. 찾아보니 9V 짜리 건전지로 급성 충전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착하게 바로 앞 슈퍼를 두고 편의점까지 걸어갔다 왔다.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도어락에서 두 개 톡 튀어나온 곳에 대보아도 소용이 없길래 으아 X 됐구나 했는데,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1분 정도 가만히 대보니 삐비 빅 하며 달칵하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활짝 열리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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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상태이거나 마음의 문이 닫혔을 때, 나만의 은밀한 '비밀번호'를 눌러봐도 아무 소용없을 때, 가장 필요한 걸 깨달았다. 나를 100% 충전해줄 친구가 아니라(불가능하다), 급속 충전으로 C상태에서 B상태로 올려줄 9V 짜리 친구가 필요하다는 걸.


(A상태는 가장 평이한 상태이고, B상태는 힘들지만 스스로 A가 될 수 있는 상태이며, C상태는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줘야 하거나 의지에 따라서 스스로 아예 바닥까지 찍은 후 겨우 B까지 올라갈 수 있는 마음 상태- 속절없이 그 이하로 떨어지면 충동적 선택을 자행하기도 한다)


이 '구볼트 친구'는 가족일 수도 있고, 지인일 수도 있고 애인이거나 고양이나 강아지일 수도 있고 새일 수도 있으며 꽃일 수도 있고 영양가 있고 맛있는 (좋아하는) 음식이나 책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강의일 수도 있고 글쓰기일 수도 있으며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9V 짜리 친구가 많은 사람은 우울에서 헤쳐 나와 새 삶을 살아간다. 지금부터라도 친구를 사귀어 놓아야 한다.



커버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검색 '마음의 문'

p.s: 오늘도 저의 9V가 되어주시는 브런치 구독자 여러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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