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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an 19. 2019

내가 정말 간절하지 않아서 일까?

간절함, 절실함만으론 설명되지 않을 때가 있다

상담할 때 충고이자 답변으로 할 수 있는 만능키 같은 말이 하나 있다.

그건 네가 절실하지 않은 거야


나도 상대방의 간절함을 지적질해서 굳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그건 나의 짧은 생각이었다.


지금 그 사람 앞에 느껴지는 벽은, 그냥 그 사람의 기질이거나 자질(타고난 본성적 체질)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현재 노력하는 중이고, 그래도 잘 안 되는 중이다. 나름대로 오랫동안 노력해봤지만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굳이 그렇게 안 살아도 다른 방법으로 잘 풀릴지는 모르는 일.


그렇다면 애당초 지금보다 더 절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니 절실함과 무관한 것이다. 노력의 정도가 절실함이 적었기 때문에 약했다고? 함부로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그게 그 사람의 최선이었다면 어떻게 말할 것인가.


사람은 개인에 따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게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문제라서 오래 걸리거나 때를 놓치기도 한다. 그건 앞서 말했듯 타고난 기질이거나 자질 때문에, 혹은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 속에서 쌓아온 행동양식의 결과일 수도 있는 거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방어기제와 맞닥뜨리는 사람의 한계를 과연 '절실함'만으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른 원인으로 시기적인 흐름상 운의 문제이거나 불가피한 환경•상황적  문제 또는 담을 수 있는(감당할 수 있는) 그릇의 문제일 때도 더러 있다. 그걸 절실한 마음으로 뒤엎으라는 건 '다시 태어나라'는 말에 비견할 충고다.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관계는 이어나가야 할 때가 있다. 그 '관계'는 '꿈'일 수도 있겠다. 그때 그 관계가 어렵다고 해서 '절실하지 않은 것'이란 말은 자칫 위험하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순 없지 않은가. 외부 요인을 다 무시하고 어떻게 지금 당장 절실함 때문에 버티지 못하는 거라고 할 수 있는가. 어쩌면 그 벽(틀)을 깨부수고 벗어나야 하는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노력이면 다 된다'는 식의 충고를 비꼬는 '노오력'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특히 간절함으로 나오는 투지와 같은 태도는 목표치에 대한 어떤 성과보다 노력하는 과정에서 외부 시선을 의식하는 인정투쟁에 매몰되기도 쉽다.


내가 생각하는 이 충고의 대안은
'꾸준함'이다.


사실 절실함이 없어도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그러나 꾸준함이 없다면 그건 죽음과도 직결되는 일이다. 또한 절실함이 개인에게 더 집중되는 영향력이라면, 꾸준함은 외부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는 태도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 +(플러스) 꾸준함,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내면의 견함이면 된다.


인디언 어느 부족은 기우제의 성공률이 100%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리기 때문이라고.


무언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하나씩 하나씩 집중하되 운전하듯이 가까이도 보고 멀리도 보며 계속하는 힘이 더 중요하다. 그때야말로 행운이라는 '기운'이 나를 도우러 슬금슬금 찾아오기 때문이다. 성과의 기준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다 보면 끝도 없이 무력해진다. 열등감 때문에 진전이 더뎌진다.


시도하고 있다면 잘 안 된다고 한 번에 힘 빼지 말자. 에너지를 비축해두면서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것도 삶의 지혜다.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함은 반드시 보상받는다. '차트 역주행' 같은 거 말이다. 꾸준하자. 꾸준함은 실전 속에서 귀한 경험(연습)으로 남을 것이다. 꼭 절실한 것만이 모든 해답과 진리는 아니라는 걸 잊지 말자. (이동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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