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소심한 사람이다. 어릴 적엔 버스 하차벨을 못 눌러서 다른 사람이 누를 때까지 기다리다 다음다음 정류장에 내린 적도 있다. 그때와 지금 내가 달라진 건? 하차벨 누를 용기를 내며 이렇게'생각'하는 거다.
'뭐 어때, 누가 보든 말든'
실제로 누가 본다한들 큰 상관이 없다. 심지어 내가 크게 자빠져도 그들은 날 기억하지 못한다. 얼마 안 가 싹 잊는다. 만약 내가 하차 벨을 누른다고 누군가 영상을 찍어 올린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 타인의 시선은 괜한 나의 생각, 착각일 뿐이다. 그저 나만 이겨내면 되는 것. '창피하다'는 나의 압박 의식을 잠깐만 이겨내면 그만이었다. 지금그걸 깨달은 채 사는 게,내가 어릴 적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점이다.
또 나는 일부러 무대에 자주 올랐다. 일대일로 말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내가 무대 경험 덕에'일대다'로 이야기하는 특기를 가지게 되었다.대안적 용기라고 할까.
대학 내에선 조 대표 발표자를 자원해 도맡았다. 성적이 낮은 친구들을강의실에 모아놓고 스터디를 결성해 강의도했다(역시 가르치는 게 가장 많이 남는다). 실제 평균 C-인 친구들이 평균 B+까지 올랐다. 그 덕에 교수님들의 '추천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대학 내 행사가 있으면 MC 사회도보았다. 대학 밖에서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거나 주관했고, 가요제나 축제가 있을 때도 기회만 닿으면 무조건 나갔다. 잘해서 한 게 아니었다. 맨 몸으로 부딪혔을 뿐이다. 결핍은 충동과 의욕을 만들고 경험을 만들어 인간을 조금씩 완성하는 효과가 있다.
맨 처음엔 무대 공포증을 이기기 위해 했던 것이었는데, 찍어둔 영상으로 1차 지원하여 너목보에서 '실력자'로 섭외 전화를 받기도 했다. (물론 실력이 안 돼 정중히 거절했다)
지금은 무대 위 경험 덕에 돈을 번다.백화점 사원 시절엔 1층 최고 매출을 연이어 기록하기도 했고•아웃렛 행사매장에서 판매고를 전국 탑 순위까지 올렸다.그다음으로 입사한 직장에서는 (콘텐츠 스토리텔링) 사내 강사도 했다. 틈틈이 SNS에 라이브 방송도 했다. 퇴사 후엔 이런 경험을 살려 자체 강좌를 열어 모집했고, 경력이 쌓이자,퇴사 학교에 섭외되어어느새 2년 차 글쓰기 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감사하게도 출판사 몇 군데로부터 글쓰기 책 출간 제의를 받았다. 그중 한 군데와 계약하여 집필을 마쳐 지금은 편집 단계에 있다. 곧 출간 예정.
현재 나는 초•중•고•대학교, 청년, 어르신까지 전연령 대상으로 전국 출강을 나가고 있다. 영업이 아닌 100% 섭외로만 출강한다. 이젠 나만 좋아서 나서는 무대가 아니다. 만족도 높은 수강생 후기는 지금 내 강의를 증명한다. 이제는 나 자신뿐 아니라,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애초에 문예창작 전공자도 아니었고 등단 작가도 아니었다. 강의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었다.게다가 시선 공포증까지 있던 소심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지금 먼저 연락이 오는 섭외로만 전국 출강을 나가고 있다. 서울시청을 포함하여 공공기관과 기업에도 당당히 글쓰기 강사로 이름을 올렸다.
경험을 얻는다는 생각, 하나 배운다는 생각으로 잠깐만 창피하면 내 인생의 경험치 +1이 올라간다. 이 숫자의 의미는 작지 않다. 내 인생에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나는 자신 있게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버스 하차벨을 누르는 용기만 있다면 말이다. 바로 내가 살아있는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