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답'은 없더라도 '길'이 있는 건 분명하다. 정해진 답을 맞히는 것보다 새로운 길 속에 풍경을 보며 내가 인지하지 못한 세계를 보는 것이 독서이다. 걷다가 걷다가 보면 높은 곳에 다다라서 마치 거인의 어깨에 오른 듯한 시야에 짜릿함을 만끽하게 된다.
그 길에 한 걸음 내딛는 건 책을 두 손으로 받친 후 한 장 손가락으로 펼치는 행위부터다. 사람은 보통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계속쓰다 보면 책을 내고 싶어 지는데, 그 이유가 바로 길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본 걸 공유하는 건 자랑하려는 것뿐만이 아니라, 앞서 걸어간 이의 발자국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재밌는 건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가 또 새로운 길을 하나 개척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난 우락부락한 근육질에 전신 용문신한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나보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다.
나는 작가다.
흔히 '작가'라고 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이미지가 '독서량이 상당한 사람'일 거라고 짐작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사실. 대부분의 작가들 역시 활자 중독이나 다독가들이 많다는 걸 작가 인터뷰를 보면 알게 된다. 문제는 난(이동영 작가인)데, 뭐 실제로 독서량이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 같은 다독가의 반열에 오른 것도 아니다.
내 책 ≪너도 작가가 될 수 있어≫에서 밝혔듯, 한때 난독증으로 고생을 한 바가 있다. 지금도 난독 증세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내가 겪는 증세는 어쩌면 표준적(?) 난독증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 몇 줄의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정신을 잘 못 차린다. 온갖 잡생각이 나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에 너무 많은 생각이 잔가지로 뻗어서 그 책의 주제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인사이트를 얻는 '득템'도 한다. 하지만 진짜 내 문제는 그러다 결국엔 책이 내 자아를 해체해버리는 지경에 이를 때이다. 나는 그때 그 책을 덮어 버린다.
그렇게 해서 덮어버린 책만 수 백 권은 될 것이다. 따라서 완독한 책이 많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만큼이나 글을 쓸 수 있는 이유에 독서가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함께한 독서모임의 반강제적 독서덕분이었다. 모임에 나와 그 책에 대해 아는 척 이야기하며 지적 허영심의 끝을 달리려면 완독을 어떻게든 해야만 하는 게 미션인 거다. 그게 벌써 올해(2019년) 10년 차에 접어들었으니 꾸준함만 한 재능은 과연 없으리라.
그래 봤자 책인 걸.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책 안 읽는 독자 모두가(어딘가 이상한 표현이다) 난독증 때문에 독서하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책 보다 더 재밌는 시대에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으니 살 필요도 없다고 생각, 아니 생각조차 안 할 대상일지 모르겠다. 그래 봤자 책인 걸.
그거 아는가? 책 읽는 재미에 빠지면 신이 난다. 요즘 참 신날 것 없는 세상 아닌가. 넷플릭스나 유튜브나 게임도 신난다고? 아니, 생산적인 이미지를 품고 있는 독서와는 다르게 뭔가 자괴감 내지는 자책감, 헛헛함이 들 때도 더러 있을 것이다. 거기에 빠졌던 시간이 길면 길수록 너무 과하게 몰입했구나, 좀 낭비했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이유가 있다. 같은 시간에도 책은 한 권에 딱 집중하게 되는데 반해, 넷플릭스나 유튜브는 내가 자주 보는 영상을 분석해 추천해주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 그러니까 넷플릭스나 유튜브는 '언제든지' 마음을 먹지 않아도 클릭 한 번에 시청을 시작하지만 책은 마음을 먹어야만이 '시간을 내고, 날을 잡아야만' 읽는 것으로 우린 쉽게 생각한다.
이제 그 해결책을 강구한 이동영 작가의 생각을 공유하니 평소 '책을 읽긴 해야 하는데' '저번에 산 책, 빌린 책, 선물 받은 책 읽어야 하는데' 하던 분들은 따라 해서 습관을 만들어 보아도 좋겠다.뭐가 어려운가. 그래 봤자 책인 걸.
1. 접근성 높이기
평소 들고 다니는 가방에 짐을 최소화할 때마저도 책 한 권은 꼭 넣고 다녀보자. 책 무게 때문에 가방이 부담스럽다 해도 그 책을 펼쳐서 읽기 전까지는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반년이고 계속 들고 다니는 거다. 아무리 냉혈한도 그 어두운 곳에서 소리 없이 외치는 책의 존재를 반년 넘게 외면하진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인성부터 쌓.. 아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그 책이 있다는 부담을 가방을 멜 때마다 늘 염두에 두길 바란다. 장담하건대, 6개월 안에는 그 책을 펼치게 된다. 읽게 된다. 안 읽고 못 배긴다. 그 책이 당신을 심심함이나 외로움 따위에서 구원할 시간이 반드시 당신에게 찾아온다.
(혹 집돌이•집순이 스타일이라면 눈 뜨면 보이고 손 뻗으면 닿는 거리에 책을 배치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2. 결핍 만들기
결핍은 언제나 좋은 동기가 된다. 아프지만 긴 역사로 두고 보면 그 희생과 결핍 덕에 역사가 진보한다. 한 개인의 인생도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결핍은 알고 싶은 지적 호기심 같은 게 아니다. 바로 '다른 매체 차단'으로 인한 결핍을 말한다.
스마트폰 없이 책을 들고 하루 종일 다닌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TV를 안 보거나 PC를 안 켜거나 약속을 취소해 시간을 임의로 텅 비워 버리거나 하는 것들. 물론 가끔씩 상대방이 먼저 약속을 깨 주면 고마울 때가 있는데 그때 선택을 한 권의 책 읽기로 한다면 훨씬 생산적인 시간으로 채웠다는 뿌듯함에 새로운 친구 하나를 얻은 기분도 들 것이다.
내가 책 말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차고 넘쳤을 땐 책은 너무 만만해 보이지만, 무인도에 책 한 권 있다면 그건 하나의 종교가 될 수도 있다. 언젠가 책 읽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하고 있다면 그 입 다물고 결핍을 조장해보라. 감히 말한다. 그 결핍이 나의 무의식을 깨우고 곧 다른 세계에 풍덩 빠지는 독서를 선택하게 할 것이니까.
3. 타인의 시선 의식하며 읽기
얼마 전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서 안 내려오던 책이 있었다. ≪신경 끄기의 기술≫. 그런데 타인을 의식하라니, 이게 뭔 소린가. 한 번만 더 생각하면 말이 되는 소리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낯선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각도가 딱 책을 읽는 각도라고 한다. 전철에서, 버스에서, 정류장에서, 카페에서, 거리나 공원 벤치에서, 도서관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서점 등등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섹시함'을 느낀다는 거다. 우수한 유전자를 암시하는 아우라가 나는 것일까.
독서라는 동기부여는 이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읽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다. 그 시선을 은근히 즐기는 관종력을 뽐내며 책에서 인사이트를 얻는다면 그만인 거다. 관종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나쁜 것만도 아니다. 굳이 창피할 것도 아닌 것이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어하는 존재이기에 그렇다. 타인의 시선은 나의 존재감 발현이니까.
타인의 긍정적 시선이 착각이어도 상관없다. 누군가 시집을 읽는 내게 다가와 '시집.. 좋아하시나 봐요?' 하는 결실(?)이 없대도 무관하다. '나는 책 읽는 섹시한 사람'이 되는 동시에, 이내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 신나는 한 명의 독자가 될 테니까.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벌써 11월이다. 하도 책이 안 팔려서 출판시장이 만든 캐치프레이즈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했다.(다른 설도 많지만.) 오죽하면 가을을 책 읽는 행위로 낙인까지 찍었을까. 곧 다가올 새해에 다짐하기를 책 몇 권 읽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 많을 것이다. 근데 올해부터 돌아보자. 몇 권이나 제대로 읽었나?
자, 이제 가방에 책 한 권 6개월 이상 넣고 다니다 스마트폰을 한강에 던지고서(?) 타인의 시선 안에서 독서 동기를 유발해보자.
삶이 계절과 같다면 가을만이 아니라, 당신의 모든 삶이 독서의 계절이다.
p.s: 이 3가지 독서 접근법은 만약 아이가 있다면 자녀 독서교육에도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