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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r 20. 2016

퇴사(이직)를 고민하는 청춘에게

입사를 꿈꾸던 청년은 이제 퇴사를 꿈꿉니다

비전이 있는가

미션이 있는가

성장할 수 있는가

돈을 모을 수 있는가

적성에 맞는가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행복한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필요한 질문)

애석하게도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하나같이 0.1초의 망설임도 없는 'No'라면, 더이상 직장을 다닐 이유는 없는 것이다- 라고 말하지만 당장 생존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추구하는 맛있는 것도 먹고 사랑도 하고 지혜도 쌓고 꿈도 이뤄야 하는 한 번 뿐인 인생에 당장 돈이 문제인 현실.


이것은 비단 개인적 문제만은 아니기에, 퇴사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자기계발 좀 해서 경쟁력을 키워라' 따위의 미친 조언이나 동기부여는 좌절감만 심어줄 뿐인 것을 필자는 잘 안다. 스펙좋은 나랏님들의 정치를 믿고 싶지만 각종 이해관계와 역학적 산술을 바라보자면 수저계급마저 독식하고 역이용하는 사회에서 물고뜯는 정치인들의 프레임은 개인으로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차악이라도 투표는 하자.)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진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보더라도 일단 생리적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생존이 보장돼야 자아실현의 단계까지 생각이라도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문제는 생존이다.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미치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답이 없다. 퇴사를 한다고 뭐가 나오나? 돈 많은 백수나 기적은 당장에 쉽지가 않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데 책을 펼치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사람은 없다. 내가 사는 오직 사람 뿐인 세상에 사람이 없다.


지금 몇 살인가?


우리나라는 나이와 학력을 따지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나보다. 가끔은 성별과 인종까지도 따지는 게 현실이다. 엿같다. 늘어지는 거다. 씹어먹어도 개운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몇 살인가에 따라 그만 둘 수 있는 게 포기인지 선택의 차원인지의 사이즈가 나온다.

출처: 개그콘서트
퇴사하고 뭘 할 것인가?

그것으로 생존이 가능한가?


어찌 생존했다치자, 그럼 다음 단계로 차근차근 올라가 자아실현까지 이르는 데 얼마나 소요될 것이라 예상하는가. 일이 없으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감정이 내려앉는다. 우울해진다. 물론 잠시 놀 수 있다면 자아실현이라는 착각이 들지만 이내 시간이 더 지나면 사람은 일을 해야만 한다. 뭐라도 해야만 한다. 그게 인간이다. 지금처럼 소속감 없는 노예인 채로, 좋은 것을 생산해내기보다 상사 혹은 갑님의 마음에 드는 걸 생산해내어야 한다는 게 미칠 노릇인 것이지 일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일의 본질은 심심한 존재인 인간에게 본디 즐거움을 제공한다.


퇴사 후 실컷 놀았다. 당장에 놀다가 생긴 텅 빈 주머니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극단적으로)창문조차 없고 방음도 되지 않는 고시원에서 편의점 알바를 언제까지 하며 연명할 것인가. 그건 연명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산적인 자기계발이라도 해놓았으면 버젓한 저작권이나 특허권이라도 출원할텐데 뭣도 없다.(언젠가는 이것마저 알파고같은 인공지능 기기가 알아서 편의점 포스에서 훨씬 빵꾸없이 계산할 것이다.) 마포대교를 향해 걸어가면 순찰차가 나의 수상한 거동을 알아차리고 졸졸졸 따라온다. 이제 곧 뛰어내릴 수 없는 높은 펜스를 설치한다고 한다. 마포대교는 더이상 자살의 성지(?)가 아니다. 애석하지만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던 사람들은 마포대교가 아닌 어딘가로 또 흘러들어갈 것이다. 좀 살자, 살아보자 이것들아!

이 모든 것이 퇴사의 결론일까? 뭣도 없이 이 나이에 퇴사를 실행한 결과물일까?


나는 누구인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지옥같은 걸 경험해야 하나. (필자가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삶에서 지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첫번째는 학교였고, 그보다 강력했던 곳은 군대였다. 이하 생략하기로 하자.)꿈,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체성의 정확한 이해이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끊임없이 갈구해야만 신자유주의하에 '자기계발을 위한 자기계발'을 강요당하면서 무기력하게 사는 일이 없을 것이다.


쩌는 패기 장착


어쨌든간에 퇴사를 고민한다면 적어도 쩌는 패기가 있어야 한다. 능력이 있어서 해낸 과거보다 패기로 부딪힌 왕년을 우리는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 그 희미한 자신감으로 순간순간을 버텨내기도 한다. 무엇을 고민하는가? 패기가 있다면 때려치우라. 그러나 패기만 있다면 그 때려치우려는 생각을 때려치워야 할 것이다.

회사에 불만있나? / 해방을 원합니다. 자유롭고 싶다구요! /뭘 모르는 구만 자네. 허허. 이제 철 좀 들게나. 자유? 자본주의에 그 딴 건 없어. 걍 잠자코 돈 벌 생각이나 해.


대책은 나의 능력과 패기가 둘 다 있을 때 가능하다. 성취하고 수익을 내는 능력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 잘 전달하는 능력 등이다.


퇴사를 고민한다면 적어도 이 세 가지 능력을 패기를 기반으로 최대한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그건 초능력이 아니다. 퇴사를 고민하는 힘으로 할 수 있는 당신의 충분한 역량이다. 이것은 앞서말한 상대적 경쟁력이 아니라, 절대적 존재가 갖는 가치차원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리고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최대한 재료를 끌어 모으도록 하라. 지금 퇴사를 고민하는 회사마저도 나에게 가르치는 것이 있고, 내가 얻어낼 것이 있다. 뽑아낼 것은 모조리 다 뽑아내는 거다. 회사만의 노하우!(그딴 거 진짜 없을 수도 있고, 있어도 몇 년 근무하지 않으면 알 수 없기도 하다.) 입사할 때 회사를 위한 마음으로 이제 나를 위해 행동할 때이다.


자, 이 글을 다 읽었다면 이제 결심하라.


한 달 뒤에 퇴사하겠다고 내일 회사에 통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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