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은 고민으로 해결 못하기에 고민인 것
고민을 상담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입니다.
첫째, 들어줄래(털어 놓고 싶어)
둘째, 말해줄래(듣고 싶은 말이 있어)
셋째, 알려줄래(신박한 해결방법이라면 설득당할 용의가 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민이라는 건 발상하는 순간부터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고민을 풀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은 나름 인간적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보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를 잘 받아들여 적당한 긴장감을 발현시켜주고 곧바로 감정에서 사라져만 준다면 되려 긍정효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습니다. 고민하는 나를 자책할 필요가 없는 이유죠.
'답답'만 하면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못봅니다. '답'보다 우선 문제의 원인을 알면 한결 나아지죠. 감성보다 이성의 촉수가 세워져야 하는 순간이예요. 그것이 해결은 아니겠지만,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안절부절못하는 것보단 훨씬 좋습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라도 고민상담을 하려 시도하겠지요. 이것으로 수익을 얻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빅데이터로 심리상담의 발전도 이룩했죠. 아주 먼 옛날로부터 자기 자신 혹은 국가운영을 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통용되던 명리학, 점성술 등이 진화 혹은 변질되어 현재의 우리 일상 속으로 스며들기도 했습니다. 죽은 영혼과 접촉해서 온갖 고민을 해결하겠다는 취지의 굿도 그렇고요.
듣고 싶은 말을 그런 믿음의 실체들로부터 듣는 나름의 합리화에 고민이 '해결'되었다기 보다는 걱정이 '덜어지는' 심리적 현상을 우리는 '효염이 있다'고 믿고 이용하곤 합니다. 현명한 누군가는 그 과정 속에서 더 돈을 쓰기보다(부적을 사거나 하는 것보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하는 막연한 지혜라도 얻어내서 스스로에게 파고드는 질문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겨날테니 고무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라 할 수도 있겠죠.
자, 이제 고민상담을 통해 방법을 깨달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을 안다고 해서 또 다시 문제를 발생시킬지도 모르는 '시행착오'를 과연 피해갈 수 있을까요? 흔히 우리가 쓰는 '어차피'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於此於彼(어차어피)라는 말이죠. '확신할 수 없으나 뻔한 결과'를 표현하려 할 때 드는 단어입니다. 이는 몇 살을 먹어 지혜가 하늘을 찔러도 수용해야 하는 진리이죠.
어차피 삶은 죽음이며, 어차피 사랑은 이별이고, 어차피 취업은 퇴사이고, 어차피 꿈은 현실과 다르고, 어차피 어제는 돌이킬 수 없으며, 어차피 오늘은 지나간다는 진실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에서 의미를 찾고, 다시 사랑을 하고, 일하고, 꿈을 꾸고, 어제를 돌이켜보며, 오늘을 사는 건 뻔한 귀결보다 중요한 나, 그리고 우리가 소중합니다. 뻔한 결과치로 설명할 수 없는 뻔뻔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상처 받는 걸 알면서 다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그 사람에게 상처를 허락하는 일, '그 사람에게만은 내가 상처를 받아도 좋다'라는 무의식의 위험한 전제가 예상되는 삶을 스스로 허용하는 것이죠. 포기가 아니라, 선택의 차원에서 살아갈 때 인간은 삶의 가치를 얻는다고 믿으니까요.
고민이 있나요?
그럼 살아있네요.
조금 더 뻔뻔하게 살아보세요.
소중한 가치를 놓치지말고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이동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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