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서른 살이 된 이후로도 여전히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10대와 20대에 비해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상대적으로 견딜만했다. 그래서 쉽게 살 수도 없고 쉽게 죽을 수도 없었다.
특히 19살에 입대를 했기에 '그 군 시절도 견딘 나에게' 서른 초반의 시련(예를 들어 한겨울에 보일러 없는 원룸에서 산다던지 하는 경험들)이 너무 사소하게 느껴졌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군대를 일찍 다녀오라는 말인 것을 이제야 느낀 게 맞는 건진 모르겠지만. 사서 고생할 젊음이 남성에게만 있는 게 아니니 음, 확실히 아닌 듯하다.
서른 살 중반이 되고서도 여전히 생은 힘들지만 잘 버티고 견디고 참고 있다. 노력하고 있다. 10대와 20대에는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몰랐다면, 30대가 되니 그 '노력을 선택하는 법'을 깨달았다랄까. 운도 어느 정도 따르면서 내가 잘하는 것에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었다.
30대인 현재에 상대적 만족감이 높다 보니 당연히 억만금을 줘도 난 10대와 20대에 돌아가고 싶은 맘이 없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안다면 고민 정도는 해보겠다. 그래도 난 지금이 천만 배는 좋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다. 일단 살아남고 나니 그때의 내 '지랄'들은 아무것도 아닌 날이 되었다. 첫 이별의 아픔 따위도 그때 당시엔 가장 좋아하는 음식조차 삼키지 못할 정도였으나, 지금은 그 장면들을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살다보면, 살아진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의 시련에 너무 매몰될 필요는 없다는 거다. 나는 공황장애도 겪은 바 있다. 자다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휩싸이는 증상을 간혹 겪는다.
이렇게 로맨틱한 증상이 아니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제는 심해도 일 년에 한 두번 정도라서 평상시 기준으로는 회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병원에서 준 심전도 검사기기를 차고 잔 적도 있었지만 몸의 문제 이전에 마음의 문제였다는 게 그 증상의 결론이었다. 나를 무너뜨리는 감정의 극한에 다다를 때면 꼭 찾아온다. 가까웠던 누군가의 배신이나 나에 대한 오해를 심하게 할 때 등 관계에서의 갈등이 심할 때 내 마음은 좀처럼 통제가 어려워진다.
서른 살 이후로 나에게 그런 극단의 우울이 찾아올 때마다 어떻게든 생을 견디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 노하우(?)를 공개하니 아무쪼록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름하여 <A-B-C 컨디션 관리법>이다.
A 컨디션
A 상태일 때는 누가 손을 내밀어주지 않아도 넘어졌을 때 스스로 일어나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상태이다. 여행, 강연이나 책 등을 통해서도 주체적으로 회복할 수 있다. A 상태에서 보통 사람들은 영화나 공연을 보고 실컷 울거나 웃어 넘긴다. 나의 경우엔 글을 쓴다. 정화와 승화가 이뤄진다. 살아갈 '보통의 의지'만 있다면 거의 평상시에 가깝다.
B 컨디션
B 상태일 때는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거나 인정하는 말, 공감과 위로의 말, 관심 하나에 힘을 낼 수 있다. 주위의 관심, 하다못해 고양이만 곁에 있어도 일어날 수 있다. 누군가 맛있는 걸 사주거나 용돈 같은 선물을 주거나 한다면 최소한 A상태로 회복이 가능하다. 동시에 자칫 잘못하면 C 컨디션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상태다.
C 컨디션
C 상태일 때의 상황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 이때는 끝까지 바닥을 찍고 튀어 오르는 수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 누군가의 말이나 내민 손이 전혀 눈과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 무너뜨리고 헛헛하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데,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은 상태라서 좀 전까지 애써 웃는 모습을 보였더라도 혼자가 되면 금세 무너지고 만다. 웃음을 보여도 겨우 내성이 쌓인 사회적 웃음일 뿐, 진실은 완전히 지쳐서 무력감이 가득한 방전된 상태인 것. 연결(나에 대한 집중)을 바라지만 너무 무기력해서 상대를 지치게 만들 정도이다.
기-승-전-살자!
이 지경(C컨디션)에 이르렀을 땐 혹 개인이 '죽음'을 생각하면 판단이 급격히 단순해져 큰일 날 수가 있다. 새벽에 잠 못 들거나 술을 진탕 마시면 이러한 판단력이 더 약해지므로 삼가야 한다. 특히 죽을까? 살까?란 질문은 거둬야 한다. 멘털이 붕괴되었을 땐 '이렇게 살까 저렇게 살까'라는 '기-승-전-살 생각'을 해야 한다. 차라리 내 슬픔과 아픔에 오롯이 자신을 담근 채 다시 살 궁리, 생을 떠올려야 한다. 잠수는 좋지만 너무 오래 숨을 참지 말자. 그래야 B 상태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래야 객관적인 말이나 위로의 말이 귀에 들어온다. 정신이 차려진다. 남이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비로소 내 존재가 진해지기 때문이다.
우울이 올 때면 수시로 점검하자.
내 상태가 지금 A-B-C상태 중 어떤 상태인지.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맞는 처방을 하자. 모든 선택은 옳다. 그것이 누군가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나의 생을 향한 몸부림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