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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작가, 책은 당분간 사지 않겠습니다

언젠간 당신 손에 가 있을지도 모르는 이 책들에 관하여

by 이동영 글쓰기
알라딘 서점에서 2,881일 동안 내가 산 책값

(굿즈를 포함하여)내가 그동안 알라딘 서점에서 산 책값만 무려 8백6십5만 원어치란다. 이런 건 왜 알려줘서 이 난리란 말인가!


내가 알라딘 중고서점에 내다 판 책은 기껏해야 10권도 안 되는데? 난 어디에 이 책을 다 두었단 말인가. 버린 적도 한 번 없는데.. 잠정 추산 약 1,500여 권이 내 방 1, 2층에 가득 차 있긴 한데...


(예스24에서는 같은 기간 동안 오로지 '신간'만 몇 백만 원어치를 구입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8백만 원 값이면 그 정도 되는 게 맞나.. 전자책까지 합하면 족히 몇 만 권은 되겠다. 아니 그전에, 8백만 원은 대체 어디서 난 거지?.... 미스터리다. 돈만 생기면 월세와 통신비 빼고 책부터 사고 나서 남은 돈으로 겨우 식비를 해결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다.나.다.

tvN 알쓸신잡

그렇다고 내가 청난 다독가는 또 아니다. 이 책을 다 읽었다면 더 짱짱맨이 되어 있었을 것이 마땅하다. 김영하 작가의 명언에 따르면,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서 골라 읽는 거라는데. 그분은 책을 많이 읽으니까 진작에 내가 위안 삼아선 안 되는 말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 난 다독가보단 차라리 장서가라고 해야 확하겠다.


이 표현도 조심스럽긴 하다. 전에 우연히 라디오 (메인) 작가님 댁에 독서모임 하러 간 이 있었다. 적당한 평수의 아파트 거실에 '바퀴 달린 3중 책장'이 몇 개나 딸려있는 걸 내 눈으로 본 이후(책은 빈틈없이 꽉 차 있었다) 함부로 스스로 '장서가'란 평은 하지 않고 살았건만.


'작가님은 그 책들을 다 읽었다'라고 독서모임 멤버분이 한 말을 떠올려보니 나와 퀄리티로는 비교할 바가 아닌 것 같다. 뭐, 지금 기준으로 객관적 양으로만 따지자면 나도 만만치 않은 책 보유자인 건 사실이다.


그 장서가&다독가 작가님은 책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오래 맡으셔서 출판사나 작가로부터 받은 책이 아마도 직접 산 책 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난 약 98% 이상이 #내돈내산 한 책이다. 가끔 서평단에서 책을 받거나 선물 받은 책이 있긴 했지만 2% 정도 되려나. 라딘 하면 또 중고서점인데, 이 많은 책을 놓고 보아도 고책 비율이 신간보다 적다.


그렇다면
나 이작가는 이 많은 책을 '왜' 샀을까?


알라딘의 '계산서' 총 공개(?)로 현타가 와서 '잠시 책 구입 멈춤'과 동시에 '분석'을 하기로 한다. 쩌면 무나 당연하게도 '읽으려고 샀다'여야 하는데, 그게 아니어서 이 글이 글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1. 책 쇼핑 우선순위라 쓰고, 책 쇼핑 중독자라 읽는다.

- <<논어>>에서 말하길,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그런데도 컬렉션 아이템이 하필 '책'이다 보니 다른 덕후-컬렉터에 비해서 욕(?)은 덜 먹을 거라 생각했을까.

나 스스로 작가라는 정체성에는 요 정도 책 소장 FLEX는 있어야 해! 하고 과소비를 했던 걸까.

아님 책을 살 때만큼은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고르면서 "어머 이건 사야 해!" 하며 꼭 읽겠다는 초심이 단지 초심에 그쳤을 뿐인 걸까.


결론을 말하면, 난 그저 '책을 사는 행위'가 좋았다. 누군가는 돈을 모아 명품을 살 생각을 하고, 누군가는 새로 나온 IT제품을, 누군가는 여행을 가는데 우선순위로 쓴다. 그 내적인 우선순위가, 외적인 시선으로 볼 땐 '중독'처럼 보이는 거다.라고 일단 우겨보겠다.


책을 사는 행위 자체가 좋다 보니 그저 꽂혀 있는 책의 제목들만 봐도 뿌듯하다. 내가 그래도 허튼 데 돈 안 쓰고 책 사는데 돈을 틈틈이 썼다면, 인생을 잘 못 산 건 아니지 않은가. 이 욕망의 마케팅이 우글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2. 인테리어 용으로 책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책 표지는 세상 예쁘다. 책장에는 빨주노초파남보로는 모자란 색상들의 연이 펼쳐진다. 난 '자기만의 방'이란 개념이 좋아서, 누군가를 방에 초대하는 걸 선호하는 편은 아다.하지만 누구라도 그냥 쓱 둘러보게 되면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들이 나란 인간도 덩달아 '있어 보이게' 만든다.


인스타그램(@dong02)이나 유튜브(이동영 글쓰기TV) 방송을 할 때 배경용으로도 딱 좋다. 있어빌리티. 아싸형 관종인 나에게 먹고사니즘 만큼이나 중요한 개념이다.


그냥 꽂아둔 것도 아니다. 마치 도서관에서 분류한 것 같은 분류작업을 무려 한 달 가까이나 한 결과로 지금의 인테리어는 완성되었다. 현관에 해바라기부터 걸어놓는 풍수지리 인테리어보다 책의 기운을 한껏 받는 책 인테리어가 나에겐 더 팔자에 맞다는 생각이 든다.


3. 작가와 강사에겐 많은 책은 분명 실용적이다. 이 시골집 주변에는 도서관을 가기 위해 버스로 1시간을 가야 한다.

난 '다 읽지는' 못해도 많이 읽는다. 앞서 말했듯이 도서관식 분류이기 때문에 관련한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나 강의 콘텐츠를 준비할 때 레퍼런스(참고자료)로 활용하기 딱 좋다.


자료야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온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책에 담긴 유료 콘텐츠는 생각처럼 다 공개되어 있지 않다. 내가 택한 분야의 고전과 트렌드가 정수로 집약되어 있는 책들은 분명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책이란 특성에 미루어 보자. 책은 치밀하게 기획•구성된 하나의 작품이라서, 저자가 담아낸 메시지의 주제와 그 '흐름'을 읽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콘텍스트로 해석하는 리터러시(문해) 능력이 온라인 텍스트보다는 실물 책을 볼 때 더 길러진다고 생각한다. 난 발췌독은 물론이고, 목차의 구성이나 문장, 문단, 소챕터와 소제목 등을 눈여겨보며 글쓰기 강의나 개인 원고를 쓸 소스를 얻을 때가 많다.


경험해봤으리라. 인터넷은 워낙 클릭의 유혹이 많아서 검색 중간에 다른 데로 빠질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 오프라인 상에서 오롯이 책만 집중해 관련 서적끼리 찾아 읽었을 때 훨씬 시간 절약이 되는 효과도 있다. '나중에 다시 봐야지' 하는 단순 스크랩이 아니라, 이미 잘 정리되어 한데 모여있는 분류 안에서 목표를 가지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고무적이다.


독서 진도가 좀처럼 나가질 않아 애를 먹는도 책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 침대 머리맡이나 화장실, 책상, 가방 등에 수시로 읽다 만 책을 노출해놓으면 어떻게든 반드시 읽게 된다. 그것도 '반복'해서 무한대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소장하는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나처럼 평소에 책을 빌려 보지도 않고, 산 책을 중고로 잘 팔지도 않는 성향이라면 밑줄을 치거나 메모를 하는데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1년에 100권? 같은 단위를 정해 '무작정' 읽는 것이나 나 읽었소 하고 마냥 누구에게 자랑하는 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독서'에 있어선 큰 의미가 없다. 그런 건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다. 책에서 말한 것 중에 한 챕터라도 제대로 내 것으로 소화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게 책의 효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유희적 책 읽기를 포함해서.) 그렇게 따져보면 책을 읽은 양이나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건 그 뒤에 딸린 부차적 문제에 불과하다. 책을 많이 읽고도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부차적인 것에 집중해서가 아닐까.



이제 더 이상 꽂을 데도 둘 데도 없어서,
당분간은 책을 안 사련다.


정말 소장해야 하는 책만 두고, 정리하려 한다. 팔든 버리든 나누든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겠다. 단, 가능하면 읽고 활용하고 최소 책값은 본전 이상을 취하고서. 침 얼마 전부터 월세나 식비도 들지 않는 본가에 내려와 살고 있어 적기라고 생각한다.


책을 당분간 사지 않겠다는 선언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물으신다면 나에겐 '습관'이 되어 버린 책 쇼핑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필요했다. (개인적인 듯한 이 글을 잘 뜯어보면 사실 책의 효용에 관해 말하고 있다)


추천받은 책, 읽고 싶은 책, 베스트셀러, 트렌드 분석을 위한 책, 독서모임 선정 책 등. 정말 못 참고 사고 싶다면 당분간은 2~3달에 1권 정도로 구입량을 제한할 것이다. 아니면 마치 '안식년'을 두듯이 책을 안 사는 '달'을 정해서 사지 않는 의식을 치러야겠다. 체적인 건 일단 첫 달을 성공한 다음에 알리는 걸로.


요즘처럼 책 시장이 안 좋은 시대에 작가•글쓰기 강사가 책을 사지 않겠노라고 선언하는 글도 참 이례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에 구구절절 사연을 이해한다면 납득이 갔을 거라 생각한다. 나처럼 장서의 괴로움이 있는 이에겐 사는 것보다 읽는 것이 더 중요한 미션이다. 앞으로는 책을 '무작정'사지 않고 '제대로' 사야겠다는 다짐이 이 글의 결정적 동기였다. 은 사는 게 좋다. 읽으면 더 좋다. 다만, 분수에 맞지 않게 과소비를 하면서까지 방에 쌓아두기만 하는 건 썩 좋지만은 않다. 미니멀리즘까진 아니라도 책의 효용을 잊지 말자는 말이다.


아, 결코 시장에 내놓은 내 책이 안 팔려서 떼쓰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찡긋) 름 베셀 기록했어요 :D


매일 공개 글쓰기 8일차 no.8


커버 이미지 출처: @golsa.golchini

https://brunch.co.kr/@dong02/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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