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를 포함하여)내가 그동안 알라딘 서점에서 산 책값만 무려 8백6십5만 원어치란다.이런 건 왜 알려줘서 이 난리란 말인가!
내가 알라딘 중고서점에 내다 판 책은 기껏해야 10권도 안 되는데? 난 어디에 이 책을 다 두었단 말인가. 버린 적도 한 번 없는데.. 잠정 추산 약 1,500여 권이 내 방 1, 2층에 가득 차 있긴 한데...
(예스24에서는 같은 기간 동안 오로지 '신간'만 몇 백만 원어치를 구입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8백만 원 값이면 그 정도 되는 게 맞나.. 전자책까지 합하면 족히 몇 만 권은 되겠다. 아니 그전에, 8백만 원은 대체 어디서 난 거지?.... 미스터리다.돈만 생기면 월세와 통신비 빼고 책부터 사고 나서 남은 돈으로 겨우 식비를 해결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다.나.다.
tvN 알쓸신잡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다독가는 또 아니다. 이 책을 다 읽었다면 더 짱짱맨이 되어 있었을 것이 마땅하다. 김영하 작가의 명언에 따르면,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서 골라 읽는 거라는데. 그분은 책을 많이 읽으니까 진작에 내가 위안 삼아선 안 되는 말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 난 다독가보단 차라리 장서가라고 해야 적확하겠다.
이 표현도 조심스럽긴 하다. 전에 우연히 라디오 (메인) 작가님 댁에 독서모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적당한 평수의 아파트 거실에 '바퀴 달린 3중 책장'이 몇 개나 딸려있는 걸 내 눈으로 본 이후(책은 빈틈없이 꽉 차 있었다) 함부로 스스로 '장서가'란평은 하지 않고 살았건만.
'작가님은 그 책들을 다 읽었다'라고독서모임 멤버분이 한 말을 떠올려보니 나와퀄리티로는 비교할 바가 아닌 것 같다. 뭐, 지금 기준으로 객관적 양으로만 따지자면 나도 만만치 않은 책 보유자인 건 사실이다.
그 장서가&다독가 작가님은 책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오래 맡으셔서 출판사나 작가로부터 받은 책이 아마도 직접 산 책 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난 약 98% 이상이 #내돈내산 한 책이다. 가끔 서평단에서 책을 받거나 선물 받은 책이 있긴 했지만 2% 정도 되려나. 알라딘 하면 또 중고서점인데, 이 많은 책을 놓고 보아도 중고책 비율이 신간보다 적다.
그렇다면 나 이작가는 이 많은 책을 '왜' 샀을까?
알라딘의 '계산서' 총 공개(?)로 현타가 와서 '잠시 책 구입 멈춤'과 동시에 '분석'을 하기로 한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읽으려고 샀다'여야 하는데, 그게 아니어서 이 글이 글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1. 책 쇼핑 우선순위라 쓰고, 책 쇼핑 중독자라 읽는다.
- <<논어>>에서 말하길,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그런데도컬렉션아이템이 하필 '책'이다 보니 다른 덕후-컬렉터에 비해서 욕(?)은 덜 먹을 거라 생각했을까.
나 스스로 작가라는 정체성에는 요정도 책 소장 FLEX는 있어야 해! 하고 과소비를 했던 걸까.
아님 책을 살 때만큼은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고르면서 "어머 이건 사야 해!" 하며 꼭 읽겠다는 초심이 단지 초심에 그쳤을 뿐인 걸까.
결론을 말하면, 난 그저 '책을 사는 행위'가 좋았다. 누군가는 돈을 모아 명품을 살 생각을 하고, 누군가는 새로 나온 IT제품을, 누군가는 여행을 가는데 우선순위로 쓴다. 그 내적인 우선순위가, 외적인 시선으로 볼 땐 '중독'처럼 보이는 거다.라고 일단 우겨보겠다.
책을 사는 행위 자체가 좋다 보니 그저 꽂혀 있는 책의 제목들만 봐도 뿌듯하다. 내가 그래도 허튼 데 돈안 쓰고 책 사는데 돈을 틈틈이 썼다면, 인생을 잘못 산 건 아니지 않은가. 이 욕망의 마케팅이 우글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2. 인테리어 용으로 책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책 표지는 세상 예쁘다. 책장에는 빨주노초파남보로는 모자란 색상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난 '자기만의 방'이란 개념이 좋아서, 누군가를 방에 초대하는 걸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하지만 누구라도 그냥 쓱 둘러보게 되면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들이 나란 인간도 덩달아'있어 보이게' 만든다.
인스타그램(@dong02)이나 유튜브(이동영 글쓰기TV) 방송을 할 때 배경용으로도 딱 좋다. 있어빌리티. 아싸형 관종인 나에게 먹고사니즘만큼이나 중요한 개념이다.
그냥 꽂아둔 것도 아니다. 마치 도서관에서 분류한 것 같은 분류작업을 무려 한 달 가까이나 한 결과로 지금의 인테리어는 완성되었다. 현관에 해바라기부터 걸어놓는 풍수지리 인테리어보다 책의 기운을 한껏 받는 책 인테리어가 나에겐 더 팔자에 맞다는 생각이 든다.
3. 작가와 강사에겐 많은 책은 분명 실용적이다. 이 시골집 주변에는 도서관을 가기 위해 버스로 1시간을 가야 한다.
난 '다 읽지는' 못해도 많이 읽는다. 앞서 말했듯이 도서관식 분류이기 때문에 관련한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나 강의 콘텐츠를 준비할 때 레퍼런스(참고자료)로 활용하기 딱 좋다.
자료야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온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책에 담긴 유료 콘텐츠는 생각처럼다 공개되어 있지 않다. 내가 택한 분야의 고전과 트렌드가 정수로 집약되어 있는 책들은 분명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책이란 특성에 미루어 보자. 책은 치밀하게 기획•구성된 하나의작품이라서, 저자가 담아낸 메시지의 주제와 그 '흐름'을 읽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콘텍스트로 해석하는 리터러시(문해) 능력이 온라인 텍스트보다는 실물 책을 볼 때 더 길러진다고 생각한다. 난발췌독은 물론이고, 목차의 구성이나 문장, 문단, 소챕터와 소제목 등을 눈여겨보며 글쓰기 강의나 개인 원고를 쓸 소스를 얻을 때가 많다.
경험해봤으리라. 인터넷은 워낙 클릭의 유혹이 많아서 검색 중간에 다른 데로 빠질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 오프라인 상에서 오롯이 책만 집중해 관련 서적끼리 찾아 읽었을 때 훨씬 시간 절약이 되는 효과도 있다. '나중에 다시 봐야지' 하는 단순 스크랩이 아니라, 이미 잘 정리되어 한데 모여있는 분류 안에서 목표를 가지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고무적이다.
독서 진도가 좀처럼 나가질 않아 애를 먹는데도 책은 그나름의 장점이 있다. 침대 머리맡이나 화장실, 책상, 가방 등에 수시로 읽다 만 책을 노출해놓으면 어떻게든 반드시 읽게 된다.그것도 '반복'해서 무한대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소장하는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나처럼 평소에 책을 빌려 보지도 않고, 산 책을 중고로 잘 팔지도 않는 성향이라면 밑줄을 치거나 메모를 하는데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1년에 100권? 같은 단위를 정해'무작정' 읽는 것이나 나 읽었소 하고 마냥 누구에게 자랑하는 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독서'에 있어선 큰 의미가 없다.그런 건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다. 책에서 말한 것 중에 한 챕터라도 제대로 내 것으로 소화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게 책의 효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유희적 책 읽기를 포함해서.) 그렇게 따져보면 책을 읽은 양이나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건 그 뒤에 딸린 부차적문제에 불과하다. 책을 많이 읽고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런 부차적인 것에 집중해서가 아닐까.
이제 더 이상 꽂을 데도 둘 데도 없어서, 당분간은 책을 안 사련다.
정말 소장해야 하는 책만 두고, 정리하려 한다. 팔든 버리든 나누든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겠다. 단, 가능하면 읽고 활용하고 최소 책값은 본전 이상을 취하고서. 마침 얼마 전부터 월세나 식비도 들지 않는 본가에 내려와 살고 있어 적기라고 생각한다.
책을 당분간 사지 않겠다는 선언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물으신다면 나에겐 '습관'이 되어 버린책 쇼핑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필요했다. (개인적인 듯한 이 글을 잘 뜯어보면 사실 책의 효용에 관해 말하고 있다)
추천받은 책, 읽고 싶은 책, 베스트셀러, 트렌드 분석을 위한 책, 독서모임 선정 책 등. 정말 못 참고 사고 싶다면 당분간은 2~3달에 1권 정도로 구입량을 제한할 것이다. 아니면 마치 '안식년'을 두듯이 책을 안 사는 '달'을 정해서 사지 않는 의식을 치러야겠다. 구체적인 건 일단 첫 달을 성공한 다음에 알리는 걸로.
요즘처럼 책 시장이 안 좋은 시대에 작가•글쓰기 강사가 책을 사지 않겠노라고 선언하는 글도 참 이례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에 구구절절 사연을 이해한다면 납득이 갔을 거라 생각한다. 나처럼 장서의 괴로움이 있는 이에겐 사는 것보다 읽는 것이 더 중요한 미션이다. 앞으로는 책을 '무작정'사지 않고 '제대로' 사야겠다는 다짐이 이 글의 결정적 동기였다.책은 사는 게 좋다. 읽으면 더 좋다. 다만, 분수에 맞지 않게 과소비를 하면서까지 방에 쌓아두기만 하는 건 썩 좋지만은 않다. 미니멀리즘까진 아니라도 책의 효용을 잊지 말자는 말이다.
아, 결코 시장에 내놓은 내 책이 안 팔려서 떼쓰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찡긋)나름 베셀 기록했어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