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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ul 15. 2020

작사가의 꿈을 접고 작가, 강사가 되었다. 다음 꿈은?

지상파 라디오 DJ다

제목은 내 이야기다. 내 이야기를 위해서 요즘 연일 이슈인 한 분의 인터뷰를 가져왔다. 그 주인공은 사가 김이나 님.

왼쪽 나 아님 주의; 윤상(좌)/김이나(우)
작사가 김이나 인터뷰 출처: jobsNBooks 포스트

원문 링크: http://naver.me/Ggxv540o

김이나 작사가와 나의 공통점은 김형석 프로듀서(겸 작곡가)에게 글을 보여준 사실이고, 차이점은 프로듀서 평가한 작사가로서 자질 유무였다.


난 비록 작사가의 꿈은 접었지만,
그때 그에게 받은 피드백 덕분에
하루빨리 다른 길로 바꿀 수 있었다.


내 책 <너도 작가가 될 수 있어>에도 밝힌 바 있는 사연인데, 나는 싸이월드가 지금의 인스타그램 같았던 시절- 작사가 조은희, 작곡가 겸 프로듀서 김형석, 히트맨 방시혁(BTS 아버지, 그분 맞다) 등에게 '내 작사 습작 글 좀 봐달라'며 떼쓰듯 피드백을 요청한 적이 있다.


미니홈피 게시판으로, 이메일로, 다음 카페로 '각각' 내가 쓴 작사 글을 보데, 신기하게도 다 비슷한 답이 왔다. 상처 안 받게 돌려 말한 걸 돌직구로 바꿔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표현력은 좋은데,
작사에는 영 소질이 없네요.


아, ㅇ.. 예...


과연 프로는 프로다. 보는 눈이 같다는 건 그들의 평가가 맞을 확률이 더 높았다는 걸 의미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작사라는 장르에 이해가 부족하다'라고 첨언했다. 처음으로 내 글에 '자기 객관화'라는 걸 경험 날이었다. 다양한 노래를 접하지 않고 취향대로 꽂혀서 편식하던 내 습관은 감각이 타고나지 않은 이상 다르게 표출될 리가 없었다.


어쩌면 저들에게 평가를 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인정받고 싶었을 테다. 난 아무것도 몰랐다. 그 좋은 평가의 기회를 무모함으로 얻었는데, 후회 없도록 치열하게 노력이라도 해봤어야 했다는 걸.


예를 들면 기성 노래에 다른 나만의 노랫말을 단다던지 해서 내 '작사 실력'을 가감 없이 보여줘야 했다. 그때 내가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다. 실력이 없어서였다. 감각이 없을 뿐 아니라, 사가라는 꿈에 대한 열정 재능'없었'. 휴, 그걸 그때라도 알아채서 다행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피드백 하나로 꿈을 접었던 내가 지금 이렇게 남의 글에 피드백해주며(글쓰기 강사로) 먹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 재능이 없는 건 빨리 알아차릴수록 좋다. 정말 간절했다면 재능이고 뭐고 공부로 파고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글 쓰는 게 즐거워서 했던 터라 절실함의 고통까지는 맛볼 생각조차 없었다. 전문 직업인이 되려면 그 정도 재능을 대체할 뜨거움은 필수옵션이다. 난 그날 이후 이 세상의 모든 실력 있는 작사가님들을 존경하게 됐다. 미련이나 후회는 없지만, 재도전의 의사는 언제든 열려있다. 그 태도가 훗날 '아포리즘 에세이 작가'로 날 완성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사실은, 이제와 돌이켜 보건대 나는 작가가 되겠다거나 강사가 되겠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직업(진로)을 염두에 둔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다 보니 되어 있었다. 막연하게 '언젠가 나는 내 콘텐츠를 내 언어로 공유하는 사람이 될 거야'정도가 다였다. 가와 강사로 커리어를 쌓게 된 건, 순전히 타고난 유전자적 재능(감각)+즐기다가 얻어걸린 노력(꾸준한 반복과 수정)+행운이 따라준 덕(계획보다 더 척척)이었다. 사 분야에서는 현저히 부족하지만 나도 나름 잘하는 분야가 따로 있었던 거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작가와 강사 일을 시작해 맨 몸으로 부딪쳤다.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가 섭외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고, 손 내민 적도 없이 독립적으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독서모임에서 만난 분이 연결해준 강의는 있었지만 그조차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사이도 아니고 강의 연계는 카톡 몇 개로 성사됐다.


"그때 독서모임 멤버인데, 강의한다고 하셔서 의뢰해요"라고. 감사한 인덕분이었다.


내 지금 꿈은 '매일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수강생을 긍정적으로 변화하도록 돕는 것'인데, 거의 매일 이루는 중이다.

책 <크리에이터 코드> 중

그러나 난 망하고 싶지 않다. 여태 해왔던 일을 앞으로 계속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 옵션을 스스로에게 달아주려 한다. 풀옵션으로 몇 만 킬로를 달린 후에는 더 좋은 차로 업그레이드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한몇 년 전부터 막연하게 떠올리던 내 다음 꿈을 확고히 정했다.


지상파 라디오 DJ

 

이 꿈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라디오 DJ가 처음부터 될 역량이나 행운은 없었기에 글쓰기란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라디오 작가부터 도전했다. 방송작가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방송 외주제작사에서 (신규 TV프로그램)막내작가 일을 하거나 KBS즈 프로그램 검수알바, 넷에서 슈스케 스크립터 알바 등을 하기도 했다.


근데 라디오 작가 TO는 좀처럼 나지 않았고, 막내작가로 들어가기에도 나는 해당 조직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성향+ 남성인 데다(라디오 작가는 상대적으로 여성 비율이 많다) 이미 경력 없이 나이가 너무 많았다. S방송국 라디오 메인 작가님의 진심 어린 충고였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었다. 그렇게 TV를 맴돌다 뒤늦게 라디오에 들어간다고 해서 내가 잘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고 녹록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도 재능 없는 열정의 비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그만두기로 했다. 유병재 씨와 같은 경우는 나와 비슷한 또래에 성별 같은데도 방송작가로 먼저 성공한 케이스다. 탁월한 위트와 기획력은 그만이 가진 감각의 영역이었다. 난 냉정하게 그게 부족했다.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 그저 내 탓이었다.


이런 내 이야기를 쭉 읽어보면 라디오 DJ도 너무 막연한 꿈이라 할지 모른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도 않고, 청취율을 보장하는 셀럽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어렸을 적 라디오 키즈로 지내면서 DJ가 내 귀에 대고 사연을 읽어줄 때마다 위로받았던 기억에 나도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 꿈의 시작이었으니까.


최근 박준 시인이나 김이나 작사가, 이슬아 에세이스트 등이 라디오 DJ에 진출하는 걸 보고 '7~8년 안에는 나도 할 수 있다'는 다짐을 해봤다. 내가 작사가로서 꿈의 문턱에서 실패했던 경험을 벗 삼아, 전략이 있는 노력과 실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꿈을 꿔보겠다는 거다. 새로운 꿈이란, 입버릇처럼 말하던 막연한 꿈 '라디오 DJ'에서, 이를 현실적으로 이루기 위한 천적 에 녹아 있는 꿈으로의 새로운 전환을 말한다.


이제 나도 몇 년 후면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된다. 꿈을 꾸는 게 우스운 걸까? 아니다. 40~50대 분들은 지금이 제일 '예쁜 나이'라고 말한다. 90대 먹은 어르신들은 '내가 10년만 젊었어도..'라고 말한다. 늦은 건 없다. 다만 내일 꿈을 이룬 내가 되기 위해  오늘의 얄짤없는 고통이 필요할 뿐.


일단 지금 내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김이나 작사가나 박준 시인처럼 다른 분야에 있다가도 라디오 DJ의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분들의 급까지 올라가는 게 가능할지 심히 두렵지만, 못할 것도 없단 생각으로 나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하겠다.


라디오 방송 관계자 분들, PD 님들,
저 이동영 작가를 눈여겨보세요.
그리고 개편 때 꼭 놓치지 마세요 :D




매일 공개 글쓰기 14일 차 no.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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