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이었다. 당시 초등학생 저학년이던 나는 과학학습만화 시리즈에 매료되어 책을 펼쳐 보지 않아도 달달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근데 이걸 그 누구와 말해도 대화가 통하지 않았을 때 오는 무력감은 똘똘한 초등학생의 일상을 무료하게 만들었다. 친구들은 그 책을 읽지 않아서 몰랐고, 어른들은 꼬마인 내가 설명하는 상식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나에겐 창구가 필요했다.
내가 찾은 건 만화였다. 당시엔 웹툰이란 게 없었고, 4살 터울인 형이 챔프, 아이큐 점프와 같은 만화책을 좋아했기에 은근슬쩍 봐왔었다. 내가성장하면서 내 글쓰기 실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3가지라면, 첫 번째가 반성문 쓰기, 두 번째가 백일장 수상집 베껴쓰기, 마지막이 이때의 만화책들이었다.
만화를 그리는 건 특별한 작업이었다.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일으킬 재능을 뽐내는 일이었기에 그렇다.그치만 만화로도 반 친구들의 집중을 오래 받지 못했다. 같은 반 아이 중에 야한 만화를 기가 막히게 잘 그리는 친구에게 모두 넘어갔기 때문이다. 처음엔 내 자리에 머물던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지더니 다 그 친구 자리에 몰려서 그 그림들을 감상하며 호기심에 주문까지 하기 시작했다.
나는 유교남이라 그런(?) 걸 그리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외면하다가 내 만화 세계에 혼자 푹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린 만화의 특이한 지점은 세상에 없던 캐릭터들의 향연이었다. 다음은 실제 당시 내가 그린 만화 시리즈의 제목들이다.
'검은 피와 노팬티'(야한 거 아님), '에잇 빙신들(욕하는 거 아님 - 8명의 얼음신들)', '세븐 전사들(7명의 영웅들)' 등
다양한 캐릭터가 무한대로 만들어졌다. 문제는 아무도 봐주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지금처럼 SNS가 없었기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컸다. 하지만'너 그림에 소질 있구나' 하는 칭찬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캐릭터나 스토리에 대한 피드백은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
난 굴하지 않았다. 내가 그린 만화 속에서 내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들을 왕창 만들었다. 날 괴롭히는 애들이나 대놓고 차별하고 따돌림을 방임하는 선생들을 빌런 캐릭터로 투영하기도 했다. 그들을 주인공의 왕주먹이나 각종 상황들과 마법 등으로 가차 없이 처치했다.
통쾌했다. 만화 속에선 모든 게 가능했다. 허용된 것이다. 그 자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마치 창조주가 된 느낌. 눈망울을 그릴 때, 움직이는 주먹을 그릴 때, 말주머니를 그릴 때마다 캐릭터들은 살아 움직여줬다. 행복했다. 외로움이라는 존재적 결핍은 나를 만화의 세계로 인도해주었다.그 장면들은 문득 떠올려봐도 마치 만화 속 네모 칸 같아서 이야기는 흘러갔지만 여전히 멈춰있는 소중한 순간들이다.
그러다 정식으로 만화가 배우고 싶어서 간 (시골...소도시...) 군산의 한 미술학원에선 상담 시 '곧 만화반이 생깁니다'라고 하고선 인원이 미달되었는지 그냥 미대 입시반 부설로만 운영했다. 정물화 수업을 하는 곳에서 팔이 떨어져라 선만 그어댔다. 결국 한 달 째 아무도 내게 만화를 가르쳐 주지 않자 이젤에 4B연필을 집어던지고 그날로 학원을 때려치웠다. 이후로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훗날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어 아이패드를 구입하고 잠시 그림에 빠져 조금 그리긴 했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질문과 설명을 아무도 듣지 않아 외로움으로만 귀결되던 결핍이 대신에 글쓰기로 승화되었다. 또 운이 좋아서 강의로까지 발전했다. 그냥 주야장천 떠들면 아무도 듣지 않는데, 게시판에 올리거나 원고지에 써서 제출하거나 단상에 올라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면 내 글과 말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독특한 경험이었다.
이때 깨달았다. 글쓰기나 스피치는 뭔가 엄청나고 대단하게 심중한 도구가 아니란 걸. 그저 수많은 표현 도구로써 하나일 뿐이다. 그림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도구 말이다. 난 아마도 조금은 유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타고난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집 안에 선생님 출신인 분들이 많이 계신 걸 보면은.(교수님이나 목사님 출신도 계신다.) 이동영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도구들에 빠지게 될 때 공통점이 있다. 아주 조금은 이걸 선택한 개인이 타고났다는 점이다. 분명 상대적으로 수월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노력을 아예 안 한 건 아니겠지만, 막상 이론적으로 설명하기엔 더 어려운, 감각적으로 찾아온 수월함이랄까. 그래서 그 도구를 사랑스러워하며 고통이 따르더라도 즐기게 된다.
글을 써서 정리하거나 누군가에게 말을 하며 강의하는 건 미친 듯이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았어도 난 어느 수준까진 수월하게 끌어올린 편이다. 중요한 건 타고나고 타고나지 않고-가 아니다. 어떤 도구를 사랑스러워하며 선택하느냐라고 생각한다. 그 원천은 결핍으로부터 온다.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는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린 살면서 여러 표현 도구 중 하나를 선택한다. 이동영에게 글쓰기만큼 사랑스러운 표현 도구가 당신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건 운동이 될 수도 있다. 혼자만의 운동이 아니라, 운동을 해서 나를 드러내는 것까지가 도구로써의 운동이다. 여행도 될 수 있고, 사진도 될 수 있으며, 토론도 될 수 있고, 노래, 유머, 연애도 될 수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이 글쓰기의 사랑스러움을 맛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글쓰기를 할 필요는 또 없다고도 생각한다. 각자 글쓰기만큼의 도구를 하나 이상 제대로만 가진다면 충분할 테니 말이다. 꼭 글쓰기가 아니라도 된다. (그러나 글쓰기만큼 시작하기에 만만한 것 또한 없다. 다른 도구들에 비해 돈이 거의 안 들고 실패하더라도 정말 많은 걸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도구가 무엇이 되었든 나름의 능숙함이 결핍으로부터 왔다는 걸 잊지만 않는다면 좋겠다. 그럼 결핍이 있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마저도 사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당신만의 도구는 그래서 당신을 자존하도록 끝까지 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