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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Oct 14. 2022

MY 이상형에 대하여

이상형이 뭐예요~? 형식적인 물음에 살짝 설렜던 나를 반성하며

나는 이성애자다.


남녀노소 무관하게 인간에겐 모두 다정한 포스를 보이는 나머지 가끔 오해를 사곤 하지만 나는 여성을 좋아한다. 내가 다정한 이성애자란 소리다.

나는 세상의 모든 성향을 존중한다.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실은 내가 이성애자라고 이글의 첫 문장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비단 다정함 하나에서 비롯한 오해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덕질을 하던 연예인이 남자 가수였다는 이유, 내가 (핫)핑크색을 (한때)좋아다는 이유, 로봇이나 기계, 조립과 같은 건 아주 무관심한 대신 차라리 인형에 더 끌려하는, 흔한 남자치곤 좀 다른(?) 성향 때문이었다.(정체성과 성적지향은 명확하다. 남성이고, 여성을 좋아한다.)


나는 여전히 블루가 남성의 색이고 핑크가 여성의 색이라는 세상의 규정이 맘에 들지 않는다. 로봇은 남성이 좋아하는 것이고 인형은 여성만 좋아하는 것은 말이 되는 건가? 늘 의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 왜 남자는 남자가수를 동경하면 이상하게 보는 것인가!!!!


하지만 나에겐 힘이 없었다. 요즘이야 시대가 변해서 '남자는 핑크지'라는 말이나 '피규어 덕후', '동성 연예인 덕질'이 꽤나 자연스러워졌다지만. 그건 최소 30대 이상에겐 아직도 어색한 소리로 들리는 것만 같다.

내가 이런 걸 변명이라고 늘어놓고 있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다. 핑크색 아이패드 커버를 하고 다녔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가 돌아보면 일명 '성소수자'라 일컫는 이들이 얼마나 살기 힘든 세상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현실은 '성소수자'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내 이상형은 일단 첫 번째로 여성이다. 그 여성이 로봇을 좋아하든 인형을 좋아하든 공포 스릴러 장르 영화를 선호하든. 파랑을 좋아하든 치마를 싫어하든 난 전혀 상관이 없다.

인간 중에서 여성에게 강하게 끌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을 뿐. 내가 크게 바라는 게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성 목소리 주파수가 있다.

나이차는 연상이든 연하든 상관은 없었지만 돌아보면 여성분이 연하일 때 좀 더 코드가 잘 맞았던 것 같다.

MY 이상형 두 번째는 마르지 않은 여성이다. 난 통통을 넘어 탄탄하고 건강해 보이는 여성 분을 이상형으로 꼽는다. 욕심이 있다면 복싱, 주짓수, 유도 이런 걸 하신 분이라면 더 좋다. 멋지고 섹시하고 아름답다. 물론 말 그대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상이지 지금까지 만났던 분 중에 운동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냥 같이 운동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이상의 영역에 있다.(정작 나는 몇 번이나 운동을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그만 두곤 했다.) 여기엔 자기 관리, 건강한 취미와 같은 키워드가 내포해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이런 걸 내심 바라는 타입 인지도 모르겠다.

MY 이상형 세 째는.. 근데 진짜 궁금한가?


나라면 하나도 안 궁금할 것 같다. 이 질문을 던진 대학원 동기 샘은 진짜 소개팅을 해줄 생각이었을까, 스몰토크의 테마였을 뿐일까. 문뜩 그것이 알고 싶다.


소개팅은 학부시절에, 뽀얗고 애기기할 때 해보고 20년 가까이 늘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해왔다. 난 숫기가 없는 편이어서 먼저 호감이 있어용기내어 고백한 적이 딱 한 번에 불과하다. 대신 누군가 먼저 호감을 내게 내비치면 확 빠져드는 타입이었다.


다행하게도 이런 나를 좋아하는 여성 지구상엔 있었고, 그분들은 결국 스치는 인연이었을지라도 살아오며 일정 부분 서로의 성장과 성숙을 도왔다고 생각한다. 20대와 30대를 거쳐오면 누구나, 아니 대부분 그렇듯이.

보통 이상형이라고 하면 내가 가지지 못한 점을 가져서 무언가 배울 수 있는 리스펙의 대상이거나 가치관이 잘 통하거나 또는 대화의 깊이, 유머코드(드립), 빡침코드(동일한 포인트에서 분노를 느끼는가)가 비슷한 사람을 꼽는다.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다. 여기에 내가 만족하는 외모와 재력까지 받쳐준다면 그건 신의 축복이.   


그러나 인연은 느낌으로 시작하는 것.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고 마침내 연인이 되는 것-이라서 이상형의 담론은 연애를 다시 시작하는데 그리 주요하진 않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가보자. MY 이상형 마지막 세 번째, 서로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이건 가시적이진 않을 수 있지만 말 그대로 '이상형'이다. 상대방만 내게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인 건 재미없다. 나도 상대방에게 존재감이 있길 바란다. 자격지심 없이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 서로 만족을 느낀다면 연애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내 이상형에 대하여 몇 자를 적고 보니 내가 배부른 삶을 살고 있단 생각을 하게 됐다. 흔한 표현으로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사람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언젠가 내 곁에 올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길 바란다면 나 역시 좋은 사람으로 매일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겠다.

인연이 찾아와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큐피드는 화살을 쐈는데, 나는 나를 혹은 세상을 미워하고 있는 상태라면 얼마나 끔찍한가 말이다. 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외모와 재력과 체력과 인성을 갖춘 자신이 된다면, 그걸 굳이 티 내지 않아도 끌려서 알아본 사람이 진짜 서로의 이상형은 아닐지.


암튼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살짝 설렜어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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