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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Dec 07. 2022

글쓰기를 잘하고 싶으면 필사를 하라고요?(이동영 강사)

용인시 도서관 [도서관 세상]  2022 vol.22에 게재한 칼럼

필사가 뭐예요?

‘필사’는 사전적 정의로 ‘(책이나 문서 따위를) 베끼어 씀’이란 뜻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베낄 사(寫)’라는 한자의 어원에 있습니다.


寫자는 宀(집 면)자와 舃(까치 석)자가 합쳐진 모습이지요. 舃자는 ‘까치’라는 뜻이 있기 전 고대에 ‘나무로 만든 신발’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이는 신하들이 왕을 알현할 때 신던 신발이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아무 곳에나 벗어두지 못해 항상 집안으로 옮겨 놓았다고 합니다. 이 글자는 여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옮기다’라는 의미로부터 확장하여 지금의 ‘베끼다’, ‘본뜨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된 것이죠.

저는 신하들의 마음이 글 쓰는 사람의 마음과 닮았단 생각을 했습니다. 글쓰기는 내 생각과 마음과 정신을 옮기는 일이니까요. 독자와 마주하기 전 내 글쓰기를 훈련하는 수단 중 하나가 필사인 거고요. 훈련은 왕을 알현할 때처럼 독자에게 글을 보이기 전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는 일입니다.

이렇게나 제가 예찬하는 필사이건만, 제 글쓰기 강의의 수강생 모두에게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알려줄 뿐이지요. 이런 것도 있으니까 자신과 맞으면 한 번 해보셔도 좋겠다-하고 말입니다.

이유가 있는데요. 저도 필사를 필사적으로 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팔이 너무 아프고요. 필사를 무슨 숙제처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작용도 있거든요. 남의 글로부터 영감과 힌트는 얻지만, 독창성을 잃을 여지도 있으니까요.


특히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는 분들은 자신이 쓴 글과 다른 사람이 쓴 글의 색깔을 구별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출처를 남기지 않은 글은 부분만 떼어 자기 습작으로 착각할지도 모르고요. 비단 초보자의 실수에만 국한하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모 중견작가도 이슈가 있었습니다. 작가 자신을 포함해 많은 비평가가 작가의 오랜 필사습관에 주목했으니까요.

건강한 필사를 위한 다섯 가지 방법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그래서 필사하면 큰일 나요-가 아닌 ‘건강한 필사를 합시다’인데요. 그 첫 번째가 ‘원칙 있는 필사’입니다. 예를 들어, 남의 글을 베끼어 썼다면 반드시 저작자를 기록하고, 한눈에 찾을 수 있도록 정리해 두는 겁니다.


평소 내 글을 써서 공유하기 직전, 중복 확인을 위해 시스템화하는 거죠. 내가 필사한 글을 시간이 지나고 보아도 바로 인지할 만큼의 수준은 되어야 필사와 개인 창작을 동시에 할 때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실수 방지와 함께 창작자로서 양심을 지키겠다는 원칙이 있다면 필사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해도 좋습니다.

‘필사는 글쓰기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마치 건강기능식품의 심의 준에 따른 문구 같지 않나요? 부작용도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100% 좋은 효과란 환상에 불과하니까요. 건강한 필사를 위해서 글쓴이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겠지요.
 
두 번째, ‘지치지 않는 필사’입니다. 많은 분이 글쓰기를 더 잘하기 위해 필사를 해보겠다고 하면 지레 겁부터 먹는 이유가 있습니다.


필사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유시민 작가가 ‘박경리의 토지’를 필사하면 좋다고 했다더라.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필사하며 도움을 받았다더라 하는 말들이 들릴 거예요.


그 책을 펼쳐서 필사하려는 순간. ‘아 필사는 나와 안 맞는구나’라고 느끼기 쉽다는 게 문제지요. 자신과 잘 맞으면 그냥 직진하면 되지만, 아무래도 버거울 확률이 높습니다. 그땐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소설을 필사하려거든 내가 좋아한 단편소설부터 필사하는 겁니다. 이미 내 취향을 저격해 버린 작품을 선택하되,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책을 골라 필사에 도전해 보는 겁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분량이 많거나 어려운 책에 지쳐서 책과 더 멀어지는 역효과를 지도 모르거든요.


서사로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지는 소설보다는 우선 에세이나 인문 실용서와 같이 잘 읽히는 글, 챕터 분량이 짧은 글부터 필사를 해보길 권장하는 이유입니다.

세 번째, ‘무작위로 필사’하는 겁니다.
위 두 번째와도 이어지는 건데요.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마라톤처럼 필사하면 체력이 받쳐주질 못할 겁니다. ‘남들은 다 잘하는데 내가 의지박약 한가?’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내가 글쓰기는 무슨 글쓰기야’까지 미치게 되면, 필사는커녕 글쓰기 실력 향상 프로젝트는 이미 물 건너간 거라고 봐야지요.

미연의 방지를 위해 저는 대안으로 ‘무작위(Random)’ 필사를 제안합니다. 고 이어령 선생님, 언론학자 정준희 교수님 등 다독가로 유명한 분들의 공통적인 독서법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석대로가 아닌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 거예요. 물론 이렇게 읽기까지 정독의 내공이 쌓였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지금은 독서법이 아니라 필사법을 말하는 것이니 여기에서 착안해 필사에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1) 아무 데나 펼쳐도 좋은 책을 한 권 고른다.
2) 해당 페이지로부터 3페이지 이내에 와닿는 문장을 필사한다.
3) 내가 왜 이 문장을 필사했는지 생각을(꼬리에 꼬리를 물어) 확장해 간다.
*나름의 사유 결과(생각·느낌 등)를 기록해 두면 가장 좋다.


네 번째, ‘모여서 함께 필사’하는 겁니다.
위 세 번째에서 언급한 방법을 저는 모임으로 업그레이드해서 함께 필사모임을 진행해 왔습니다.

0) 필사하고 싶은 책 챙겨 오기
1) 8명 내외의 인원이 한 곳에 모여서 약 45분 정도 묵독(조용히 읽기)하기
2) 45분 간 읽다가 와닿는 문장 혹은 소개하고픈 문장, 화두를 던지고픈 문장을 필사하기
3) 필사를 마치고 약 50분간, 멤버가 각 3분 내외로 무작위로 필사한 구절과 생각 나누기

필사하고픈 책을 모임에 가져오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합니다. 책꽂이에 먼지가 쌓이기 직전인 책 중에 유명한 책, 선물 받았던 책, 읽다 만 베스트셀러 등을 챙겨 옵니다. 무작위로 필사한 구절을 나누는 시간이 가장 재미있는데요.


혼자 필사할 때와는 다르게 꼭 ‘와닿는 문장’이 아니어도 ‘함께 나누고픈 문장’이나 ‘꽂히는 키워드’나 질문거리가 있다면 베껴 쓴 후에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이 필사모임에 참여한 ‘바쁘다 바빠 요즘 현대인들’은 조용히 읽는 45분의 시간 동안 ‘힐링과 쉼’의 시간이었다고 간증을 합니다. 또 필사 후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이 생각지 못한 책을 알게 되었다는 후기. 혼자 읽을 땐 놓쳤던 다양한 시각을 경험했다는 후기, 글쓰기에 활용할 영감을 많이 받았다는 후기를 남기곤 다음 모임을 기약합니다.

다섯 번째, ‘활용도를 높이는 필사’입니다.
직관적으로 말해서 ‘써먹기 위해’ 필사하는 겁니다. 목적이 있는 필사입니다. 문장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주제’를 가지고 ‘질문’을 품으면 모든 준비가 끝납니다. 황농문 교수(서울대)가 말하는 ‘몰입’의 경지와도 비슷합니다. 주제와 물음이 확실하면 문장은 이내 보이고 들리고 다가오기 마련이거든요.


거기에 내 과거 에피소드나 미래의 꿈같은 것이 결부되어 결국 글쓰기에 매우 유용한 효과를 낳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글을 쓸 때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서 막히는 분들이 ‘인용’을 하기에 아주 좋은 것이 필사입니다. 제가 글쓰기 강의에서 늘 외치도록 주문이 있는데요, 독자님도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거 써먹어야겠다!”

필사하면서 써먹을 거리를 발견하는 기쁨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는 짜릿함이거든요. 글 쓸 때도 활용할 수 있지만, 수다를 떨 때, 일할 때도 구사하는 문장이나 발상이 풍성해짐을 느낄 겁니다.

키보드 Vs. 손글씨 중에 뭐가 더 좋나요?

이처럼 필사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고 글쓰기 강의나 필사모임 등에서 역설하고 나면 이 질문을 누군가는 꼭 던집니다.

“키보드로 필사하는 게 좋아요? 손글씨 필사가 더 좋아요?”

여러 주장이 있겠지만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손글씨 필사 쪽에 저는 좀 더 기웁니다. 필사할 때 뇌를 살펴보면 손으로 썼을 때와 뚜렷하게 뇌의 활성화 정도가 구분되는 걸 볼 수 있는데요. 키보드로 글을 쓰면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인 처리를 하게 됩니다. 거의 그대로 받아치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주의력을 담당하게 되는 전두엽 부분의 기능이 뇌가 잠시 멈춘 것처럼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때는 잠자고 있을 때의 뇌 상태와 비슷하다는 거지요.


반면에, 손으로 쓸 때는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게 되고 이해하려는 의식적 노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뇌가 전체적으로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요약을 하게 되니 중요여부, 필요여부를 분별하는 영역(전전두엽), 즉 머리를 더 많이 쓰게 되는 거죠. 키보드로 받아칠 때보다 머리가 더 많이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손글씨가 조금 더 좋겠지만, 필사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땐 억지로 진행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우선 키보드로 대체하다가 전환하는 것도 건강한 필사를 위한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키보드로 시작하는 분들이라면 한글과컴퓨터에서 22년 12월부터 출시하는 한컴타자연습 '필사'게임도 권장합니다. 

필사하면 글쓰기도 잘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건강한 필사를 위한 방법을 짚어보았다면, 필사의 효과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필사는 ‘느리게 읽는 독서’ 행위로 남습니다. 한 문장을 읽어도 깊게 사유하며 읽는다면 단순히 1년에 1만 권을 읽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읽은 책을 반복해서 곱씹어 읽는 방식의 독서는 글쓰기 대가들의 인터뷰만 보아도 글쓰기 실력의 기반이 되는 공통 노하우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사두기만 했다가 시간에 치여 미뤄둔 책도 집중하며 읽기에 좋은 기회가 바로 필사를 하는 시간입니다.


필사는 문장(글맛) 감각 익히기에도 탁월합니다.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선 내 글을 자꾸 써보면서 필사도 병행해 보길 추천합니다. 좋은 책으로 필사하다 보면 어휘력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맛있게 문장을 구성하고 배치하는지 감각으로 터득하게 되지요. 책을 고를 때도 다양한 분야를 남독(濫讀)하면 전혀 연관 없는 분야끼리 엮어서 다양한 표현을 만들고 창의적 발상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글 쓸 때 인용하기 좋은 문장을 얻을 수 있고요. 더불어 논리도 수집하기가 좋습니다. 저자가 어떤 생각, 감성, 근거를 가지고 이 글을 썼을지 글쓴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논리를 익히게 됩니다. 조금 끄적이는 수준으로는 안 되겠지요. 창작의 고통을 생략하고 베끼는 것인 만큼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필사적일 필요까진 없지만, 최소한의 노력이 없이는 남는 것도 없으니까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칭과 걷기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조금씩 나아가잖아요. 먼저 동네부터 돌고, 학교나 공원 트랙 돌고, 하프 코스부터 완주하는 식입니다. 필사도 마찬가지예요. 노력은 하되, 천천히 전략적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필사하면서 새로운 단어가 보이면 사전을 수시로 찾아보세요. 인터넷으로 빠지지만 않는다면 ‘네이버 사전’ 앱을 추천합니다.


평소 아는 단어라 해도 작가가 문장에 이 단어를 이렇게 활용했구나 하면서 어휘력을 강화하는 겁니다. 어휘력이 좋아지면 문해력이 좋아지죠. 문해력이 좋아지면 책을 더 많이 섭렵하게 되고요. 강연을 듣더라도 직관적으로 이해하니 점점 연상력까지 좋아집니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구사할 수 있는 어휘를 많이 알수록 생각하는 시야도 이전과 다른 수준으로 넓어질 겁니다. 연상력이 좋아지겠죠. 그럼 순발력이 늘고, 순발력은 표현력으로 이어집니다. 글쓰기를 더 잘하는데 그치지 않고 말하기 역량까지 좋아질 겁니다.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에서도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지겠지요.

필사는 선택입니다. 도전해 보고 ‘생각보다 할 만하네’ 하는 분은 습관으로 만든다면 좋겠습니다. 글쓰기가 어렵고 두려운 분, 누군가와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분, 요즘 들어 더 자주 단어를 깜빡하는 분, 평소 독서량이 많지 않지만, 책은 죽기 전에 내고 싶은 분이라면 지금부터 도전해 보세요.


책을 옆에 두고요. 펜을 들고요. 종이에 옮겨 쓰면? 끝입니다. 아니 시작입니다.

이동영 작가

이동영 / 작가, 이동영글쓰기교육그룹 대표, ≪너도 작가가 될 수 있어≫저자, 글쓰기 강사, 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과정

Lhh2025@naver.com(방송 강연 강의 섭외 문의 환영)


https://linktr.ee/leedong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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