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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an 02. 2023

행복의 조건

대학원을 계속 다녀야 하나...

교육대학원 1학기를 마치고, 성적까지 다 받아보니 잠시 멍해졌다. 아, 성적은 매우 좋다. 과제, 발표, 출결사항만 좋으면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적당하게 성실히 한 만큼 인정받는다. 내가 멍해진 이유는 성적이 낮아서가 아니란 소리다. Keep going 해야 하는 이유를 못 찾았기 때문이다.


일단 모든 개인채널의 프로필에서 학력사항을 내렸다. 혹시 또 모르니까.


겨우 1학기인데 너무 성급한 거 아니냐고? 1학기 등록금 700만 원이 아깝지 않으냐고?

다 맞는 말이지만 그거 때문에 다니는 거라면 더 서글프지 않은가. 나는 끝까지 졸업을 향해야 할 나만의 이유를 절절하게 찾는 중이다.


학교에서 정해놓은 학점 이수를 다 하고 석사논문까지 무사히 통과하면 대학원 석사졸업을 한다. K대학교의 네임벨류는 영광스러운 학위기를 받고 싶게 한다. 네임벨류 하나만으로 입학과 졸업의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 실제 교수님들의 실력이나 커리큘럼 같은 걸 따지기도 전에 모두 초월하는 No.1 조건이다. 지원한 이유도 이 이유가 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막상 입학한 후 선배고 교수고 나에게 이렇게 물어댔다.

왜 입학했어요?
(이동영 선생님은..?)


그때마다 내 대답은 "아직 이유를 찾고 있는 중"이라는 실속 없는 메아리였다. 연기를 하거나 적당히 둘러댈 수도 있었지만,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놈의 양심.


최근 변화라면 내가 대학원을 진학한 은연 중의 이유를 깨우쳤다는 점이다. '멘토'를 찾고 싶은 마음. 늘 교육현장에서 강의만 하다 보니, 내게 교육분야 혹은 인생 멘토링을 해줄 코치이자 멘토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1학기를 마치고 보니 멘토는커녕 공허함만 감돈다.

아직 1학기라서 그렇겠지만, '리스펙 할 만한 멘토' 타령은 접어두는 편이 낫겠다 싶다. 빠른 포기가 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분위기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쎄, 내가 더 성실히 학습하고 탐색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멘토와 같은 사람을 찾아볼 겨를이 없었다. 수업과 과제가 논문을 다량 읽고 요약하고 주제 발표하고 토론하는 일이었는데 내겐 생경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청 열심히 했다고 말하기엔 내게 남는 게 별로 없었다. 뭔가 하나하나 클리어하려고만 했지 남기 작업 실패했다는 게 적확한 객관적 평가겠다. 학교를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미 훌륭한 분들을 많이 배출했을 테니. 내 학습법이 달라져야 하겠다.

내 탓이오X3


그럼에도 성적이 좋게 나온 건 순전히 운발이었다. 가장 점수받기 어려운 팀 발표를 할 때마다 좋은 팀원 선생님들이 기꺼이 희생을 해주었고, 나는 그냥 소소한 제 역할을 다 했다. 힘이 들지 않았다는 건 누군가는 나 대신 더 힘을 들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고 팀원 선생님들이 나를 탓할 만큼 내가 소홀히 한 건 아니다. 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을 뿐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왜 입학했냐고?


행복하려고.


처음엔 막연히 학위를 취득(졸업)하고 나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현실일 수 있다. 아무리 척척석사들이 많은 세상이라도 그만한 공부를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다른 선택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만 있다면 대학원이 꼭 필요할까? 내가 만약 대학원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 내 현실은?

K대학의 간판은 더 많은 이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수단이 되어준다. 학부를 SKY로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원을 졸업하는 건 내 삶에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상, 학력세탁이라는 말의 고급진 Ver.이었다.
교육대학원 석사졸업 후 동대학 일반대학원 박사졸업에 성공하여 교수님이 되는 소망이 있었지만 이 코스가 특히 이 나이에 이 조건(특수대학원 졸업->일반대학원 진학)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고 내게 남은 건 고려대 석사 학력밖에 없게 되었다.

입학한 일이 결코 작은 기회가 아니란 소리다.


또 뭐니 뭐니 해도 직장인들이 다니는 교육대학원은 네트워킹이지! 하는 세간의 말에 혹하기도 했다. 극 IIII성향인 내가 네트워킹은 개뿔, 술자리에서 술 권하는 분위기를 극혐 하는 터라 사발식 이런 걸 학교 정신 계승이라며 하기라도 하면 나는 온몸으로 치가 떨리는 사람인 걸. 네트워킹에 소질이 영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지만 그럼 동기샘들과-라도 좋은 관계 유지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줄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근데, 나는 행복한가?


졸업 = 목표달성_까지는 행복하지 않더라도 '그냥' 앞으로 가야 하는가?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데.. 이 말에 동의하면 내 대학원 삶이 더 공허해지기만 할 뿐이다.


행복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도구일 뿐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조금 기분이 낫다. 그럼 또 왜 사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까지 질문이 꼬리를 물어야 하기에 여기서 그만하기로 한다.

대신 행복의 조건을 따져보자.

플라톤은 5가지 행복의 조건으로 1. 생활에 좀 부족한 재산 2. 세상 사람들이 칭찬하기에 살짝 모자란 외모 3. 자신의 생각보다 미흡한 명예 4. 다소 불완전한 체력 5. 약간 부족한 말솜씨를 들었다. 약간의 결핍이 완벽함보다 행복의 조건이라고 본 것이다. 

응?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지 행복한 상태여야 하나...?


에밀리 E. 스미스는 자신의 TED 강연에서 행복의 조건을 1. 유대감 2. 삶의 목적 3. 초월성 4. 스토리텔링이라고 했는데, 오 신박하다.

특히 스토리텔링 = 자신의 이야기를 수정, 해석, 재구성하면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는 대목은 내가 늘 주창하고 있는 말을 더 고급스럽고 임팩트 있게 전달한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9Trdafp83U

세계가치조사에 따르면 행복의 5대 요소를 뽑는 결과로 1. 일 2, 소득 3. 건강 3. 가정 4. 관계가 나왔다고 한다. 음, 너무 당연해서 딱히 코멘트할 것이 없다. 가정을 이룬 사람의 용기에 박수를. 난 1인 가구 세대주니까. 나에게도 박수를.


긍정심리학자로 유명한 마틴 샐리그먼은 1. 긍정적 정서(즐거움) 2. 몰입 3. 관계 4. 의미 5. 성취라고 행복의 조건 제시했다. 이 모든 걸 동시에 충족하며 사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그런 일이 가능하긴 한 걸까? 그나마 이 조건을 충족하는 데 가까운 삶이라고 나름 자부하며 살아왔었다-는데 반성한다.

자, 그럼 질문을 살짝 바꿔봐야겠다.

입학을 했는데, 행복한가? 아니. 내가 졸업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모르지. 해보지도 않았잖아?


대학원을 '졸업'했을 경우 예상컨대, 위에서 마틴 샐리그먼이 말한 행복의 조건들을 채울 확률은 꽤 높아진다. 몰입, 관계, 의미, 성취와 학습의 즐거움은 또 어디에 소속되어서 다시 얻기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 같은 무근본 무소속 작가&강사는.


그렇다. 결국 내가 입학한 이유는 하나로 귀결된다. '지금'보다 '앞으로' 행복하기 위해서.

앞으로 행복을 위하여 미래에 저당잡힌 지금이다.

나는 졸업이라는 성취를 해내는 여정에서 많은 몰입과 관계와 의미와 즐거움에 빠질 수 있다. 겨우 1학기만 해보고 실망하는 건 이른 판단이다. 진정 내 삶의 행복을 위해서 주인처럼 살고 싶다면 나는 이 '행복'의 조건을 떠올리며 Keep going 할 동력을 얻으면 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글을 대학원 동기샘들과 선후배와 부모님이 읽을 것 같아서 결론만큼은 이렇게 써야만 한다. 영 내키진 않지만.

그.래.서.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도착 후에 뒤를 돌아보며 안도해야 하는 건지- 지금부터 확신으로 가야 하는 건지. 아님 희미한 믿음이라도 붙잡고 그냥 밀어붙여야 하는 건지.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론 더 힘들어지겠지. 논문심사 받을 땐 더 행복하지 않겠지. 점쟁이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미래.


정말 모르겠다. 이 대학원 졸업의 여정을 과감히 사랑해보려고 하는데, 조건을 따지는 사랑은 역시 행복하기 어려운 게 아닌싶기도.. 하고?

미친 사랑을 해야 하나.
아님 조건을 따지는 사랑이 행복과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내 고정관념을 바꿔야 하나.

후속편

https://brunch.co.kr/@dong02/2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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