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평소에)

10년 차 전문강사의 고백

by 이동영 글쓰기 쌤

'말 잘하는 법'을 주제로 한 강의 의뢰가 그동안 많이 들어왔다. 한 번도 응한 적은 없었다.


"준비할 수는 있겠지만, 제 강의 전공은 글쓰기입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말하기 강의는 저보다 스피치 강의 이력이 있는 전문 강사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 어려운 시기에(?) 새로 들어올 강의의 여지를 미리 차단하는 것 같아 배불러 보이지만, 글은 솔직해야 하니까. 인정하겠다.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상 소통 말하기, 회사 PT, 발표 등의 강의를 할 만큼은.

아니 10년 째 강의를 소수정예부터 수 백 명 앞에서, 여태까지 천 번 가까이해봤을 텐데.... 지금까지 몇 천명이나 이동영 강사의 강의를 듣고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도 있고. 근데 말을 못 한다니요?


말에도 종류가 있다. '강사 스피치' 노하우 강의를 하라 하면 당장이라도 하겠지만, 일반인 스피치 강의나 평소 일상 소통을 할 때, 모임에서 원활하게 말하는 법에 대해 강의하라면 그건 확실히 내 옷이 아니다.


내가 대표해서 발표할 상황에 놓이거나 학교에서 교수님이 질문을 던지거나 모임에 참석자 1로 앉아 있을 때도 주도적으로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소리, 표정관리, 호흡, 상대가 듣고 싶은 말, 눈치, 공감 리액션, 적절한 분량, 끼어드는 타이밍, 임팩트 있는 구조, 유머, 가장 중요한 질문하기 등등의 스킬이 내가 하는 글쓰기 강의 이외에는 다소 떨어지는 스피치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자평한다. 이건 자신감 문제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내가 나를 분석해야 프로페셔널로 살아가기 때문에 필요한 냉정한 사실 파악이다.

대신 강의 외에도 방송에서 하는 말하기나 독서모임에서 말하는 건 어느 정도 역량이 있다. 그 자신감의 발로는 역시 인정을 받았던 경험이 누적된 덕분이다. 나와 함께 방송을 했던 분은 방송이 끝나고 내게 이런 말을 남긴 적도 있다.


"제가 아는 분 중에서 제일 말씀을 잘하는 분 중 한 분이 이동영 작가님이세요. 오늘 보니 날아다니시던데요?"


방송은 대본과 상황이 분명하기에 그 판에서 내가 한 명의 캐릭터로서 발현되기가 수월하다. 독서모임도 마찬가지로 공통된 한 권의 책을 읽고 와서 내 생각과 다른 참가자의 생각에 대해 나누는 자리여서 그 분명함이 내 말하기를 수월하게 만들어 준다. 방송이나 독서모임은 자발적으로 반복한 만큼 익숙하기도 하고.

그러나 어떤 목적 없이 '만남'을 갖게 되는 경우(친구랑 만나고 있는데 친구의 친구를 부른 경우 등), 독서모임 후 뒤풀이, 혹은 '모든 술자리'나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서 예상 분량의 발언권이 보장되지 않은 경우, 교수나 대표, 회장과 같이 위계가 확실한 분과 함께 몇 시간을 함께해야 하는 경우엔 구석 자리도 영 불편하다. 마스크를 벗고 한술이라도 뜨면 당장 그날은 급체가 예약된 날이다. 영 익숙해지지도 않고 예민함이 극도로 발현되어 스트레스가 몸으로 나타난다.


이런 인간이 강의는 죽는 그날까지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아이러니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맞다. 내게 강의에서 말하기는 분야가 완전히 다르다. 내 주관의 글쓰기 강의를 할 때엔 애드리브 하나까지 시뮬레이션을 디테일하게 돌린다.


전체적으로 A-Z까지 기획해 놓고 어떤 지점에선 이런 멘트를 던져야지, 이런 반응이 예상되니까 다음엔 이 슬라이드를 넣어야지.. 하는 치열함이 있다.

그리곤 연기를 한다. 아니 강사 캐릭터로서 메소드 연기를 '펼친다'. 마치 연극무대에 선 사람처럼 내 각본대로 하되, 로봇처럼 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 자연스럽도록 수강생들로부터 사전 질문과 즉흥질문을 받는다. 덕분에 즉흥 애드리브가 늘기도 했지만, 10년 차 그렇게 강의를 하다 보니 수강생들의 질문은 거의 비슷하다. 또한 내 콘텐츠가 바뀌어도 수강생들이 이동영 강사에게 기대하는 바는 거의 한결같다. 그러다 보니 꾸준한 메소드 연기가 능숙해졌다.


수강생은 내 강의 하나만 바라지 않는다. 각본 연기 이외에도 내가 신경 쓸 일이 많아질 수밖에. 수강생들이 선호하는 커뮤니티(수강생들끼리 소통) 성격의 강의를 기획해야 하기도 하고, 수강생이 자기 계발을 위해 돈과 시간을 기꺼이 낸 것 이상의 감정적인 해소도 어느 정도 보상해주어야 한다.

지금보다 작가&강사로서 훨씬 더 유명해진다면 많은 수강생은 나와 한 공간에서 호흡하며 내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 유명 작가에게 강의 들었어'하고 기분을 낼 것이다. 그 감정적인 해소를 통해 수강 만족도는 높을 게 예상된다. 흔히 교육의 관점에서는 학습자의 긍정적 변화가 본질이라 하는데, 시험을 안 보는 강의에선 '변화'라는 지점에 이 모든 것(커뮤니티, 학습 후 성장, 감정적 해소)을 포함한다.


내가 그걸 채워줬을 때 비로소 연극의 막은 내려지는 것이라 딱 그때에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내 직업은 무엇이든 나로서 할 수 있는 '이동영'이지만, 강의에서 내 역할은 수강생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강사' 캐릭터 연기를 무사히 마치는 것 하나다.


사전질문을 받고, 예상질문을 뽑아두면 나는 정말로 각본에 의해 약 2시간 동안 강사라는 캐릭터로 역할극을 해낸다. 말을 잘한다기보단 엄밀하게 짜인 각본(내가 짠 것)과 주어진 역할(강사로 브랜딩 된 것)에 맞게 능숙한 연기를 매번 펼쳐 보이는 것이다.

수사학에서도 대중 연설을 잘하기 위해서는 '연기' 요소가 필요하다 했다. 아주 잠깐 현직 배우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연극에 맛을 보았다가 코로나19로 인하여 끊긴 적이 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연기에 탁월한 소질이 있지 않다는 걸. 대본도 내가 만든 게 아니면 잘 못 외운다. 말하는 대사만 외우는 거면 어떻게든 외우겠는데, 연극은 엄청난 멀티 플레이이기 때문에 말만 외워서 술술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동선에 맞는 동작과 표정, 상대방과의 합(호흡), 전체적인 극의 흐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즉흥적이고 유연한 대처 등이 모두 연극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강의에서 연기는 연극무대에서 배우의 그것과 다르고, 강의에서 말하기는 일상 소통 말하기나 과제 발표 등과 또 다르다는 말이다. 내가 강의나 방송 이외에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끝나고 수강생들이나 출연자, 스텝들과 온오프라인 소통을 하며 커뮤니티를 이어갈 여지가 있었겠지만.


그건 또 다른 영역의 소통 말하기라 일찌감치 포기했다.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도 쉽지 않은 분야가 있고, 즐기면서 해도 누군가이 최선보다 월등한 분야가 있다면 내게 전자는 일상에서 말하기이고 후자는 강의나 방송이다.


평소 말하기는 조금 서투르더라도, 강의와 방송에서만큼은 얼마든지 준비 돼 있다. 계속 발전하는 모습으로 프로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싶다. 못하는 걸 무리해서 하기보다 잘하는 걸 더 잘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더 많은 강의와 방송에서 활약하는 이동영 작가의 모습을 기대해 주셔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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