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영 글쓰기 Apr 20. 2023

결핍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발현된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는 건 불안감의 징표이다.

살아가는 게 한 순간 무의미해져 버리는 자기 존재감에 대한 소용없음이 스스로를 덮칠 땐 그 누구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오로지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아니면 내일의 삶이 끝없이 허무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과 하는 대화는 이내 단절되거나 반복된다. 되풀이되는 말이 어둠 속으로 자신을 끌고 간다. 불안은 그렇게 존재와 함께 스러져간다.


그 속내를 모르던 주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이별에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믿음이라는 걸 잠시 외면하다 점점 믿음에 잠겨버린다.


남은 이들의 그를 향한 그리움은 단순한 슬픔, 아픔 따위가 아니다. 의미, 의미를 자꾸만 되뇌다가 죄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무엇이 불씨였을까.

정반대로 보이는 충만한 결핍들.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는 건 불안감의 표이다. 불안은 그에게 잠시라도 강렬한 계속 살아갈 동력이었다.


힘들면 안 되는데, 이럼 너무 미안한데.. 압박은 한 톨씩 쌓인 모래성을 결국 무너뜨리고 불안은 그렇게 존재와 함께 스러져간다. 힘들어도 되고 견디지 않아도 되고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데. 과거를 용서해도 괜찮은데.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하지 못한 채 깊이 빠져버린다.


결핍을 채우는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무언가를 반복하는 것이 타인의 눈엔 그저 충분해 보이기도 하니까. 개인의 공허함, 그 헛헛함은 기댈 곳이 없다. 꽃말의 메타포로 마지막 인사를 건넨 그가 천국에서 편히 쉬기만을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재석의 '성공하는 의사결정'방법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