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강사로서 내가 집착하는 이것

최고의 수강 경험을 선사하리라

by 이동영 글쓰기 쌤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의장)
'최고'가 아니라도 '대체불가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에 이동영은 강사로서 집착한다.

강사로서 내 고집은 나와 수강생을 위한 마지막 자존심이다. 다른 건 유연하게 선택하려고 하지만 단 하나 어리석을 만큼 집착하는 것이 있다. 바로 수강생의 입장에서 교육(섭외) 담당자와 싸우는 일이다. 좀 과격한 표현일지 모르나 조율의 의미로 싸운다는 말이 맞다.

1. 사전질문 -

요구분석은 교육의 기본이다. 거창하게는 하지 않더라도 내가 만든 기본 질문을 수강생 전원에게 (모집 시) 응답하도록 한다. 그리고 응답을 하면 그에 맞게 강의안을 업데이트하는 식이다. 주제 안에서 수강생이 원하는 걸 강의하는 것이 기존 교안이나 내가 고생해서 준비한 걸 하는 것보다 더 우선이다. '질문 없음'이라는 질문이 다수라면 그마저 그들의 수강니즈나 수준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를 전원 응답으로 유도하는 건 교육(섭외) 담당자의 역할이 크다.


사전질문에 대한 강사의 답변이 끝나면 더불어 즉흥질문에 대답이 시작된다. 수강생에겐 잊지 못할 경험이자 배움으로 Q&A시간이 남는다. 자신이 직접 돈을 내고 오지 않았어도 시간을 내서 최소한의 의지로 강의장까지 와서 앉아 있는 이상 '이런 분위기에선 나도 뭔가를 하나라도 더 남기고 가져가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 된다. 수강이 성공적인 동시에 그 강의 역시 성공적인 것이다.


2. 수강 환경 세팅 -

온라인이라면 채팅참여와 카메라 ON은 무조건이다. 그게 이뤄지지 않는 온라인수업은 교육(학습)의 효과가 적을뿐더러 강사로서 즐겁지 않고 힘이 나지가 않는다. 내가 녹화 강의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이다. 수강생과 실시간 소통을 하되 가능한 한 자발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건 사전에 카메라를 켜야 '출석체크'가 된다는 등의 교육(섭외) 담당자 고지가 큰 몫을 차지한다. 어떤 대학이나 기업·기관은 그게 교육 섭외 담당자의 권한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오프라인 강의도 특히 4주 이상 연속 강의를 할 때, 수강신청자에게 출석을 상기시키며 일일이 해당 주마다 전화를 돌린다거나 저작권 문제에 있어 소통을 꼼꼼하게 해주는 교육(섭외) 담당자가 있다. 그 정도로 집착하는 담당자가 있어야 수강생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아무리 유명하고 좋은 강사가 와도 교육(섭외) 담당자가 이런 최소한의 기반을 닦아두지 않으면 차이가 난다. 하물며 미디어 노출이 현저히 적지만 실력 하나는 유명 강사보다 좋은 강사일 땐 얼마나 그 영향이 크겠나. 그건 시설이나 강좌의 규모와는 별개 문제다. 300명 이상의 특강에서도 가능하고 작은 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다.


3. 실습과 피드백 -

강사는 임팩트 있고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강의를 해야 한다. 이는 강사가 수강생에게 집착하는 끝판이다. 특히 나처럼 길어야 평균 4주, 보통은 일일특강을 하는 강사는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다. 수강생은 언제든 다양한 강의를 선택하고 중도 포기하기 때문이다.


또한 글쓰기 같은 경우엔 아는 것보다 하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강사로서 수강생들이 그럴듯한 기분만 내고 돌아가는 비율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한다. 반드시 강의가 끝나고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임팩트를 주며 강의 중 체험을 통해 동기부여를 하는데 시간을 할애하고 에너지를 쏟는다. 실습은 모두가 하고 강사에게 받는 피드백은 자원자에 한하는데, 30명 정도 수강하면 10명 가까이 자원하는 이들이 나온다. 이때는 사다리 타기라도 해서 2~3명으로 국한한다. 시간의 제약도 있지만 임팩트를 주기 위함도 크다.


또 아무나 언제든 무료로 들을 수 없는 '프리미엄' 피드백이란 인식도 받게 만든다. 이렇게 하면 다른 수강생의 글에 하는 피드백까지도 자신의 글에 적용하려는 태도로 임하기에 집중하는 분위기로 공기가 바뀌는 걸 알 수 있다. 만약 실습 자체를 기피하는 교육(섭외) 담당자가 있다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수강생에게 돌아간다.


4. 강사료

생계수단으로 강의를 하는 나는 일정 수준 이하의 돈은 받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협상을 청한다. 10년 차 강사이자 높은 만족도를 항상 유지하는 내가 10만 원 대 출강을 하는 건 터무니없는 선택이다. 그 예산은 강사이력이 적은 사람들을 섭외할 때 쓰면 된다. 내가 이제 갓 강의를 시작한 강사들의 자리까지 뺏을 이유는 없다.


생계로 강의를 하는 내가 강사료를 따지는 건 당연하다. 간혹 재능기부를 해달라거나 하면 나는 분노가 치민다. 내가 의식주를 해결해야 강의를 준비하고 시간과 교통비를 써서 출강을 할 것 아니겠나. 그건 시간 여유가 있고 연금 정도는 받는,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강사에게 요구하길 바란다. 나 같은 전업강사에겐 정당한 가치 교환을 요청해줘야만 한다. 책이라도 단체로 사주고 나서 재능기부를 운운하면 모르겠으나, 단체로 사준대도 그걸로 내가 당장 생계를 유지할 수준이 아니라는 게 현실이다.(인세가 바로 입금되지도 않을 뿐더러 책 몇 십 권 사준다고 몇 만 원 떨어지는 걸로 밥먹으면 끝이다.


나는 전업강사이다. 작가로 글만 써서 돈을 번다고 말할 수 없다. 생각해보라. 이 글도 구독료 없이 읽고 있지 않는가?


이동영이라는 강사의 퀄리티 높은 강의를 듣기 위해 초빙하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 예산은 써야 한다고. 나를 대체할 수 있는 강사가 있다면 그를 쓰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대부분 연차가 덜 쌓인 강사분들이 이 강사료 고민을 내게 토로하는데, '먼저 내 가치를 제안하세요'라고 내가 조언했을 때 공통적으로 하는 답이 이 말이었다.


"먼저 말을 못 하겠어요."


말해야 한다. 주는 대로 받다 보면 가치를 높이지 못한다. 연차가 쌓이고 경쟁자도 많아지고 생계도 절실해지면 누가 말하지 않으라 해도 언젠간 할 일이다. 간혹 지자체에서 '급수'를 따지는 강사비 지급표가 있다. 청와대 근무이력이나 국회의원, 박사급이 겨우 몇십만 원이고 그 이하는 거의 쳐주지도 않는다. 강의로 먹고 살아야 하는 강사가 뭐 먹고 살라는 건가.


나는 오직 급수만 따지는 곳에선 강의를 안 한다며 정중히 전화를 끊는다. 급수 이외에 여비든 원고료든 책 구입이든 추가로 하지 않으면 내가 출강할 여력조차 없다. 하나, 일단 강사료 협상을 마치면 그다음은 수강생이 우선순위이다.


어쩌면 내가 우선순위로 더 잘 보여야 하는 건 교육(섭외) 담당자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를 선택하고 내게 돈을 입금해 주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싸워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상대하기에 피곤한 강사를 어떤 담당자가 좋아하겠는가. 솔직히 강사는 널리고 널렸는데 말이다. 그러니 강사로서는 이 일련의 과정이 미련한 선택일 수 있다. 호락호락하게 돈만 받고 끝나면 깔끔할 테니까. '글쓰기'라는 분야의 특수성이기도 하겠다. 모든 분야의 강사가 다 담당자와 싸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글쓰기 강사인 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이렇게 따지고 싸워서 강사가 집착한 수강 환경, 분위기를 조성해 놓으면 만족도가 100%로 귀결된다. 어떻게 100%가 될 수 있냐 하면 정량적 평가는 5점 만점에 최소 '(4점) 만족/(5점) 매우 만족'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성적 평가로 들어가면 훨씬 더 구체적인 호평이 남는다.


요즘 나는 재섭외율이 높아졌다. 10년 차 출강을 해와서 겹치는 면도 있겠지만. 교육(섭외) 담당자가 바뀐 기업·기관·대학에서도 과거 수강생 만족 이력을 보고 몇 년 만에 다시 날 찾는 거다. 해당 해에 바로 섭외를 하는 건 금지되어 있어서 몇 년이 지나 다시 나를 섭외하는 거다.


그러면서 '그때도 반응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하며 섭외하는 식이다. 나는 나의 수강생 중심 집착이 옳다고 생각한다. 교육(섭외) 담당자도 눈치 짬밥이 있거나 열의가 있으면 굳이 싸울 필요 없이 죽이 착착 맞는다. 이때는 수강생도 강사도 담당자도 모두 만족한다. 수강생은 기대 이상이어서 만족하고, 강사와 담당자는 수고로움에 보상을 받아서 만족한다.


그저 예산을 소진하는(쓰는) 하나의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담당자와 만났을 때 이것저것 따지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할 뿐이다. 강사(교육자)의 말에 수강 분위기를 바꿀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고 생으로 먹으려 날 저렴하게 쓰려는 담당자에게는 정중히 출강을 거절한다. 돈이 궁할 때도 이 철학은 쉬이 버리지 않는다.


망해도 이걸로 망하고
흥해도 이걸로 흥하겠다는 게
내 교육철학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내 고집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나는 강사를 때려치울 것이다. 에너지를 쏟아붓는 강사라는 직업은 스스로 흥이 없다면 지속하기 어려운 직업이다. 이 흥은 내가 담당자와 치열하게 조율해 마련한 수강 분위기에서만 나온다. 수강생이 만족도가 높은 게 0순위이다. 내가 강사인 이상 이 신념을 버리진 않을 것이다. 강사라는 직업을 던질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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