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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r 16. 2024

강의는 기술이자 예술이다

내가 자료조사를 엄청나게 하는 강사인 이유

"단 한 개도
똑같이 그린 도면이 없단다."


아버지는 전기공사 및 수배전반 판넬을 설계하는 제조업계 '특급' 전기기술자이다.(30년 넘은 경력으로 인해 실제 급수가 '특급'임) 아버지가 했던 말씀 중에 내가 가슴에 품어 새기면서 내 강의에도 적용하는 것이 '같은 도면은 없다'라는 말씀이었다.

클라이언트사에서 두 개의 똑같은 판넬을 요청해도 두 번째는 더 효율적이고 더 나은 설계를 적용하기 때문에 수 십 년 간 그린 도면이 한 개도 중복되는 건 없다는 것.

나는 이거야 말로 '예술'이란 생각을 한다. 결국 '기술'과 같은 어원인 예술이기 때문일까. 어떤 고도의 기술은 예술과 구분 지을 필요 자체를 지워 버린다.

"강의안을 맞춤으로 제작한다는
 강사님 말씀이 이런 거구나 했어요"


오늘 강의 직후에 교육 섭외 담당자로부터 들었던 말이었다. 처음 강의 의뢰를 해주셨을 당시 '타 강의와 비슷한 주제가 있었다면 그대로 해주시면 된다'는 말에 내가 정색하고 그렇게는 안 한다며 수강생 맞춤으로 피드백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는지 재차 담당자를 귀찮게 만들었다. 어떤 담당자는 태도가 '그러세요 그럼..' 하는 스타일도 있는데, 이분은 태도가 달랐다.

제가 진작에 소통을
더 잘했어야 했는데..


.. 라며 강사인 나를 십분 존중해 주셨고, 나는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수강생을 만나기 전까지는 담당자의 태도와 그의 수강 분위기 조성이 강사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냥 직장인이니까 하는 담당자가 있고, 수강생을 대표해서 조율하며 하나라도 더 남기는 강의를 주관하려는 '직업인'인 담당자가 있다. 후자를 만나면 신이 난다.

나는 단 하나의 강의안도 똑같게 만들지 않으려 애쓰기 때문이다. 실제 1,000여 회 강의 중 한 번도 똑같은 강의안으로 강의한 적은 없다. 해당 출강처 관련 자료를 맞춤으로 인용해 제작하고, 그때그때 다른 수강 대상자 눈높이와 상황(니즈 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자료조사'를 이렇게까지 꼼꼼하고 많이 해서 수강생들에게 꼭 필요한 강의를 준비해 주신 강사님은 처음이라며 감사의 의미로 강의 직후 수강생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도 초대해 주셨다.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이렇게나 자료 준비를 많이 해주어서 감동이었다며 상대적으로 적은 강사료에도 최선을 다해 맞춤 강의를 해준 내게 연신 감사하다고 하더니 몇 개월 후 다른 기관에 날 강사로 추천해주시기도 했었다. 요즘엔 블로그 보고 연락 주시는 분들만큼은 아니라도 추천받아 연락한다는 섭외 담당자분들이 꽤나 생겼으니, 나 지금 잘하고 있다고 쓰담쓰담받는 기분이랄까.

만약 요청 주제가 타 강의와 어쩔 수 없이 중복되면 나는 강사료와 무관하게 더 품을 들인다. 강사료가 적다고 해도 이미 강의 수락을 한 이상은 따지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실제 어제는 정말 '한숨'도 안 자고 강의안을 밤새 제작해 장거리 오전 강의를 다. 날을 샌 건 강의안 업데이트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입버릇처럼 나도 준비과정에서 대충이란 없었다. 물론 날새는 중간에 딴짓(해찰)도 많이 했던 거 고백한다.

내가 강의안을 매번 다르게 하는 비결이 있다면 '사전질문' 배포 및 취합이다. 담당자에게 당부를 하며 수강생으로부터 사전에 질문을 받는데, '질문 없음'이라도 유도하여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해 가며 그들의 질문 속 니즈를 토대로 반영해 PPT를 새로 제작한다. 만약 질문 취합이 저조하면 대상자별 즉흥성이 강한 Q&A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대체하는데, 대개는 사전질문의 참여비중이 수강생들의 집중도와 만족도와도 이어진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긍정적 변화를 꾀해야 하는 강의는 흔히 '기술'이 필요하다-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이를 '예술'이라 생각하며 11년째 해오고 있다. 일종의 프로페셔널을 고수하기 위한 나만의 철학이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나름의 열정적 예술인 유전자의 자부심이다

오늘 강의 마친 후 교육섭외 담당자로부터 받은 문자

난 전국으로 출강을 하기 때문에, 혹 불미스러운 사고라도 나게 된다면(나무잡고 퉤퉤퉤) 내 강의의 말이 내 마지막 유언이란 생각을 한다. 내가 했던 강의에서의 태도가 내 마지막 태도이고. 내 강의에서 했던 유머가, 지었던 미소가, 손짓 몸짓 동선들이, 그리고 담당자가 찍어준 내 사진마저 모두 마지막이 된다라는 생각으로 강의에 임한다.


강사비 조율할 땐 칼 같지만, 조율 후엔 1000만 원짜리 강의도 50만 원짜리 강의도 다 똑같은 내 마지막 강의라는 생각으로 임한다. 그게 강사라는 직업인의 사명이어야 한다는  내 소신이자 자존심이며 철학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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