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영감의 원천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시간: 주로 새벽이다. 나에게 오롯한 침묵의 소음을 제공한다. 다음날 아침의 이불킥은 막지 못한다. 새벽 이외의 시간에도 수시로 메모한다.
2. 공간(또는 상황) 주로 샤워할 때(샤워실), 화장실에서, 회의실(회의할 때), 면접볼 때 ㅎㅎ, 미용실에서 머리할 때, 너무 피곤해서 눈이 감긴 직후 등등 메모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처한 공간에서 영감은 번뜩인다.
3. 사람: 직장에서, 카페에서, SNS에서, TV영상이나 책 속의 캐릭터로부터 단어 하나에 꽂히거나 대화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주로 쓴다.
4. 주변 사물: 세탁기나 세면대로부터 받은 영감도 많다. 벽과 문을 보면서 상징적으로 쓸 수 있고,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나 휴지통도 다 단골 제재이다. 직접 글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그걸 사용하는 과정상에서 떠오르는 것이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된다.
5. 예전 메모: 그때 그때 순간의 감성을 기록해놓았기 때문에 지금 느끼지 못하는 감성을 다시 꺼내어 퇴고한다. 그래서 가끔 현재 나의 실제 감정으로 오해를 받곤 한다. 가까운 대상과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난감한 경우가 생긴다. 늘 관계에 있어 감당하고 가야하는 부분이다.
6. 인기검색어: 사람들이 좋아하는 붐이 일어나는 이슈 트렌드에서 내가 공감하는 것들은 즉흥으로 올린다.
7. 익명어플: 요즘 내가 가장 신나게 유영하는 영감의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부분의 짝사랑, 이별, 고민 등은 실제 대화에서도 영감을 얻지만 요즘은 이곳에서 많이 따온다. 이미 타인의 감정을 빌려오는 거라서 혼자만 끄적일 때보다 훨씬 공감 피드백을 많이 받는다.
8. 벅차오르는 감정: 감성작가라고 하기엔 많이 둔해진 면이 있지만 여전히 사진을 찍는 감각은 살아있는 걸 보면 발견하는 찰나의 감성으로부터 휘갈겨쓰는 글은 확실히 있다. 누군가로부터 느끼는 분노, 감사, 인정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9. 나에게 하는 말: 지금 이 시점에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글로 기록한다.
10. 속담, 명언: 조금만 바꾸면 무한한 상상력으로 발현된다.
11. 기타: 내가 찍은 사진, 오타, 혼자있는 시간의 단순하지 않은 많은 감정들(기다림, 그리움, 우울함 등.. 주로 심심함에서 기인한다).
12. 무의식: 떠올리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손끝으로 쓴 후에 확인하는 99.9% 즉흥글이 있다. 이때는 나도 경이로움을 느낀다. 가끔 천재가 아닌가 하는데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작가로서 자존감이 그나마 높아진다. 주변의 음악, 냄새, 공기의 온도나 분위기가 무의식에 저장되고 자극하기도 한다.
특히 수다를 하면서 무의식이 많이 꺼내진다. 수다를 권장한다. 혹자는 술에 취한 후 떠들면 검열 필터링을 거치는 것이 둔해져서 무의식으로부터 그럴듯한 아이디어들이 제약없이 나온다고도 한다. 그러니 혼술보단 함께 마시는 걸 권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카페수다를 더 선호하지만. 새벽에 취해 쓰는 것과 비슷하다. 착각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좋은 영감이 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