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불평과 불만, 상처와 짜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긍정이란 부정을 무조건 꺾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러하다'라고
'인정'하는 태도가
바로 '긍정'이다.
난 그동안 순진한 관점으로 살아오면서 너무 세상에 실망하고, 사람에 쉬이 상처받고, 내향적이란 이유로 낮은 텐션을 유지하며 크게 감사해할 줄도 몰랐던 것 같다. 이제야 깨달았다. 인생은 기본 전제가 고통이고, 삶 자체가 죽음을 향하는 유일한 여정이며, 태어난 것으로도 큰 사명을 다하였고, 세상은 불친절하며, 사람은 100%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그 이유는 내 기준과 다른 삶을 각자 개인의 기준으로 방어하며 대처하며 그렇게 살아왔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핍과 충만의 반복으로 인해 내게 보인 상대의 모습이 꼭 그렇게까지 내 생각만큼 이기적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
그건 상대가 나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고 상대의 삶도 다름없이 그러하다. 이걸 인정한다면 조금만 기뻐도 조금만 좋아도 진심으로 감탄하며 조금만 상대가 내게 베풀어도 깊이 감사하게 된다. 억텐이 아니라 진짜 감흥을 온전히 느끼는 일상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얘기다.
날 아프게 한 사람, 이상한 사람, 못 믿을 사람을 겪어도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 역시 내가 잘해서도 잘나서도 아니듯이. 내 운명이 잘못되어서도 자만할 만큼 특별해서도 아닌 것이다.
누구나 가려진 설움을 사연으로 하나씩 품고서 살아가는 인생이다. 아무리 밝아 보이거나 강하고 세 보여도 겉모습일 뿐.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역사가 있다. 개인의 역사가. 그 서사 위에서 상황 속의 행위가 하필 그렇게 서로의 타이밍에 맞아 버린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억지로 이 세상과, 인생이란 운명과, 인간에게 괜한 환상의 색안경을 낀 채 실망하고 상처받을 일이 아니다. 내가 세상과 인간에게 내 이상을 덧그린 것인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본래 (별로인) 그러한 인생의 기본 옵션에 행운처럼 멋진 풍경, 좋은 상황, 괜찮은 사람을 맞닥뜨리게 되는 거라 믿으면 꽤 살아볼 만한 인생이다. 회복하고서 다시 살아볼 만한 인생.
이 글의 결론은 장원영 씨의 '럭키비키', 노홍철 씨의 '좋아, 가는 거야', 침착맨의 '오히려 좋아'와 맥을 같이 한다.
그렇다. 불평·불만·상처와 짜증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의 부정함을 전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대하지 말자는 말 대신, 본래 인생과 타인의 기본값이 이 정도라고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렇게 믿고 살면 짜증 내기보다는 먼저 베풀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또한 작은 일에도 김동하고 새로운 것에 감탄하고
겉으론 좋아 보이는(잘 웃거나 잘 나가거나 화려하거나 강해 보이는) 사람까지도 측은하게 느끼고, 무엇이든 침착히 잘 대처하고 대체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긍정의 관점을 다시 전제해 보자. 내 인생이 확실히 달라진다.(이동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