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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an 15. 2017

올해 내 운세가 삼재•아홉수라는데...

설날에 떡국을 안 먹어도 한 살은 먹는 당신에게

*친구에게 말하는 상황 설정입니다.     

그래, 내가 관상도 봐주고 타로도 풀이해주니 이젠 이런 질문까지 하는구나. 실은 물어보는 사람 많아서 귀찮았는데, 한 번에 정리할 때가 온 것 같네. 오키. 지금부터 삼재(三災)에 대해서 알려주마.     


삼재(三災)는 석 삼자에 재앙 재자를 쓴 한자어야. 재앙 ‘재’ 자는 한자 생김새도 어째 불길하지? 삼재는 사주에 근거한 명리학에서 나온 용어가 아니라, 본래 불교에서 유래된 용어라고 해. 현대사회에 와서 명리학은 나름 빅데이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불교는 알다시피 종교야. 믿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개념이랄까. 난 믿는 사람들 존중해. 내가 믿지 않을 뿐.


불교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 그 믿음을 이용한 마케팅에 나는 반대해. 나쁘게 말하면 상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마치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본질이 사라진 기념일 같은 거지.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삼재가 뭐였는지 봐야겠지?


불교에서는 삼재를 우리의 몸(身,) 말(口,) 생각(思)으로 인해 생기는 재앙(災殃)이라고 했어.

우리가 고통을 전제로 태어난 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삼독심(三毒心)으로 업이 쌓이게 돼. 삼독심은 탐(욕심), 진(성냄), 치(어리석음)라고 하는 것의 생각과 말, 행동을 말해. 그 업으로 인해서 언젠가 재앙을 받게 된다는 개념이지.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가 가끔 ‘업보’라는 말한 거 기억나? 요즘 현대인들은 업 쌓인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는 게 더 문제이지만.


사실 삼재라는 걸 말할 때는 한 가지 교훈을 염두에 두어야 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스스로 다스리며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야.

비싼 부적 써서 지니고 베개에, 속옷에 뭘 어떻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을 실천하면 되는 거지. 욕심은 베푸는 마음으로 치환하고, 화내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 어리석은 마음은 지혜로운 마음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거야.     


사람에 따라서는 삼재에도 재앙이 아닌 재물이 찾아올 수 있다는 건 몰랐지? 물론 삼재를 검색한 사람들은 이러겠지. 예를 들어 자신이 호랑이띠인데, ‘내가 올해 묵 삼재라는데 이거 부적이라도 써야 하는 건가’ 하는 우려. 혹은 돌부리에 넘어져도 ‘아씨, 역시 나는 올해 삼재가 껴서 그래.’라고 하는 사람들인 경우야. 그렇게 믿으면 계속 그렇게 생각해야지 뭐. 그렇게 살면 그게 답인 거니까.


아, 묵삼재(눌삼재)가 뭐냐고?


작년 2016년 첫 삼재를 맞이(들삼재)해서 이번 2017년에는 그게 눌러앉은 두 번째 해라는 거야. 2018년은 날삼재, 말띠, 호랑이띠, 개띠에 해당하지. 아마 이 띠들이 사주팔자를 보러 가면 2018년에는 비교적 풀린다는 말을 많이 들을 걸?


자, 여기에서 본질적인 의구심을 품는 거야. 3년 중 한 번은 재난을 꼭 당한다는데, 난 안 믿어. 그게 ‘삼재가 껴서’라는 걸 굳이 안 믿는다는 거지. 삼재는 불교를 제외하고 찾아보면 본래 전근대적인 농경사회에서 발생하는 3가지의 재앙을 말하는 거라니까.

여기에서 대삼재는 수재, 화재, 충재이고 소삼재는 도병재, 역려재, 기근재야. 전쟁이 많았던 시기에 병기에 해를 입거나 농사일을 하면서 농기구에 의해서 해를 입는 것, 전염병에 걸리는 것, 굶주리는 것 등의 재난을 말해.     


난 이렇게 생각해. 지킬 것 지키면 된다고. 나의 정신을 지키고, 나의 건강을 지키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나의 양심을 지키면 된다고.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천재지변이 있을 때는 다 같이 힘을 합쳐야만 가능한 거잖아.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물론 예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예방해야겠지만.     


아홉수도 비슷해. 흔히 나이 뒤에 숫자가 ‘9’에 해당하는 걸 말하는데, 이거 다 아주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일상을 살면서 신에 의존할 것이 필요했던 시대에 유래한 것이라 현대랑은 잘 안 맞는다고! 두 글자로 ‘미신’이라고 하지. 9를 경계해야 하는 숫자로 여긴 건 ‘9’가 ‘10’이 되기 전 미완의 숫자이기 때문일 거야.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끝마무리’에 대한 중요성과 조심스러움에서 선조들이 강조했다는 설 등이 있대.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홉수 자체가 이론적으로 뒷받침될 어떤 근거도 없는 얘기야. 열아홉은 그냥 열아홉 번째 생일을 맞은 해에 살고 있는 거라서 힘든 거라고. 열아홉 살이라서 특별히 힘든 게 아니라. 스물아홉 살도 서른 앞두고 힘든 거고. 다 똑같아!


가끔은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해. ‘그래, 내가 아홉수라 그랬던 거야’라고. 살다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니까. 세 글자로는 ‘기분 탓’이라 하는 그거.


하, 그러니까 삼재•아홉수 이런 걸로 부적 쓰거나 신세 한탄하며 불안에 떨고 있으려면 나 찾아와서 맛있는 커피랑 티라미수 케이크나 하나 사줘. 그럼 다 잘 풀리라고 온 힘을 다해 내가 축복해 줄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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