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렇게나 행복한데요.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흔히 '왜 사냐'건 웃지요 혹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행복'은 대답을 굳이 안 하더라도 무의식에는 대부분 바탕색처럼 칠해져있는 삶의 목표일 것이다. 필자는 겉으로는 생각이 달랐다. '버티기 위해서 삽니다' 라고 답해온 것이다. 삶은 고통이고, 나는 이 삶을 원치 않았으나 자살과 같은 건 스스로 인위적인 것이 되기에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어떻게든 버티는 과정인 거라는 생각.
근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남들처럼' 살 것이냐,
'나처럼' 살 것이냐이다.
이렇게 물음을 던져보니, 아 나도 결국엔 '행복하기 위해서' 삶이란 고통을 버티려고 발버둥치는구나, 타협하고 순응한다는 것은 행복을 바라는 막연하지만 막연하지 않은 행위이구나 생각했다.
다시 행복이란 무엇일까? 정의를 내려보기로 한다.
물론 이 질문에는 (나에게)라는 전제가 붙는다. 그래야 '남들처럼'이 아니라, '나처럼' '나로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는 평균에 나를 끼워 맞추는 일은 온전히 하나의 존재라는 축복과 같은 개성을 버리고 보통처럼 연극하는 것에 불과하다. 세상엔 정말이지 평범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독특한 사람들이 많다.
결국 나에게 행복이란
'눈치보지 않는 삶'이라는 정의가 내려졌다.
새로 이사 온 월세방에서 신나게 요리하고 혼밥 후 설거지를 하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다. 눈치보지 않는 삶이란, 즉 '주체적인 삶'을 말한다.
말은 쉽다. 자기계발서나 그걸 강연하는 사람들이나 철학자들이 늘 강조하는 문장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부모, 가족, 친구, 지인, SNS 팔로워들에게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인정받는 삶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나를 잃는다. 그건 내 삶이 아니다. 내 삶의 기준점은 나의 생각과 행동에 찍혀야 한다.
필자는 지난 12월 30일 20개월간 다니던 곳을 퇴사 한 이후에 다음 회사에 취직하지 않을 경우 '돈 걱정'이 약 4개월 뒤에는 폭풍처럼 밀려올 것임을 아주 잘 안다. 월급관성이라는 타성에 젖어 그 날만 되면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왔던 지난 시절에는 신용카드도 썼고 대출도 썼으나 지금은 모두 갚고 0원인 상태여서 실업급여로 버티면 취업에 실패하더라도 3개월은 가능하다. 이 때, 4월 취업은 불가피하다. 정확히 말하면 4월부터 최소 80만원 이상의 돈이 있어야 행복을 유지할 것임을 잘 안다.
필자가 행복한 시간을 쭉 나열해보면- 연어초밥을 먹는 시간,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선한 영향을 받는 시간, 혼자 요리하는 시간, 글쓰는 시간, (강연, 사회, 노래)무대에 서는 시간, 모임을 주관하는 시간, 혼자 집에서 마음 놓고 있는 시간, 자연 혹은 인간의 작품에 감탄하는 시간, 익숙한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 순간 등등이었다.
80만원은 필자에게 이 시간들을 눈치보지 않고 만끽할 수 있는 최소자금인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대비해서 행복최소자금은 따라 오를 것이지만, 평생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한 내 삶, 온전한 내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행복의 성질은 '착각'에 기인한다.
이래도 내가 철이 없는 걸까요?
'난' 이렇게나 행복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