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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글을 쓰다

커서 앞에서 눈만 깜빡

by 이동영 글쓰기

커서라도 켜놓으면 다행인데, 아예 거기까지도 안 간다. 워낙 컨디션이 그동안 좋았는지 어떤 영감으로 인하여 글이 '차오를 때'가 오면 써왔던 것이다. 커서를 앞에 두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커서보다 빨리 글을 써놓는 습관이다. 일필휘지가 일필휴지가 될 때도 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지금처럼 긴장이 다 풀려버렸을 때, 어떤 부대낌없이 아주 매우 정말 진짜 행복한 백수상태에서 여유를 만끽하다보면 정신을 놓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삽십 몇년 평생 살면서 이렇게 행복하긴 처음이다. 가족, 친척, 애인, 썸녀, 이웃, 상사, 선•후배, 지인, 친구 등등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서 이렇게 오늘을 나 하고 싶은대로 살아도 살아지는 삶이라니! (사회화된 내가 그 자극이 없어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긴 하지만)인간의 본성을 따라가는 작업, 그 평생의 숙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예술적이고 철학적 물음의 화두와 친숙해지는 일이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가능치 않는 법이다. 그래서 왜 글을 쓰지 못하는 걸까? 하는 물음에서 이 글의 쓰기는 시작되었다.


답은 정해져있는 게 아니다.

전인미답으로 귀결짓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다양한 길을 모색해보다가 나를 깨달아 가는 과정 속에서 외부세계라는 우주에의 유영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확신을 갖는 시간이 현대인에게는 절실하다. 예술가들은 그 어려운 걸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글을 쓰는 것도

아주 가끔은 쓸데없이 쓸모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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