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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r 15. 2017

책 못 읽는 어느 작가의 고백

제 얘기입니다.(남들의 독서법은 다 소용없더라구요)

앞서 나는 책을 3권이나 내고, 책을 냈다는 자격으로 강연도 하고 책 모임을 운영하고 방송도 한다는 글을 쓴 바 있다. 책을 3권이나 냈으니 '박식'하다거나, '생각을 정리할 줄 아는' 사람 정도로 봐주신다. 그런 분들은 '작가'라는 타이틀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어쩌면 존경하는 분들일테다. 혹여나 나는 작가로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이 글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릴 지도 모르겠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놓고 싶지 않으면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고백을 하는 것 자체가 글쓰기의 기능적인 측면이자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책을 못 읽는다.


적어도 가까운 친구나 울 엄마에 따르면 나는 책을 '안 읽는 거일 수도' 있다. 이 주장과 관련해 헤이아치(철권)캐릭터를 닮은 고등학교 수학선생님과의 일화가 떠오른다. 칠판에 풀이과정을 1도 못 쓴 내게 넌 왜 수학 공부를 안하냐며 꾸짖었을 때,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죠."라고 했다가, "무어???"라고 하길래, "아닙니다.."라고 그냥 꼬리 내린 적이 있다. 수학문제에 완전히 이해한 식을 대입해서 풀이하고 정답을 낸 후 다음 진도를 빼는 것처럼 차근차근 차분히 책을 읽어내고 싶지만 난 그걸 할 줄 모른다.


 독서를 '못'하는 것이다.(누가 뭐래도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3년 가까이 참여한 독서모임에서 그나마 다섯손가락에 꼽는 5권 정도 읽었던 것이 서른 평생 완독의 수이다. 정말이지 부끄럽지만, 나는 매일 글을 쓴답시고 글 '쓰는' 것만 좋아하지 책을 읽는 데는 너무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난독'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확히 난독인지도 잘 모르겠다. 완독한 책 중에 딱 1권은 거의 단 숨에 읽어내기도 했다. 김영하 작가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소설책. 읽는 장르를 이 쪽으로 우선 바꿔야 하나?(실제 습작하는 내 소설은 이 소설의 호흡을 닮아있다.)


책 팟캐스트로는 대한민국 1위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내가 산 책' 코너를 들으면서 겨우(?)이름 한 글자 다를 뿐인 내가, 저렇게 많은 책을 읽는 이동진 평론가의 반의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데, 글을 쓴다고 온오프라인에서 설치고 있으니, 큰 문제다. 책을 읽겠다고 엄청 많이 책을 사지만, 지적 허영심만 늘어날 뿐이다. '이 책을 완독했습니다-'하고 인증하려고 인스타그램 책 계정(@dong02books)을 만들었는데, 얼마 안 돼 '책을 읽겠습니다-'하고 새로 산 책을 인증하는 것과 섞기로 했다. 그리고 또 못 읽는다. 좀 처럼 '완독'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책 관련 모임을 만든다면 '완독 모임' 포맷을 구상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내가 좀 필요한 모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책을 완독 할 필요는 없다고 이동진 평론가도 말한 바 있다. 재미없으면 확 뛰어 넘겨도 된다고. 또 많은 문필가들이 책은 여러 책보다 좋은 책 한 권이라도 좋으니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깊이 있는 독서법이라며 권장하기도 한다.


근데, 문제는 완독하지 않는 책이 나에겐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오히려 비문학은 그래도 되는데, 소설은 그러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나 개인의 이해력이 달리는 것도 있을 뿐더러, 집중 몰입도도 현저히 떨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순수한 고백은 별 쓸데없는 것 같지만, 부디 글을 쓰려는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직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글 쓰는 게 좋은 분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희망이다. 읽고 읽고 또 읽어서 나같은 글쟁이도 책을 쓰고 글을 공유하는데, 당신인들 못 할 쏘냐? 그렇다고 나와 비슷한 증상으로 글만 쓰는 건 비추이다. 나도 이걸 '극복해야 하는 과제'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결론이 '이해력'과 '집중 몰입도'이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날 자꾸만 노출시키려 한다.


사실 글을 쓸 때에도 아주 조용한 내 방에서 혼자 집중해 쓰거나 북적대는 카페의 백색소음을 들으며 쓰거나 하는데, 후자가 느낌상으로는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것 같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방에 테이블 4개 정도를 셋팅해 놓고서 테이블마다 타자기를 두고 방 안을 돌아다니며 글을 썼다고 한다. 그래, 무릇 작가라면, 글쓰기는 물론 독서에도 그런 치열함이 있어야 하는 게 맞다. 천재가 아닌 이상 이대로 허접한 역량에 정체가 되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지금이야 젊으니까 어떻게든 버티는 거지 나이 더 먹고 나면 남는 건 내가 읽은 책을 기반으로 한 내 경험의 논리 뿐일텐데.


좀처럼 독서의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면, 독서의 목적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왜 독서를 하는가? 그렇다. 나는 독서를 하면서 '작가의 관점'을 자꾸만 살펴보려고 하니 유희가 아니라 자꾸 분석하려들고 작가로서 공부하려 드는 태도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일단 완독 후 몇 번 반복해서 다시 읽을 때 해도 되는 과정이란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굳이 처음 읽을 때부터 작가의 필력에 나를 비교해 내 작가적 역량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거나 해서 몰입을 스스로 방해하는 건 소모적인 발상이란 걸.

끝까지 읽는 습관의 꾸준함도 중요하다. 습관이 되지 않으면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은 나를 자극하게 해야 한다. 동선을 재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글은 짓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라고 유시민 작가님이 책에서 말한 적이 있다. 글은 내가 쌓아온 레퍼런스로 나의 생각을 쓰는 것이고, 그것의 견고함은 책으로부터 나온다. 경험의 논리를 상식적이고 발전적으로 정리해내는 것도 책읽기로부터 비로소 '완성'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믿음으로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책을 가까이 하고 독서를 사랑하리라 다짐해본다. 이 글을 읽는 훌륭한 독자분들 역시 그런 믿음으로 필자의 부족한 글에 댓글 피드백을 남겨주셨으면 좋겠다.


언젠가 김미경 강사님이 이런 취지의 강연 중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강연하는 걸 너무나 좋아하고 즐기는데, 강연을 준비하는 건 너무나 힘들고 괴롭다고.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서 힘든 걸 감당해야 하는 건 숙명이다.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 책읽기(독서)를 하는 건 유희뿐 아니라, 작가에게 숙명과도 같은 노동의 과정이기도 할 테니까.


이 글을 올린 후 부단히 노력한 결과, 현재(17년 12월 기준)는 책을 읽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씀을 드리면 어려움을 느꼈던 것을 돌파하는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고 할까요? 굳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 책을 읽을 때, 완독에 얽매이지도 않고요. 저와 비슷한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이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꾸준히 노력하면 됩니다. 저도 했으니까요.

독서는 단순히 완독이 목적이 아니라, 이해의 토대가 되는 간접경험이 독서의 목적이니까요. 완독이 목표는 될 수 있어도 목적이 되는 건 다른 문제겠지요? 독서의 목적 설정을 하고 단 한 문장, 한 챕터를 읽더라도 또 한 권을 느릿느릿 읽더라도 즐겁게 책읽기를 누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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