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수업
이 과학사 수업의 공식 교재는 [과학서 서설]이라는 책이었는데 표지가 초록색이라 당시 초록책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당시에도 한 세대 전에 나온 책이라는 느낌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오래된 책이다. (찾아보니 출판 연도가 1997년으로 생각보다 오래되지는 않은듯..) 노교수님은 이 책에서 중간고사 문제가 나오는 다섯 구간을 페이지로 꼽아주시면서 이 중에서 세 문제가 나올거라고 언질을 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문제가 공개되니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장점은 남들도 똑같이 느끼는 장점이었고, 아시다시피 이 과목은 상대평가라 생각해보면 굳이 나한테만 유리한 점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시험 전날.. 많은 시험응시러들이 그렇듯 '밤새면 되지 -> 시간 많아 -> 조금만 쉬자' 이런 무한루프가 발동되어 공부를 놓은 채 어느덧 시간은 새벽 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참 시험 기간만 되면 소설이나 라디오 같은 평소에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콘텐츠들이 왜 자꾸 눈에 들어오던지... 답안을 정리해야하는데 시간만 흘러갈 뿐 만족할만한 답안은 계속 나오지 않았다. 과학에 자신있다던 그 마음가짐은 벌써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 무한루프가 계속 이어져 결국 '밤새고 시험 보고 자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밤을 새운 채 시험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오전 10시에 보는 시험이라 다른 시험에 비해 일찍 보는 느낌이었지만 제정신이 아닌 상태인건 명확한 사실이었다. 결국 시험을 잘 보겠다는 생각보다 '빨리 끝나고 자야지'라는 생각이 앞선 채로 시험을 보게 되었고 정답을 다 쓰긴 했지만 답안은 지금 생각해도 고득점을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때 시험문제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기억나는 사람 이름이 토마스 쿤(Thomas Kuhn)이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막연히 이름만 기억 나서 누구인지 다시 검색해보았는데 과학사학자였고 당시 교수님이 강조하신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창안하신 분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개인적으로 '문과형 인간'으로 진화한 지금. '토마스 쿤'이라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 것만으로도 이 수업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정도의 추억거리를 소환하는 수업이라면 꽤 유익했던 수업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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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의 생각은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는 것이었고, 당시에는 시험 준비를 제대로 못해 시험을 망쳤다는 생각만이 뇌를 지배했고 기말고사에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서두에 이야기했다시피 '과학사'는 남들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