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1154 - 1189][플렌테저넷 왕조]
1. 이름 : 헨리 2세 (Henry II)
2. 별명 : 'Henry Curtmantle' 'Henry FitzEmpress' (황후의 아들)
3. 왕조 : '플렌테저넷 왕조'
4. 대략의 분위기
마틸다 황후의 노력으로 왕위를 이어받은 헨리 2세. 헨리 2세의 아버지가 플렌테저넷 가문였기 때문에 대게 헨리 2세부터 '플렌테저넷 왕조'의 시작으로 본다. 헨리 2세는 프랑스 아키텐 지역의 상속자였던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결혼해 현재 프랑스 서쪽 지역의 거의 절반을 먹고 스코틀랜드 쪽도 굴복시켜 거대한 영토를 차지한다. 하지만 호색한이었던 헨리 2세. 가족들 간의 관계가 개판이었는데 후에 줄줄이 왕이 되는 자식들과의 관계가 모두 안좋았다. 그리고 나중엔 부인 엘레오노르와도 안좋게 되어 갈등을 빚으니 겉으로는 치적을 쌓았으나 속은 아주 문드러진 그런 왕이라고 볼 수 있다.
5. 주요 키워드
1) 플렌테저넷 (Plantagenet)
'플렌테저넷'이라는 이름은 헨리 2세의 아버지인 앙주 백작 조프르아 5세가 투구에 금작화 가지를 꼽고 다닌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뭔가 항상 이 이름을 들을 때마다 중세 고풍스러운 느낌이라는 생각) 플렌테저넷 왕조는 후에 일어나는 장미 전쟁에 등장하는 '요크 가'와 '랭커스터 가'의 본산이며 대략 300여 년 동안 영국의 왕가를 구성한다. 15세기 중반 요크가의 리쳐드라는 인물이 자신의 왕위 경쟁권을 상징화하기 위해 이 명칭을 적극 사용했다고 하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명분이 참 중요한 거 같다. 그때 한번 재조명되지 않았다면 이 이름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또 유명해졌을지 궁금해진다.
2) 자식들 간의 갈등
헨리 2세와 부인 엘레오노르 사이에는 3명의 왕이 나오지만 그 아들들과 헨리 2세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그게 자식들은 잉글랜드 지역에 주로 있었고 헨리 2세는 주로 프랑스 지역에 있었기 때문. 후에 3명의 자식들과 헨리 2세는 처절하게 싸우는데 어머니인 엘레오노르를 유폐시킨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당시 잉글랜드 왕국은 프랑스 지역까지 엄청나게 확장하며 기세를 올리지만 많은 자식들 간의 영토 분배 문제와 여러 갈등으로 점점 잉글랜드 왕국은 힘을 잃게 된다.
3)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헨리 2세의 배우자인 이 분은 어려서부터 아키텐을 이어받을 후계자로 지정되었고.. 그래서 프랑스의 카페 왕조에서는 일찍부터 영지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 왕실 후계자인 루이 7세와 연결시켜 둘은 결혼한다. 하지만 사이가 안 좋아져 이혼하고 엘레오노르가 다음에 결혼한 상대가 바로 헨리 2세. 헨리 2세와는 초반 금실이 좋았던거 같은데 루이 7세와는 딸 2명 정도밖에 없었지만 헨리 2세와는 5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가졌던게 그 증거라고 할 것 같다. 하지만 외부에서도 왕성한 헨리 2세의 활동에 엘레오노르는 반감을 가지게 되고 아들들을 꼬셔 헨리 2세를 등지게 한다. 하지만 헨리 2세는 모두 진압하고 엘레오노르는 유폐되기에 이른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양쪽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큰 인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