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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쓰 Nov 11. 2022

1-16. 에드워드 4세 (Edward IV)

[잉글랜드][1461-1470, 1471-1483][요크 왕조]

1. 이름 : 에드워드 4세 (Edward IV)

2. 별명 : '요크의 에드워드' (Edward of York)

3. 왕조 : '요크 왕조'

4. 대략의 분위기 


실정을 거듭한 헨리 6세는 결국 영국 내 반발 세력에 의해 폐위되는데,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이 요크의 에드워드 4세다. 랭커스터 가문이 아니었던 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건 리차드 네빌(Richard Neville)이라는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 하지만 항상 이런 조력자는 초창기에는 권세를 누르지만 점점 왕에게 짐이 되는 존재가 될 뿐.. 결국 에드워드 4세를 프랑스 쪽과 결혼시키려고 했던 네빌의 의도와는 달리 에드워드 4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이라는 여자와 결혼하며 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결국 네빌은 에드워드 4세의 반대편인 랭커스터 쪽에 서서 저항하기까지 이른다. 네빌은 초반에 에드워드 4세를 사로잡기도 하지만 결국 패배하고 이때 헨리 6세의 아들 에드워드(또 에드워드)까지 전사하며 헨리 6세의 세력은 사라지게 된다. 


키도 크고 엄청 잘생겼다는 에드워드 4세.


5. 주요 키워드 


1) 장미전쟁


에드워드 3세의 아들들에서 유래된 '랭커스터'가와 '요크'가의 갈등을 의미한다. 헨리 4세부터 랭커스터 가문의 인물들로 왕위가 이어지던 차에 요크 공작 리차드가 반발하며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두 가문의 갈등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후에 헨리 6세를 축으로 한 랭커스터 가문은 반발하지만 결국 요크가의 에드워즈 4세에게 진압당하고... 다들 아시겠지만 후에는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이 결혼으로 하나로 합쳐지면서(중간에 복잡한 과정이 있긴 하지만) '튜더 왕조'를 형성하고 잉글랜드는 그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랭커스터가가 '붉은 장미', 요크가가 '흰 장미'를 상징으로 해서 두 가문의 대결을 장미 전쟁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이게 확실한 상징이 맞는지도 논란이 있다고 한다.


퍼온 사진인데 출처가 어디였던지..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2)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


이 분 미모가 출중했던거 같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리차드 네빌은 에드워드 4세가 프랑스 쪽과 결혼하길 바랬으나 에드워드 4세는 그녀를 보고 바로 결혼해 버린다. 놀라운건 그 당시 그녀의 신분이 평민이었음과 동시에 미망인였던 것. 이로써 그녀는 리차드 네빌과는 바로 원수지간이 되어버리고, 랭커스터 쪽으로 돌아선 네빌과 치열한 혈전을 거둔 끝에 결국 승리하여 리차즈 네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그 후 왕위에 오르는 에드워드 5세를 낳으나 힘이 있던 에드워드의 숙부 리차드 3세의 압박으로 인해 에드워드 5세는 감금되고 그녀는 왕실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진가는 여기서 나온다. 그녀는 몰래 도망가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 가문이었던 헨리 튜더(Henry Tudor)를 찾아가 자신의 장녀 요크의 엘리자베스를 연결시켜 정통성을 주겠다고 선언!! 결국 헨리 튜더는 전력의 불리함을 뒤엎고 리차드 3세를 물리치며 왕위에 오르고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다시 왕실에 입성한다. 이전에 축출되었던 에드워드 4세와 그 자식들의 신원이 복권된 것은 보너스!! 후에 권력의 중심에서 물러나긴 하지만 그래도 왕실 주요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왕실의 어머니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집념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엘리자베스 우드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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