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1519-1556][합스부르크 왕조]
1. 이름 : 카를 5세 (Karl V)
2. 별명 : (이라기보다 공식 직함)
카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임명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독일왕, 이탈리아의 왕,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시칠리아 열도, 예루살렘, 나바라, 그라나다, 톨레도, 발렌시아, 갈리시아, 마요르카, 세비야, 사르데냐, 코르도바, 코르시카, 무르시아, 하엔, 알가르베, 알헤시라스, 지브롤터, 카나리아, 서인도와 동인도, 섬들과 대양의 메인랜드의 왕, 기타 등등등. 오스트리아의 대공, 부르고뉴, 브라반트, 로트링겐, 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크라인, 림부르크, 룩셈부르크, 겔데른, 아테네, 네오파트리아, 뷔르템베르크의 공작, 슈바벤, 아스투리아와 카탈루니아의 공, 알자스의 영주, 플란데런, 합스부르크, 티롤, 고리치아, 바르셀로나, 아르투와, 에노, 홀란트, 제일란트, 페레테, 키부르크, 나무르, 로씨용, 세르다뉴, 쥣펀의 백작, 부르가우, 오르시타노와 고르치아노의 신성 로마 제국의 후작, 프리지아, 벤디세 마르크, 포르데노네, 바스크, 몰린, 살랭, 트리폴리, 메헬렌의 군주, 기타 등
3. 왕조 : '합스부르크 왕조'
4. 대략의 분위기
먼저 카를 5세는 전에 나온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이 아닌 손자라는 점을 밝힌다.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은 펠리페 1세로 '미남왕'으로 불렸던 인물이고 카를 5세는 이 펠리페 1세의 아들이다. 카를 5세는 '합스부르크'와 '신성로마제국'은 물론 중세 이후 르네상스 무렵시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명이 감당할 수 없는 땅과 직책이 그에게 굴러 들어왔기 때문에 그 모든 영토를 잘 다스리는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어찌되었던 카를 5세가 물려받은 땅은 한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의 영토는 분할되기에 이르는데 그가 죽은 뒤 '신성로마제국' 쪽은 동생인 페르디난트 1세 쪽으로 계승되게 되고 아들인 펠리페 2세는 스페인 쪽을 계승하게 된다. 그 후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은 느슨하게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각자의 정체성에 맞게 발전하게 된다.
5. 주요 키워드
1) PLUS ULTRA
'보다 멀리 나아가다'라는 뜻으로 카를 5세의 상징과 같은 표어라고 할 수 있다. 카를 5세는 위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엄청난 영토와 작위를 가졌던 인물이다. 이게 대부분 카를 5세 위 세대에서 결혼이나 전쟁 등으로 일구어 놓은 것을 물려받은건데 아무리 자잘한 작위들이 많았다쳐도 그 광대한 범위는 참 놀라운 게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이 문구 앞에 Non이 붙어 '보다 멀리 나아가지 않다'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이게 당시 땅끝이라 여겼던 지브롤터 해협과 관련된 헤라클레스 신화와 관련이 지어 '땅끝인 지브롤터 해협까지는 확실하게 다스리겠다.' 대략 이런 의미로 사용했었다고... 하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신항로가 개척되어 지브롤터 해협 건너에도 수많은 나라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급히 Non을 빼면서 지금의 문구가 되었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과 이 문구는 현재 스페인 국기를 살펴보면 그대로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 종교개혁
예전에 세계사 시간 교과서에서 마틴 루터가 교황 레오 10세의 면벌부 발급에 반발하자 한 왕이 안전을 담보하고 오라고 하여 재판을 했던게 얼핏 기억난다. 그 재판을 열었던 왕이 바로 이 카를 5세다. 카를 5세는 굳이 따지면 가톨릭 성향이었지만 교황 레오 10세가 자신을 왕위에 오르는걸 반대하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개방적인 교육을 받았던터라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 자신이 주도적으로 이걸 중재해 영향력을 다지겠다는 의도로 재판을 주도했는데 결국 루터의 강인함에 카를 5세도 포기하고 그를 추방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루터로 인해 촉진된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이 촉진되던 차에 공공의 적 오스만 제국이 침공!! 카를 5세는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개신교를 인정한다고 하면서 개신교 측에 뻥카를 날리며 도움을 요청하며 오스만 제국을 쫓아낸다. 하지만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후가 다르다는거는 만고의 진리인듯.. 카를 5세는 다시 개신교를 탄압!! 이에 반발한 개신교 세력들은 슈말칼덴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저항했는데 이들과 카를 5세 세력과 전쟁을 벌인걸 슈말칼덴 전쟁이라고 한다. 카를 5세는 여기서 승리하며 한숨을 돌리지만 개신교 세력은 잦아들지 않고..
결국 사실상 '신성로마제국' 쪽을 다스리고 있던 '동생 페르디난트 1세'가 카를 5세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교와 화의를 체결하게 되는데 이게 세계사 시간에도 '루터파 인정'이라고 배우는 '아우크스부르크 화의'(1555)다. 이로써 루터파는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 종교가 된다. 여기에 빡친 카를 5세 하지만 힘이 없고... 그냥 바로 퇴위하여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3) 돈 후안
돈 후안은 카를 5세의 사생아로 카를 5세의 정식 아들인 펠리페 2세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 카를 5세의 늦둥이(?)라고 보면 될거 같다. 사생아라 힘이 없던 왕족이라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펠리페 2세는 그를 무척이나 아꼈던거 같고 그의 군사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스페인 함대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총사령관이 된 그는 오스만 제국과의 해전인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주가를 올리게 되는데... 하지만 젊은 나이에 전염병으로 죽으면서 '레판토 해전 승리'라는 명예스러운 태그만 그에게 달리게 된다. (개인적으로 더 살았으면 왕실의 암투에 휘말리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