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1558-1564][합스부르크 왕조]
1. 이름 : 페르디난트 1세 (Ferdinand I)
2. 왕조 : '합스부르크 왕조'
3. 대략의 분위기
사실 카를 5세가 다스리는 영토가 워낙 광대했기 때문에 카를 5세는 '신성로마제국'에 한정지어서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말년의 행보를 보면 스페인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듯..) 이런 상황에 사실상 독일 지역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던 인물이 이 카를 5세의 동생 페르디난트 1세다. 그는 형인 카를 5세를 추켜주고 아랫사람들에게는 인망을 얻는 행보를 펼쳐 현 독일 지역에서 지지를 받았던거 같다.
가진 사람의 욕심이 더 하다는 말이 있듯, 지대한 영토를 지닌 카를 5세는 자신이 가진 영토를 온전히 아들인 펠리페 2세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하지만 페르디난트 1세가 이미 밑밥을 잘 깔아놓은터라 독일 내에서 반발이 엄청나게 심했다고.. 그래서 카를 5세는 독일 쪽은 포기하고 스페인 쪽만 아들에게 물려주고 '신성로마제국'은 페르디난트 1세에게 물려준다. 그의 삶을 보면 형한테는 최대한 낮추고 아랫사람에게는 본보기가 되는 행동을 보여 위아래에서 인정받는 성공적인 '2인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단 1명의 부인에 자식도 많고 그 자식들이 결국 합스부르크의 왕위를 이어받았기에 2인자로써 성공한 모습을 보인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거 같다.
5. 주요 키워드
1)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안나
이 분은 '신성로마제국' 근처에 있던 헝가리-크로아티아와 보헤미아와 왕인 울라슬로 2세(II. Ulászló)라는 분의 장녀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찍 죽자 어렸을 때부터 '신성로마제국'의 궁궐에서 산 인물이다. 그러면서 '합스부르크 가문'과 결합하기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되었고 그 결과 페르디난트 1세와 결혼하게 된다. 그렇게 이 집안과 합스부르크 집안은 거의 한 몸으로 움직였기에 헝가리-크로아티아와 보헤미아의 계승자인 안나의 동생 러요시 2세가 후계자 없이 죽을 경우 계승권이 안나에게 넘어가 결과적으로 페르디난트 1세에게 간다는 조약을 맺는다. 그런데 그게 진짜 현실이 되면서 페르디난트 1세는 안나 덕분에 헝가리-크로아티아, 보헤미아의 계승자가 된다. 물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페르디난트 1세의 전폭적인 지원자라고 볼 수 있을거 같다.
2)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세계사 교과서에서 나오는 이 사건이 페르디난트 1세의 업적(?)이다. 페르디난트 1세는 기본적으로 가톨릭을 대표하는 쪽이었으나 개신교 세력을 기반으로 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면도 있어 무작정 탄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형인 카를 5세의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페르디난트 1세는 형의 의지를 묵인하고 이 조약을 맺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화의는 당시 떠오르고 있는 루터파만 인정해줄 뿐 칼뱅파를 비롯한 다른 세력들을 허용하는 내용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이러한 불만들은 쌓이고 쌓여 몇십년 뒤에 일어나는 30년 전쟁의 원인이 되고 당시 가장 주목받던 세력은 칼뱅파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맺어짐으로써 공인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