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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쓰 Mar 04. 2021

17. 아비뇽 (프랑스)

역사교과서 속그곳

[본 시리즈는 구글지도와 나무위키와 네이버를 참고했습니다]


마르세유와 몽펠리에 중간 정도 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아비뇽
주변에 론 강이 흐르고 있다.


이번 '역사교과서 속 도시'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아비뇽이다. 이전에 둘러본 프랑스 남부 도시 마르세유와 근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건인 '아비뇽 유수'가 있었던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이 사건의 임팩트가 커 아직도 중세의 향기가 흠뻑 담겨있는 아비뇽은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이번 기회에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다.



1. 도시와의 인연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의 아비뇽은 이곳이 아니다.


마르세유와 마찬가지로 아비뇽에 직접 가 본 적은 없고 역사책에서 본 '아비뇽의 유슈'를 통해 이 도시를 알게 된 케이스다. 또 미술책을 보다가 발견한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에서도 아비뇽을 들어보았는데 이 아비뇽도 당연히 프랑스 남부의 이 아비뇽인줄 알았건만 이곳은 스페인의 한 지역을 가리킨 명칭이었다.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부터라도 확실히 알고 있어야겠다는..



2. 내맘대로 프로필



소속 국가: 프랑스

현재 지역: 프랑스 남부 지역

영문 이름: Avignon (영어 이름이 따로 없는듯)

원 이름: Avignon (프랑스어)

도시 면적: 64.78



이전에 살펴본 남쪽에 인근 도시 마르세유와 마찬가지로 아비뇽도 지중해성 바람인 미스트랄의 영향권 아래에 있어 맑은 날이 많다고 한다. 지도를 보면 론 강(River Rhône)을 비롯하여 여러 강들이 이 도시를 지나치는걸 알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아비뇽에는 중세시대의 많은 것들이 그대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역사의 중심에 있던 아비뇽 교황청도 그대로 남아 있으며 강이 주변에 있어 세워진 다리도 많은데 12세기에 지어졌다고 알려진 생 베네제 다리(Pont Saint-Bénézet)가 가장 유명하다. (아쉽게도 이 다리는 일부가 무너져 3개 정도의 아치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중세를 상징하는 도시 그런 느낌이다.



3. 도시 풍경들


중세의 문화가 남아 있는 도시답게 중세스러운 유적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강들에 둘러싸여 있는 도시의 모습들도 뭔가 아늑하고 고풍적인 분위기다.


아비뇽을 상징하는 아비뇽 교황청


3개의 아치가 남아있는 생 베네제 다리


중세의 아비뇽을 표시한 지도


4. 눈에 띄는 나무위키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프랑스 필리프 4세의 군대에게 모욕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아나니 사건)



아비뇽 유수는 1309년부터 1377년까지 7대에 걸쳐 교황의 거주지와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전했던 시기를 말한다. '유수(幽囚)'는 '잡아 가둠'이라는 의미로, 교황이 사실상 한지에 유폐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대 왕국이 사라지고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다.



계속 언급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아비뇽하면 이 '아비뇽 유수'를 제일 먼저 떠올리실 듯하다. 사실 이 사건으로인해 굉장히 작은 프랑스 도시 아비뇽이 우리나라에까지 알려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비뇽의 유수(Avignonese Captivity)는 로마에 있던 교황청을 프랑스 왕이 임의로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기고 그 이후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프랑스인 교황들을 선출했던 사건을 가리킨다. 그래서 아비뇽으로 교황청을 옮긴 1309년부터 약 70년 동안 친 프랑스 성향의 아비뇽 교황들은 프랑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아비뇽의 마지막 교황(뒤에 또 아비뇽에서 교황이 나오니 아비뇽 마지막 '단독' 교황이라 해야 되려나?)이라 할 수 있는 그레고리오 11세가 로마로 돌아가게 되고 그 이후 이탈리아계 교황이 뒤를 이으면서 아비뇽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물론 프랑스가 이에 피꺼솟 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교황을 따로 선출하면서 이제 교황은 1명이 아니게 되는 '대공황'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 중세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가 아비뇽 마지막 교황이 로마로 가는 사건을 그림으로 그렸나 보다.

아래에 관련 글 링크.


https://blog.daum.net/duaworld/15723433



사실 이 사건 무렵부터 교황권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었지만 교황이 여러 명이 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사람들도 종교적인 영역 대신 인문적인 분야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이는 '문화적 융성기'라고 불리는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발판이 되었다. 여기에 교황들도 더 이상 자신들이 신성의 힘이 있다는 걸 포기하고 인문학과 순수 예술 활동을 지원하기도 하고 어떤 교황은 직접 전쟁에 나서기까지 하면서 이제 교황 세력은 세속 군주 세력 중 하나로 여겨도 될 만큼 세속적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교황권의 세속화는 점점 갈수록 심해지게 되고 결국 후에 교황청은 로마에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 (이제 '면벌부'라 해야 맞으려나?)를 발행하게 된다. 이런 선 넘는 행동은 그 이후 유명한 루터의 반박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리고 종교는 또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게 된다.

 



지금까지 아비뇽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도시에 대해 살펴보니 더더욱 '아비뇽의 유수', '중세'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도시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실제로 가면 어떤 느낌이 올 지는 모르겠지만...)


끝내기 전에 한가지만 마지막으로 소개하면 아비뇽에서는 매년 수준 높은 연극문화를 선보이는 '아비뇽 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한다. 1947년부터 시작된 행사이니 벌써 70년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가 깊은 행사다. 연극을 기반으로 한 행사이기에 관람객들과 호흡을 함께하는 공연들도 많이 진행되는거 같다. 한번 검색을 해보니 올해 2021년 약 7월부터 3주 동안 기획되어 있던데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치유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사를 자유롭게 즐길 날이 오길 기원해본다.


https://www.doopedia.co.kr/travel/viewContent.do?idx=180723000046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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