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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반북스 Mar 15. 2021

상실도 치유가 되나요

[작은 친구들 1호] 김성의의 추천도서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작은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의미 있고 재미 있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매월 15일에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우리가 매일 느끼는 감정은 무의식의 영역이다. 본능적으로 일어나고 사그라드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불편한 느낌을 없앤다고 노력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의식에 여전히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든 감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을 회피하거나 억누를 때가 많다. 감정은 원초적이라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흘러 보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처리되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남기면 속에서 곪아버리고 만다. 그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치유의 개 나의 벙커’라는 책을 쓴 저자 줄리 바톤은 우울증으로 평생 관리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항우울제 말고도 특별한 치유약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벙커라는 반려견이다.  



강아지를 키운다고 병이 낫겠어? 실패한 미친 인간. 나는 좋아할 수 없는 인간이야.
그 무엇도 진정한 위안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계속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데 발가락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벙커는 엉덩이를 내 발에 올려놓고 등을 기댄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강아지 특유의 열정적인 에너지가 그대로 내게 옮겨왔다. 슬픔을 감지하는 강아지라니? 우울증 약 때문에 녀석을 너무 의인화했나? 하지만 나는 위로가 절실했다. 나를 비난하지 않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고 절대로 상처 주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했다.
<치유의 개, 나의 벙커>     


반려동물과의 애착 관계      


 줄리 바톤은 어린 시절 내내 친오빠의 일방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남매간 싸움을 방치했고 줄리의 억압된 감정은 오랜 시간 깊숙이 눌려있게 된다. 결국 줄리의 오랜 감정은 곪아 터지고 공항 발작을 일으켜 평생 약물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그런 그녀에게 마법과 같은 일이란 바로 벙커라는 반려견을 만난 것이었다.


벙커와 함께 있으면서 슬픔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벙커는 내가 꼭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기분에 변화가 생긴 것을 벙커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더 나아졌다. 벙커는 나를 판단하지 않고 그저 볼 뿐이었다. 좀 나아질 때까지 그냥 슬퍼하도록 내버려 두는 무언의 이해. 슬픔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진정한 동반자가 주는 안정감과 저항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치유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치유의 힘은 나더러 슬픔과 싸우라고 하지 않았다.  
<치유의 개, 나의 벙커>     


이렇게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안정적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오랜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무의식에 억눌려 있던 부정적 감정이 올라오면 매우 고통스럽다. 그때 반려동물은  힘든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느끼고 흘려 보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다. 우리가 울고 있을 때 반려동물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거나 기대기도 하고 손을 핥아주는 행동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은 진심으로 인간의 감정을 읽으며 위로해주려 애를 쓴다.   


반려동물과의 관계가 ‘특별한’ 이유     


 반려동물과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마치 우리가 어릴 적에 절대적인 신뢰자와 애착을 맺었던 것과 비슷하다. 순수하고 원형적인 사랑을 경험하게 해 주고 또는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반려동물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기도 하고 자식처럼 돌봄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반려동물은 수명이 너무 짧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많은 반려인들이 절대적인 사랑의 상실에 대해 큰 어려움을 갖고 정서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우리는 부정적 감정과 상실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


 삶에서 맺는 모든 관계는 무조건 좋거나, 나쁘기만 할 수 없다. 타인에 대한 감정에는 그 존재가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항상 밝은 감정과 어두운 감정이 뒤섞여 있다. 반려동물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서두에 말했듯이 우리는 모든 감정을 그대로 바라보고 파도처럼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한다. 상실의 슬픔을 외면하거나 천사처럼 신격화시키면 오히려 죄책감을 더 갖게 만들 뿐이다. 깊은 슬픔과 고통스러운 애도를 사랑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순간은 영원하지 않으며 행복한 순간은 결국 지나가 버린다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고 괜찮아졌다’라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크나큰 어려움 속에서 충분히 슬퍼하고 힘들어할 용기를 갖는 것이다. 순수한 사랑으로 다가온 반려동물은 우리에게 상실의 슬픔을 주지만 그것도 반려동물의 마지막 사랑인 셈이다.    


참고

줄리바톤, [치유의 개, 나의 벙커] 인플루엔셜

이학범,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 포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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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성의

© 동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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