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고 쓰다

소설 [형제] 위화

2023.01.29~02.02, @밀리의 서재

by 동참

위화는 [인생], [허삼관 매혈기] 덕에 좋아하게 된 작가다. 그의 글은 유머로 가득 차 있다. 읽는 와중에 자꾸만 피식거리며 이야기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가 펼쳐놓는 내용은 결코 가볍거나 재미있지 않다. 소설 [형제]의 배경은 중국의 '류진'이라는 소도시로 문화대혁명 전후, 그리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중국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휘몰아치는 시대에 희생되고 휩쓸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형제란 송강과 이광두를 말한다. 그 둘은 이복형제인데 부모를 비참하게 잃고 나서 서로를 평생 보살피기로 다짐한다. 비참보다는 오히려 잔인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형제는 고작 초등학교 1, 2학년쯤 되었을 나이에 그토록 우러러보던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는 모습을 목도한다. 문화대혁명은 알면 알수록 혼란스러운데 그건 아마 작가도 그랬나 보다. 위화는 유년 시기를 오롯이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보냈다고 한다.


이광두가 예상했던 대로 류 작가는 사과 한 개를 먹자마자 바로 지식분자의 상판을 드러내더니 웃으며 송강에게 문학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문장에서 나는 수시로 탄복했다. 인물의 입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나는 그 인물이 갖는 특징의 구체성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작가가 진짜 겪은 사람처럼, 바로 옆에서 듣고 본 사람처럼. 그리고 그가 만든 입체적인 인물들은 저절로 움직여 좌충우돌 부대끼며 온갖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위의 류 작가는 지식인처럼 행세하고 싶으나 그럴 깜냥이 되지 않는 속물이다. 무슨 설명서처럼 한 인물의 성격과 됨됨이를 묘사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위화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이때는 이미 문화대혁명이 끝나갈 무렵이라 혁명의 세찬 물결은 실개천이 되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여 뽑치는 더 이상 멀쩡한 이를 뽑는 것으로 자신의 계급적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여 뽑치는 광풍의 시대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동철장, 류작가, 조시인 등 주변 인물 모두는 나름의 뚜렷한 특징과 구체성으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러나 주인공인 형제의 삶은 입체적이면서도 상징적이다. 잔인과 폭력의 시대에서 배금주의로 뒤바뀌는 동안 두 사람의 행보는 정반대다. 류진의 미녀 임홍과의 순수한 사랑 속에서 소탈하고, 그래서 점점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는 송강과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이광두의 이야기는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 그 자체인 듯하다. 중국의 현대사를 '류진'에 압축해 파노라마로써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만약에 그냥 계급의 전봇대로 생각하면요?

소설을 읽으며 오랜만에 골계미(滑稽美)와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형제가 처한 현실은 너무 지독하고 안타까운데 이광두는 고작 8살의 나이에 성욕을 참지 못하고 전봇대에 성욕을 푼다. 묘하게 불편한 마음이다. 너무 재밌는데 금방이라도 비극이 일어날 것 같은 조마조마한 마음이랄까. 아버지는 맞아 죽고 어머니는 폐병이 도져 있는데 그는 계급의 전봇대를 껴안고 부비는 것이다.


인물의 작위성은 [형제]가 비판받는 부분이라고 한다. 특히 송강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 그는 이야기 안에서 가장 순수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 장사를 하고 온갖 고초를 겪는다. 작가는 그를 통해 더럽혀진 순수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대는 황금을 만능이라 하며 따르는데 기어이 화해하지 못한 그는 사랑을 말하며 죽음을 맞는다.


나는 소설의 재미와는 별개로 수시로 책을 읽다 덮었다 반복했다. 이야기의 다음이 잔인할 것이 틀림없어서, 그걸 아무렇지 않게 읽어버릴 수는 없어서, 좀 먹먹한 마음을 다독여야만 했다. 얼마나 생생하게 겪어야만, 아니면 얼마나 생생하게 상상해야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가. 그래서 대작가라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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