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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형태뿐인 사랑] 히라노 게이치로

2023.02.03~19, @밀리의 서재

by 동참

주로 출퇴근할때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머리가 복잡할 때, 잠에서 미처 깨지 못했을 때, 좀 덜 고민하고 좀 더 집중하게 되는 이야기를 읽고 싶어진다. 그럴 땐 연애소설을 찾는다. 얼마 전에 읽은 [냉정과 열정사이, Rosso]처럼 일본의 연애소설은 인물과 감정의 묘사가 무척 세심하다고 느끼던 터였다. 고르고 골라, 유망한 신진작가라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읽기로 한다. 그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쎄, 뭘까······. 최소한 물이나 공기처럼 없으면 죽을 정도의 것은 아니지."

사랑이 뭘까라는 질문에 주인공인 아이라가 무심코 내뱉는 답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랑에 무감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쌓이면서 그는 점차 사랑을 깨닫게 된다. 여기까진 흔하디 흔한 전개다. 그런데 그 대상이란 매력적인 배우이지만 사고로 인해 한쪽 다리를 잃은 여자다. 그의 사랑은 그녀의 단단부를 감싸는 방식으로, 상처를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족이라는 소재를 통해) 아름답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멋지고도 자율적이고 기능적일 것. 그건 한마디로, 건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매혹시켜 마지않는 육체의 또 하나의 비밀은, 오히려 그 이면에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듯한 천진하고도 무익하며 무목적인 곳에 있었다.

나는 소설의 초반엔, 구미코의 미모(소설 속에서는 엄청난 매력이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때문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녀는 불륜과 스캔의 아이콘처럼 묘사되며 아이라는 그녀를 보았을 때 미모에 압도된다. 치사하고 잔인하지만 '천진하고도 무익하며 무목적인 건강'을 빼놓고 사랑을 말하긴 어렵다. 구미코의 미모는 사랑의 개연성을 위한 장치일까.


부드러운 골격을 감싼 살집을 만져보고 그는 인간의 항온성이라는 기능의 성실함을 비로소 실감했다.

그래서 이어지는 전개에서 비로소 아이라의 구미코에 대한 사랑은 근거를 얻는다. '인간의 항온성'을 느끼고 그녀를 온전히 감각함으로써 그의 사랑은 실체를 얻는다. 작가는 사랑의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사랑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연애(戀愛)'는 참으로 잘 만들어진 단어라고 그는 생각했다. 좋아한다는 감정에 전후가 있다고 한다면 역시나 전반은 '연애(戀)'이고 후반은 '사랑(愛)'인 것이리라. '연애'가 찰나적으로 강렬하게 타오르면서 상대를 원하는 감정이라고 한다면 '사랑'은 서로 받아들인 상대와의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한 감정임에 틀림없다.

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할 때면 종이컵 안의 작은 촛불을 떠올린다. 찰나에 타오르지만 비바람을 막아주지 않으면 불꽃은 금새 스러지고 만다. 연애는 불타오르는 순간이다. 촛불의 생애에서 처음 타오르는 순간은 얼마나 짧은가. 강렬하고 아름답지만 그것이 촛불의 전부라고 할 순 없다. '상대와의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순간이 아니라 영원을 바라며 서로의 온기를 소중히 지켜주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비굴하게 하는 그 첫 번째 생각도, 어머니를 깎아내리는 두 번째 생각도, 둘 다 싫었어.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나는 어머니를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어느 틈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 사랑이란 것은 좀더 우연한 것이다, 선택된 인간에 우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택하는 인간이 현명하거나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그냥 어쩌다가 누군가와 누군가가 만나 잘 풀리기도 하고 잘 풀리지 않기도 하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가족은 아무도 상처 입지 않고 넘어갈 수 있어. 불행한 조합이라는 걸로 치고. 하지만 그런 게 사랑일까······. 헤어진 아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했던 게 바로 그런 내 생각이었어.

이야기의 전개는 크게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아이라가 구미코와 쌓아가는 사랑이고 또 하나는 유골이라는 형태로 들이닥친(이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어머니와의 사랑이다. 아이라가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과정은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해할 수 없었던, 무턱대고 배달된 유골처럼 그저 치워버리고 싶었던 어머니라는 과거는 그의 마음 속에 옹이처럼 단단하게 박혀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헌신하면서 그는 결국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 타인을 통과해 끝내는 본인을 향하는 것, 사랑의 진짜 효과란 바로 그런 것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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