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R팀장 시절 어려운 점 중 하나는 팀간 업무조율이었다. 회사에서는, 특히 성장하는 회사에서는 일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팀간 업무분장이나 전체 밸류체인 상에서 어느 팀이 어떤 부분을 맡을지 애매할 때가 있다. 이런 조율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 속상했던 것은, 종종 정치적 기술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한 쪽 팀장이 대표이사에게 먼저 가서 자기 팀에 유리한 쪽으로 의사결정받도록 선수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러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2. 그러나 어느 조직이든 사내정치는 있게 마련이다. 내가 외면한다고, 싫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게 현실이다. 사내정치(조직정치, organizational politics)는 사람이 모이는 한 어디든 없을 수가 없다. 구성원 각자가 원하는 바가 다르고 한정된 자원에 대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쟁을 공정하게 하냐, 원칙과 룰을 벗어난 방식으로 하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내정치를 외면하고 실무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한 이후 조금씩 생각을 바꾸게 됐다. 조직에서의 영향력은 단순히 일 잘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3. <거인의 리더십>, <일의 격> 등의 책을 쓰신 신수정 대표님께서 '리더의 미션'에 대해 예전에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리더의 미션이란,
조직의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구성원들을 임파워하여 한 마음으로 그 목표를 달성케 하여 변화를 만들고,
그 성과를 주위에 커뮤니케이션해서 인정받게 하고 그 보상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성과를 주위에 커뮤니케이션해서 인정받게 하는 것'이 리더가 갖춰야 할 정치역량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4. 조직정치란 한 마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조직정치에도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가 있다. 좋은 정치는 타인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선한 영향력을 미쳐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것이다. 나쁜 정치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규칙과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들은 조직 내 의사결정 기준과 흐름에 영향을 주기 위해 사용된다.
� 나쁜 정치 행동: 파벌 형성, 줄서기, 아부, 루머 퍼뜨리기 등 조직의 원칙과 기준을 왜곡하는 방식
� 좋은 정치 행동: 영향력 있는 설득, 연합 구축, 타부서 협업 등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적 행동
5. 조직정치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리더는 주변에 영향력을 펼쳐서 성과를 내는 사람인데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교환, 호소, 압력, 연합, 설득 등과 같은 정치적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좋은 정치를 하는 사람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은 요령 있거나 인맥이 두텁거나 세상 물정에 밝다고 표현한다. 그런 인정을 받아보자.
6. 어떻게 정치적 기술을 기를 수 있을까? 플로리다주립대에 계신 Gerald Ferris 교수님은 조직정치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신 분이신데 정치적 기술을 크게 4개로 나누셨다. 이러한 정치적 기술은 '정치꾼'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리더가 영향력을 넓히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인간관계 역량'이라 할 수 있다.
� 사회적 통찰력(Social Awareness) : 타인의 감정과 니즈, 그리고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읽는 능력. 예를 들어, 회의 중 특정 부서장이 당신의 제안을 유난히 지지할 때, 그 사람의 의도와 맥락을 파악하는 감각을 말한다.
� 대인관계 영향력(Interpersonal Influence) : 상대의 가치관,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이에 맞춰 메시지를 조율하는 능력. 예를 들어, 상사에게 새로운 제안을 할 때 그 상사가 중시하는 KPI나 비용 절감을 앞세워 설득하는 것을 말한다.
� 인맥관리 능력(Networking) : 다양한 부서·직무·레벨의 사람들과 신뢰 기반의 네트워크를 쌓는 능력. 점심 모임, 사내 프로젝트 협업 등을 기회로 타 부서와 자연스럽게 연결고리를 만들어두기
� 외형적 진실성(Sincerity) : 자신이 정직하고 일관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능력. 예를 들어, 실수했을 때 변명보다는 솔직한 인정과 개선방안을 제시하거나,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7. 만약 조직 내에 사내정치가 횡행한다면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할까?
. 파벌/라인 형성, 줄 세우기, 헛소문 유포 등과 같은 나쁜 사내정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평가, 보상, 승진이 공정한 기준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조직 내에 인식시켜야 한다. 아무리 물밑 정치를 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 fact에 기반해서 판단하고 경영진에 보고해야한다. 풍문에 휩쓸리고 헛소문에 기인한 결정과 보고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귀가 얇으면 안 된다. 한두 명의 말에 현혹되거나 현실을 과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 만약 사내정치가 횡행한다면 소문이 조직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중단시키기 위한 제도적 조치 또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사내정치가 횡행한다는 것은 자기가 할 책임과 역할은 뒷전이면서 다른 방법으로 승진, 조직이동, 성과 인정받기 등을 하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 만약 '정치질'이라고 무조건 회피하는 리더라면 정치적 행동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정치적 관점에서 행동을 평가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잘 예측할 수 있으니 평소 구성원이 왜 그렇게 행동할까, 어떤 모임을 하나, 나에게 왜 와서 그런 얘기를 할까를 유심히 정치적 행동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내정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리더의 선택이다.
나쁜 정치는 단호하게 차단하고 좋은 정치는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리더가 갖춰야 할 리더십 정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