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와이프와 난 대화를 많이 한다. 와이프는 학원 선생님이라 가르치는 아이 이야기, 부모 이야기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한다. 나도 회사에 다닐 때 회사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하지 못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2달 동안 3번이나 병원 가서 수액 맞으면서 회사를 다닌 것'이다.
2. 다니던 회사가 상장을 앞두고 있었기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사주조합 설립과 우리사주 신청, 관리 등등 상장 관련 업무를 수행해야 했고, 상장에 따른 퇴사자 발생과 신규 인원 채용도 우리 HR팀이 빠르게 대응해야 했다.
3 이런 상황에서 매일 야근이었고 몸은 항상 피곤했다. 밥먹으러 가는데 몸이 휘청하는 느낌이 들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바로 병원 가서 진찰받고 수액도 맞았다. 그렇게 상장 전후 두 달 동안 세 번 병원 가서 수액을 맞으면서 충전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일하곤 했다.
4.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였다. 편도 1시간 40분 거리를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면서 아침저녁마다 다니려고 하니 출퇴근만으로도 기진맥진이었다. 직주근접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회사 부근의 고시텔에서도 살아보고 오피스텔에서도 살았다.
5.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단지 내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리더의 소진은 조직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리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조직 차원에서도, 리더 스스로도 리더의 번아웃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 리더는 혼자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도록 가이드를 줘야 하고 의사결정해야 하고 하다못해 빈번한 결재도 리더의 몫이다.
6. 리더에게 번아웃이 오면 맑은 정신으로 빠른 의사결정하기 어렵고, 일과 프로젝트는 제대로 순항하지 못한다. 그에 따라 팀 성과는 떨어지고 직원들은 떠난다. 매일 피곤에 찌든 표정으로 앉아 있는 리더를 보고 '나는 리더를 하지 말아야지' 라는 리더-포비아 인식이 더 굳어질 수 있다.
7. 그렇다면 번아웃을 관리하기 위해서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할까? (리더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선 리더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보자)
1) 자기 몸에 귀를 기울여라.
과장 시절 L그룹에서 D그룹으로 옮긴 적이 있다. 주변에서 "어때? 새로운 회사는 재미있어?"라고 물으면 나는 "어, 정말 재미있어. 아침에 회사가고 싶을 정도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웃겼던 것은, 그렇게 말하는 내 입술은 부르트고 얼굴에도 뭔가 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생각은 그렇지 않더라도 몸은 스트레스에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몸이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경고를 나에게 주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2) 바쁘다는 것은 자랑할 거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바쁨 자체가 결과물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바빠야 성공하는 게 아니다. 바쁨이 미덕이 아니다. 바쁜 사람은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게 좋은 게 아니다. 바쁨은 때로는 무능의 다른 얼굴이다. 바쁘게 살다 보면 업무든 개인사든 문제점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3) 쉬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라
리더에게도 충전이 필요하다. 의도적 쉼이 답이다. 회사에 다닐 때 '매일 30분 멍때리기, 휴대폰 끄고.'라고 매일 오후 일정에 박아놓고 지키려고 했었다. 의도적으로 멈추고 쉬는 시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혼자 7층 커피숍에 가서 커피 한잔 앞에 놓고 휴대폰 꺼놓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좋았다. 머리 속에서 생각이 정리되고 나를 위해 충전한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리더의 번아웃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일단 리더 자신이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간다. 지속가능해야 하는 것은 기업뿐만 아니라 리더도 마찬가지다. 리더의 지속가능이 조
직의 지속가능을 담보할 수 있다.
여러분은 언제 마지막으로 쉬어보셨는가?
몸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계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