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번스타인 <리스크>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 - 아이작 뉴턴
적합한 숫자 체계가 주어지면 수학에서 계산 기술뿐만 아니라 대상을 추상화시키는 기술도 발달하게 마련이다. 0은 사상과 진보에 가로놓였던 장애를 없애버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0은 두 가지 면에서 기존의 숫자 체계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첫째, 0에서 9까지 열 개의 숫자만 사용하면 모든 계산이 가능해졌고, 어떤 숫자 건 단지 숫자 열 개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로는 1, 10, 100 등 숫자의 배열이 있을 때, 그다음 숫자는 1000 임을 수열 자체로 알 수 있게 되었다. 0은 숫자 체계의 전체 구조를 눈으로 보는 순간 명확히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p.60
사고의 자유와 실험정신, 그리고 미래를 컨트롤하려는 의지 등이 결여되었다가 르네상스 시대인 카르다노 시대에 들어와 굴레에서 벗어나 만개했던 것이다. p.92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희망과 두려움, 그리고 그에 따른 운명론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나 1654년 이후로는 적어도 선택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할 때 어림짐작에 의존하지는 않게 된 것이다. p.120
이러한 그랜트의 선구적 작업으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수적인, 통계학 이론의 핵심 개념이 탄생되었다. 그가 제시한 표본추출과 평균, 그리고 표준 개념 등으로 통계 분석학이라는 학문이 수용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정보를 의사결정에 이용할 수 있으며, 미래 사건의 확률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p.136-137
현재의 보험사업은 견본 추출과 평균값 산정, 그리고 독자적 판단뿐만 아니라 그랜트의 런던 인구수 조사와 핼리의 브레슬로 인구수 연구에 자극이 되었던 표준(normal) 개념을 전적으로 따른다. 그랜트와 핼리가 그들의 연구 결과를 출간한 무렵, 보험업계의 급속한 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상업과 금융업이 일대 혁신을 이루던 그 시대의 상징적 일면이었다. (...) 17세기 후반부는 무역이 싹트는 시대이기도 했다. (...) 선조에게서 물려받는 길 외에는 달리 부에 대한 축적 방법이 없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이제 부는 벌거나 발견할 수 있고, 축적해나갈 수 있으며, 투자와 동시에 투자 손실에 대한 보호의 대상이 된 것이다. p.144-145
드 무아브르는 자신이 만든 곡선의 모양을 토대로 평균값 주위의 산포에 대한 통계적 척도를 계산할 수 있었다. 오늘날 표준편차로 불리는 이 척도는 하나의 관찰 집단이 전체에 대해 충분히 대표성을 띤 표본 구성인지 판단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준이 된다. p.201-202
불확실성은 리스크라는 잘 알려진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둘은 지금까지 정확히 구분된 적이 없었다. '측정 가능한 불확실성'이라는 표현 대신에 '리스크'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측정 가능한 불확실성(표현의 적합성을 따지자면 리스크)은 '측정 불가능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 측정 불가능한 것은 사실상 불확실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p.334
면화 채권, 농부의 선물거래 계약, 튤립 옵션 거래, 주택 담보대출의 조기 상환 특약조건의 형태에는 눈에 보이는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업이나 금융 거래는 되도록 싸게 사고자 하는 구매자와 되도록 비싸게 팔고자 하는 판매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내기다. 언제나 어느 한쪽이 실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 상품은 다르다. 리스크 관리 상품은 누군가가 이득을 찾기 때문에 존재한다기보다는, 리스크를 기피하는 집단에서 기꺼이 리스크를 떠안고자 하는 집단으로 떠넘기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 결국 그러한 리스크 감수를 통해 다른 조건으로는 끌어들일 수 없었던 돈을 차입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채권자, 즉 남부 연방의 채권을 구입한 사람들은 낮은 이율이나 남부 연방이 전쟁에서 패할 가능성까지 충분히 보상해주는, 즉 그들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옵션을 확보했던 것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을 거래함으로써 양쪽 모두 승자가 될 수 있었다. p.473-474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지난 450년 동안 우리가 만나본 영웅들이 이루어낸 정량에 대한 업적이다. 오늘날 공학·의학·과학·금융·기업 경영·정부 행동 등 수많은 분야에 걸쳐서 매일같이 여러 가지 의사결정이 내려지고 있다. 그러한 의사결정은 과거의 경험적·육감적 방법을 훨씬 능가하는, 엄격한 절차를 거쳐 내려지고 있다. 그리하여 판단에 따르는 치명적인 실수를 피할 수 있고,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그 결과를 완화시키기라도 하는 것이다. (...) 이들 영웅은 손실에 대한 가능성을 이득에 대한 기회로, 운명이나 창조 계획을 정교하고 세련된 확률에 근거한 미래 예측으로, 무기력을 선택으로 변형시켜놓은 것이다. p.516-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