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1955년 8월 26일, 전쟁과 혼란 외에는 세계의 이목을 끌지 못하던 우리나라가 IMF/세계은행 58번째 회원국이 되면서 국제사회에 데뷔했다. 흥미롭게도 우리보다 한 달 앞선 7월 14일에 아프가니스탄이 57번째 회원국이 되었고, 두 나라는 나란히 그해 9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10차 연차 총회에 참석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이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고 1960년에 시작한 우리보다 먼저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p.475
제1차 세계대전은 일본에 많은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일본은 전쟁 전 영국, 프랑스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챙기던 이권을 이어받았고 유럽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느라 방기한 그들의 수출시장을 거저 손에 넣었다. 따라서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전쟁이 끝난 1919년에는 금 보유고가 무려 22억 엔으로 늘어났다. 아울러 러일전쟁 당시까지 수입에 의존했던 군사물자를 자체 생산하면서 중화학공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1919년에는 전체 공업 생산액이 약 2배로 증가했으며, 공업구조도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중심이 옮겨졌다.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p.311
다카하시는 대공황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본위제 탈퇴라는 환율정책, 저금리 정책인 통화정책 그리고 재정 지출의 확대를 동시에 구사하는 정책 조합을 선택한다. 다카하시는 취임 직후인 1931년 12월 13일 금본위제를 탈퇴하면서 곧바로 외환에 대한 통제를 실시했다. 아울러 엔화에 대해 약 40퍼센트의 평가절하를 실시하여 금본위제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벗어났고 일본의 수출품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제고했다.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p.321
경제 운영에 있어서도 긴축재정에서 적자재정으로 기조가 180도 전환되었다. 1931년 중앙정부의 지출은 GNP 대비 10.7퍼센트에서 14.7퍼센트로 대폭 확대되었으며 약간의 흑자를 기록하던 재정은 GNP 대비 6.1퍼센트에 해당하는 대규모 적자로 반전되었다. 최근 많은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다카하시의 정책 조합은 불황 탈출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p.322
슈뢰더는 '어젠다 2010'에서 기간제 노동계약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하르츠 위원회의 개혁안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더욱 확대했고 실업급여를 최장 32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했으며 장기 실업자에 대한 실업 급여와 사회부조를 통합함으로써 혜택을 줄이고 구직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도록 유도했다. 특히 기업의 해고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경제적인 이유'로 해고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혔다. 아울러 연금 및 의료보험 의무가입 대상자의 소득 수준을 인하함으로써 연금 및 의료보험 대상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연금 및 의료보험 수입을 확충했다. 퇴직연금보험의 정년을 기존의 65세에서 상향 조정하여 2035년에는 67세가 되도록 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사업자들의 건강보험금 부담을 줄였다. 또한 기업 환경의 개선을 위해 개인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했다. 마지막으로 수공업 부문의 창업을 장려하고 혁신이 촉진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고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강화했다.
'어젠다 2010'은 독일의 기존 노동 고용시장에 대한 획기적인 개혁안이었으며 언론은 이를 두고 독일이 이제 '유럽의 병자'에서 '건강한 부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제도 개혁에 더해 독일의 전통적인 가치이자 강점인 일자리 공유 시스템(해고 대신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제도), 노사 간 공동 의사결정제도, 노동자의 생산성 및 기술 경쟁력 등이 뒷받침되면서 독일 경제는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경제 위기에 휩싸인 상황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어젠다 2010'을 통해 독일 경제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였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p.452~453
캐나다 금융 시스템은 엄격한 자기 자본 규제, 우선주 등을 배제한 보통주 위주의 자본 규제, 그리고 낮은 레버리지 비율 등으로 설명되지만 그중에서도 감독 체제가 빈틈없고 잘 정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p.460~461
마틴은 예산안을 마련하면서 '적자재정 금지(No-Deficit Rule)' 원칙을 정착시켰으며 이를 국민들과 약속함으로써 훗날 어떤 정부도 이 원칙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틴의 이러한 국가 부채 삭감 노력으로 GDP 대비 최고 71퍼센트였던 국가 부채 비율은 30퍼센트 이하, 이자 지급 비용은 달러당 36센트에서 절반 이하인 15퍼센트로 대폭 낮아졌다. 아울러 과거 GDP 대비 44퍼센트에 달하던 외국인 보유의 캐나다 국채 비율도 7퍼센트로 낮아져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해도 캐나다 경제가 위협받을 가능성을 대폭 낮추었다.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p.468
경제정책을 세우는 지도자가 이를 잘못 판단할 경우 지도자 한 사람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 국민 전체의 실패로 직결되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역사를 보면 성공을 거둔 현명한 지도자는 단기 주의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국민들에게 장기적인 안목을 제시하고 그에 걸맞은 정책이 실행될 수 있도록 국민을 설득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즉 단기적인 시각에 지배되던 민심을 장기적인 시각을 받아들이도록 바꾸고 이 민심 위에 자신의 정책을 올려놓았던 것이다.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p.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