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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Feb 11. 2020

조국을 위해 악마와 손을 잡은 나치 독일의 경제 사령탑

스티븐 그린블랫 <폭군> X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히틀러는 독일의 총리와 대통령으로 1933년에서 1945년까지 12년간 지낸 독재자입니다. 1939년 폴란드 침략을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전쟁 중에 우생학, 인종주의, 사회진화론으로 무장한 나치즘을 앞세워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자행했습니다. 현대사회까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까지 배경지식이 부족할 때는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권력을 손에 쥐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은 독일의 경제가 침체에 빠져있던 1930년 9월 총선에서 107석을 확보하면서 도약했고, 1933년 1월 마침내 히틀러는 독일의 총리에 임명됩니다. 총리가 된 히틀러 곁에는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대표적 인물로 햘마르 샤흐트입니다.

햘마르 샤흐트

 히틀러 집권 당시 독일 중앙은행 총리를 지냈고, 나치 정권에서 재무장관까지 지낸 햘마르 샤흐트에게 히틀러는 경제를 구할 구세주였을까요, 전쟁을 일으키고 대학살을 자행하는 무자비한 독재자였을까요? 스티븐 그린블랫 <폭군>과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햘마르 샤흐트는 아래와 같은 말로 유명합니다.

(좌) 스티브 그린블랫 <폭군> (우)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독일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


나치당이 집권하게 된 시대적 배경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의 경제상황을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1922년의 초인플레이션은 달러당 10만 마르크에서 1년이 지나기도 전에 40만 마르크까지 급등했습니다. 초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당시 통화 담당 위원인 샤흐트는 마르크스를 신뢰하지 못하는 시장에게 렌텐 마르크라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했습니다. 샤흐트는 렌텐 마르크의 통화량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은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샤흐트는 '마법사' 또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초인플레이션은 진정되었지만 독일의 경제문제에서 근본적인 문제인 전쟁 배상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독일의 전쟁 배상금은 독일 GDP 수준에 육박하는 120억 달러였습니다. 패전국인 독일은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갚을 능력이 없던 독일을 위해 미국과 유럽, 독일은 전쟁 배상금을 삭감하는 도트 플랜을 합의합니다. 독일에게는 부족했지만 숨통을 터주는 합의였죠. 합의 후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면서 주식 시장은 과열되고, 과열을 막으려는 샤흐트는 통화 공급을 줄이고 주식 담보 대출을 끊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독일 주식시장은 폭락하게 되죠. 샤흐트의 개입은 오늘날까지 미국의 1929년 주가 대폭락과 대공항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을 초래한 1989~1991년 일본 중앙은행의 개입 정책과 더불어 중앙은행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전쟁 배상금을 갚기 더 어려워진 독일을 위해 영 플랜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는 민간투자자를 이끄는 도트 플랜의 법 조항을 없앰으로써 독일 경제를 더 악화시킵니다. 독일 경제는 1928년부터 하강하기 시작하여 1930년에는 실업자가 급등하였습니다. 이 시기 나치당은 제3당으로써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히틀러의 계획


 전쟁 배상금으로 어려움을 겪던 독일의 구세주로 등장한 히틀러는 1934년 샤흐트를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합니다. 과거 초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킨 명성을 등에 업고 국내외의 신뢰를 얻기 위함이었죠. 히틀러는 샤흐트에게 경제의 전권을 줍니다. 막대한 권력을 쥔 샤흐트는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 공공사업을 추진합니다. 더불어서 거액의 융자를 각 산업 분야에 제공하며 수출의 증가를 도모하였습니다. 특히 군수 산업을 확대했는데요. 이는 2차 세계대전의 발판이 됩니다. 경기 부양책에 독일은 1932년 600만 명에 달하던 실업자 수를 150만 명으로 줄이고 산업 생산을 2배로 확대했습니다. 나치는 이러한 성공을 선전하기 위해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죠.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습니다. 막대한 정부부채는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이르렀으며 대규모 공공사업은 군수사업에 집중되어 정작 독일 국민의 삶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히틀러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영토를 확장하면 해결된 문제라고 본 것이죠.

 훗날 히틀러가 전쟁 준비의 일환으로 대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폐쇄적인 무역조치를 취하자 샤흐트는 히틀러의 광기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정책을 옹호하면서 둘 사이는 멀어지게 됩니다. 뒤늦게 독재자의 광기를 알아차린 것입니다.


독재자를 도와주는 사람


 스티븐 그린블랫 <폭군>에서는 독재자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6가지 유형을 분류합니다.

독재자에게 속은 사람

폭력 앞에 무기력한 사람

독재자가 사악한 사람임을 자주 망각하는 사람

잘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진 사람

독재자로 이익을 보려는 자

곤란한 상황을 피하려고 굴복한 자

 잔혹한 폭군인 리처드를 돕는 헤이스팅스는 폭군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헤이스팅스는 '독재자로 이익을 보려는 자'였죠. 결국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헤이스팅스는 조치를 취하지 않아 목숨을 잃게 됩니다.

 햘미르 샤흐트 또한 독재자로 이익을 보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조국(독일)을 위해서 악마(히틀러)와 손을 잡은 것이죠. 히틀러를 통해 독일 경제를 살리려던 샤흐트는 결국 2차 세계대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히틀러와 사이가 멀어진 샤흐트는 헤이스팅스처럼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1944년에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베를린 감옥에 투옥됩니다. 1945년 패전한 독일에 들어온 연합군은 샤흐트를 석방하지만 나치에 협력한 혐의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됩니다. 그 뒤 수많은 재판 끝에 1950년에 석방됩니다.




 샤흐트는 재판 당시 지능 검사에서 143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똑똑했던 그는 독재자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독재자의 비이성적인 사고는 예측 범위를 벗어난 행동을 합니다. 샤흐트는 자만했습니다. 그의 자만은 2차 세계대전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샤흐트가 자만하지 않고 히틀러의 폭력성을 인지하고 견제했었더라면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아픈 과거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독재자를 이용하려 했던 개인의 자만으로 역사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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