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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Feb 15. 2020

요즘은 SK, CJ 같은 대기업이 탄생하지 않을까?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우리나라 기업은 자산 규모에 따라 대기업(자산 10조 원 이상), 중견기업(자산 5천억 원 이상), 중소기업(제조업 기준 자산 1,500억 원 이하)으로 나뉩니다.

IT, 화장품 기업을 제외하고는 제조업에서 삼성과 SK 같은 대기업이 탄생하지 않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 것일까요? 산업 구조가 바뀐 것도 이유겠지만, 과거의 특수한 환경과 운이 지금의 대기업 탄생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창업이 힘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환경의 중요성

창업자의 능력보다 환경과 운이 중요할까요? 물론 둘 다 있으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쉽지 않죠.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은 환경과 기회를 포착하는 운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책 <아웃라이어>에서는 캐나다 하키 프로선수의 생년월일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캐나다 아이스하키 선수 대부분 1~3월 태생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엘리트 하키 프로팀을 살펴보니, 1~3월 생은 40%, 4~6월 생은 30%, 7~9월 생 20%, 10~12월 생은 10%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1월 1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헤아리고 그에 맞춰 하키 클래스를 짜기 때문입니다. 1월 2일에 만으로 열 살이 되는 소년은 12월 31일 태어난 소년과 같이 하키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사춘기 이전에는 열두 달이라는 기간은 엄청난 신체 발달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이죠. 신체적 차이는 경기에 차출되는 확률을 높이고 훌륭한 코칭을 받을 기회도 얻게 합니다. 그렇게 신체조건이 뛰어난 소년은 뛰어난 선수로 거듭나게 됩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신체조건이 뛰어나지 않은 늦게 태어난 선수는 경기 후보로 머물게 되고, 뛰어난 선수가 될 기회는 줄어들게 됩니다. 이 격차는 점점 커지게 되죠. 과연 12월 31일에 태어난 소년은 하키 실력이 부족한 것일까요?


지금의 대기업이 창업한 환경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환경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운이 더 중요한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던 대기업도 기회와 운이 있었을까요?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에서 2019년 4월 7일(일)에서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그때는 되고 지금은 어려운 이유"에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박종호 KDI 산업연구실장은 요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데 왜 성과가 없느냐는 질문에 80, 90년 대 굴지의 기업과 지금 스타트업의 출발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지금의 스타트업 시작이 한참 불리하고 어렵다는 것이죠.

대기업이 시작한 환경을 알아보려면 일제시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이 산업을 다 잡고 있었죠. 주요 산업 거점 70%는 지금의 북한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일본은 통제경제로, 모든 경제활동을 군납에 초점을 맞출 때였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군납에 대한 통제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을 폭격하려는 움직임에 한국에 기업의 생산수단 투자가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모로 한반도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게 유리했기에 공장이 한반도로 몰려왔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광복(1945년 8월 15일)을 맞이했습니다. 하루아침에 한반도에 설립한 공장, 설비, 사무실이 주인 잃은 터가 돼버린 것입니다. 광복 후 미 군청에서 한국을 통치하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미 군청에서는 한국에 있는 재산을 관리할 이유가 없었기에 얼른 처분하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 통이었고 재산을 처분하는 채널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인맥으로 재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는데, 미 군청에서는 영어 좀 할 줄 아는 사람 또는 그들의 일가친척에게 재산 관리를 시켰죠. 친척이 그 사람의 친척을 소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일본인이 남기고 간 엄청난 재산들이 정경유착을 통해 이관되었습니다.

미 군청은 생산시설을 얼마나 민간에 넘겼을까요? 미 군청은 건국 전 513개 산업체 중 2,238건을 민간에 팔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팔았을까요? 귀속 자산 총금액의 10%만 계약금으로 냈고, 잔금은 무이자로 거치기간이 15년 분납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인플레이션을 살펴보면 15~20%씩 매년 뛰던 시절이었기에, 5년 뒤면 2배가 뛰었습니다. 이 말은, 몇 년 지나면 빚이 50%가 된다는 것이었죠. 대부분 자산의 30%~90%인 헐값에 매입했습니다. 더불어서 현금이 없었다면 지가 증권(나라에서 땅을 나눠준 증서, 대지주의 땅을 국가에서 소작농에게 나눠주었다)으로 대납이 가능했습니다. 박종호 실장은 이를 '그냥 줬다는 표현이 맞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유명 대기업이 실제로 이러한 혜택을 받았을까?


영등포에 위치했었던 기린 맥주는 지금의 두산이 되었고, 화약공장의 독점업체였던 조선 화학 공판의 직원이 한화의 창업주입니다. 수원의 선경직물 기계 주임은 SK그룹의 창업주이고, 대구에서 비누공장을 운영하셨던 분은 쌍용그룹의 창업주, 모리나가 식품은 지금의 CJ, 사마 제철은 동국제강으로, 아시노 시멘트는 벽산 시멘트, 영광 제과는 해태제과로 바뀌었습니다.

창업주의 기업가적 정신이 있었던 건 사실이나, 당시에는 환경이 도와주었고 운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과거의 혜택을 얻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운은 우리가 원한다고 오는 것이 아닌 불가항력적인 요소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창업이 훨씬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키 선수, 빌 조이, 로버트 오펜하이머, 그리고 그밖에 다른 어떤 부류의 아웃라이어라고 하더라도 드높은 횃대 위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진심으로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해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슈퍼스타 변호사와 수학 천재, 소프트웨어 기업가는 얼핏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벗어난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역사와 공동체, 기회, 유산의 산물이다. 그들의 성공은 예외적인 것도 신비로운 것도 아니다. 그들의 성공은 물려받거나, 자신들이 성취했거나 혹은 순전히 운이 좋아 손에 넣게 된 장점 및 유산의 거미줄 위에 놓여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을 성공인으로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요소였다. 아웃라이어는 결국, 아웃라이어가 아닌 것이다. <아웃라이어>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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