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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Feb 16. 2020

유대인이 고난과 역경의 역사를 겪었던 이유

홍익희 <유대인 이야기> X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현대 경제의 주인공은 유대인입니다.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행권을 가진 연준의 의장은 유대인들이 많았으며, 미국 재무장관을 비롯하여 행정부에도 유대인이 많습니다. JP모건 체이스, 시티그룹, 골드만 삭스처럼 금융권 또한 유대인이 세운 것이죠. 이처럼 유대인이 현대 경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비결로 4가지를 꼽았습니다. 신뢰, 공동체, 교육, 정체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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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유대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그들이 고난과 역경의 역사를 겪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대인의 고난의 역사를 <유대인 이야기>를 통해 돌아보고, 유대인들이 고통받았던 인간 본성에 대해서 <바른 마음>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L) 홍익희 <유대인 이야기> (R)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유대인의 고난과 역경의 역사

4천여 년의 유대인의 역사는 한마디로 방랑의 역사였다. 4백여 년간의 이집트에서의 종살이, 이집트에서 탈출해 광야에서 보낸 40여 년, 아시리아와 바빌론으로부터 나라를 빼앗겼던 포로 시대, 로마제국에 의해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진 2천여 년은 바로 유랑과 핍박의 역사였다. <유대인 이야기> p.41

 유대인은 지금의 예루살렘인 가나안 땅에 최초로 정착했습니다. 정착 당시 풍요로운 삶을 살던 유대인은 4백 년이 지나서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가나안에 살던 유대인들은 나일강을 끼고 비옥한 토지가 있던 이집트로 이주를 합니다. 힉소스인들의 호의로 유대인들은 기름진 땅에서 번성했습니다.

 기원전 1580년경에 힉소스족이 무너지고 새로운 왕국이 들어섰습니다. 이 시기에 이집트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2백만 명으로 이집트인보다 많았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자기들보다도 더 커진 유대 민족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유대인을 견제하기 위해서 많은 유대인들을 노예로 동원하였습니다. 람세스 2세 시절에는 거대한 규모의 신전을 건설 노예였던 유대인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유대인 노예의 혹사로 이집트는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지쳐갔습니다. 신에게 구원을 빌며 이집트를 탈출을 시도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은 가나안을 향했습니다. 직선거리로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유대인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40년이라는 세월을 사막에서 보냅니다. 유대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하여 유월절 축제날에 '누룩 없는 빵'을 먹습니다. 이 기간에는 맥도널드, 피자헛 같은 패스트푸드 매장에서도 나무토막 같은 햄버거와 피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지금의 이스라엘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기원전 1300년경 페니키아인, 그리스인과 함께 자유와 개방 시대의 주역이 됩니다. 무역과 민주주의로 이스라엘인들은 부유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막대한 부는 부패를 만연 시켰습니다. 솔로몬 왕국 당시 수도 건설에 엄청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었습니다. 각 지역에 요새를 건축하고 군대의 장비 구입과 유지 비용에도 막대한 지출이 있었죠.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두 왕국으로 갈라졌습니다. 두 개로 쪼개진 왕국은 서로 다투기도 하며 약해졌습니다. 약해진 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와 바빌론의 이민족에게 침략을 받게 되고, 강하게 저항하지만 결국 정복당합니다. 유대인들은 다시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져 성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주로 왕래가 잦았던 이집트로 피신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방랑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1948년 이스라엘 건국까지 약 2천5백 년을 유대인은 방랑하며 지냈습니다.


 유대인의 로마 제국과 중세 시대 고난의 원인은 예수의 탄생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는 율법과 할례 없이도 그를 통해 하느님을 믿고 회개하면 누구나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로써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이 유대인만의 하느님이 아닌 모든 인류의 하느님이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유대인에게 율법과 할례는 그들의 정체성이자 종교와 목숨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하느님을 같이 모신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죠. 유대인들은 율법과 관습이 깨져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를 배척하고 박해하기 시작했죠. 예수를 박해하였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수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유대인이 고난과 역경을 겪은 이유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은 도덕심리학을 다루는 책으로써, 정치와 사회에서 공동체의 충돌이 왜 일어나는지 살펴봅니다. <바른 마음>에서는 각각의 공동체가 각각의 옳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도덕심리학의 3가지 원칙은 갈등의 원인을 말해줍니다. 앞으로 말하는 도덕성은 인간 본성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1. 직관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전략적 추론이다

조너선 하이트는 직관을 코끼리로, 전략적 추론을 기수로 표현합니다. 코끼리가 가는 방향을  기수가 조종할 수는 있지만, 코끼리가 기수를 무시하고 방향을 틀어버리면 통제가 어렵습니다. 코끼리라는 직관이 마주한 첫인상(사람, 대화)에 거부감이 들면 기수인 이성이 아무리 다그쳐도 거부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너무 잘 나갔습니다. 중세시대 유럽인들은 99%가 문맹률인 반면에 유대인은 성경을 읽기 위해서 공부한 덕에 높은 문해율을 자랑했습니다. 랍비라는 스승을 통하여 일찍이 교육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비유대인과 유대인 간의 교육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커져갔습니다. 교육 격차는 유대인들이 상업에서 크게 성공하는 데 기반이 됩니다. 반유대인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유대인을 배척하기 시작했습니다.

 1923년 독일에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당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빵 한 조각이 200억 라이히마르크에서 1,400억 라이히마르크로 폭등하면서 독일 전역에서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농민들은 마르크스화를 받기를 거부하면서 수확한 농작물을 팔지 않았습니다. 베를린에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길가의 상점을 닥치는 대로 약탈했습니다.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는 눈에 띄는 대로 유대인들을 폭행하기까지 하죠.

 성공한 유대인들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교육이라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초인플레이션 시기에 굶주린 대중은 박탈감에서 온 반감으로 부정적인 직관을 여과 없이 분출하였습니다. 독일인들의 이러한 분노는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로 이어졌고 지울 수 없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2.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덕성은 미각과 비슷합니다. 미각에 단맛과 짠맛, 신맛이 있는 것처럼 도덕은 메트릭스를 이룹니다. 도덕 메트릭스는 '배려/피해, 자유/압제, 공평성/부정,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마다 도덕 메트릭스의 비중을 다르게 둘 것입니다.

 중세 시대 유대인은 자유와 공평성에 비중을 두었다면, 비유대인은 충성심과 권위, 고귀함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서로 다른 도덕 메트릭스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이 서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던 두 공동체는 서로 갈등하였으며, 자신들의 땅이 없고 힘이 없던 유대인은 억압을 받았습니다.


3. 도덕은 사람을 뭉치게도 하고 멀게도 한다

인간은 90%의 벌과 10%의 침팬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비유합니다. 90%의 이기적인 행동과 10%의 군집(group)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다른 사람과 협동하며 공동체를 이루기도 합니다.

로마제국 내 유대인들은 상업과 해상무역은 물론 베 짜기, 염색, 유리 제조, 금세공, 주물 및 제련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수공품 생산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밖에도 유대인들은 직업군인, 기사, 고위 관료, 원로원 의원, 변호사, 의사와 같은 상류 계층에도 진입했다.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교도들 틈에 섞여 살면서도 그들과 융합하기를 거절했다. 이것이 반유대주의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 이야기> p.173

 공동체는 유대인들이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었지만 반유대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구심점이 되어 공동체를 뭉치게 하기도 하며,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멀어지게도 하기 때문입니다.

 재능이 뛰어났던 유대인들은 유대교라는 가치를 구심점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반면에 유대교를 믿지 않는 비유대인들을 배척하기 시작했죠.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도덕을 구심점으로 뭉친 유대인과 비유대인들은 서로 멀어지게 만들었고, 그들은 섞일 수 없었습니다. 잘 살기는 했으나 유대인들만의 땅이 없던 유대인들은 비유대인들 땅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갔습니다.


이 시련의 유랑 길은 당시의 그들에게는 힘든 고난의 길이었지만 경제사적으로는 현재의 유대인들의 부와 영향력을 만든 '은혜의 길'이기도 했다. <유대인 이야기> p.41

 유대인이 고난과 역경의 역사를 보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시련의 역사가 유대인에게 강한 생존력을 가질 수 있게 해 줬습니다. 현대 사회는 개인의 재산이 보호되고 냉전 시대를 지나 평화의 시대입니다. 강한 생존력으로 정체성과 공동체를 유지했고 수천 년을 누적해온 신뢰와 교육의 힘으로 현대 경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고난의 길이 오늘날의 은혜의 길을 걷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이 고난의 시기에 교육을 중단하고 유대교의 공동체와 정체성이 사라졌다면 현대 경제의 주인공은 유대인이 아니었을 겁니다. 주변 환경에 고통받고 괴롭지만, 포기하지 않고 실력을 쌓아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유대인들의 살아있는 역사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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