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2015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첫 직장이어서 입사와 동시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생의 티를 벗지 못한 직장인은 업무와 사회생활에 많이 어리숙했다. 신체적으로는 성인이었지만,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서 누군가에게 돈이라는 대가를 받고 1인분의 몫을 해나간다는 건 신입사원에게 버거웠다.
신입사원의 어리숙한 모습은 위기상황에서 극도로 증폭되었다. 때는 입사하고 얼마 안 되고 스키장으로 워크숍을 갔을 때다. 스키를 배워 본 적도, 타본 적도 없던 나는 단지 젊음이라는 패기로 초급자에서 상급자 코스로 직행했다. 문제는 제대로 멈추는 방법도 몰랐다는 것이다.
우려했던 상황은 일어났다.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급한 경사를 내려오면서 활강을 하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슬로프 중간에 한 어린아이가 앉아있있고, 결국은 부딪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서로 안전장비는 하고 있었기에 큰 부상은 없었다. 하지만 놀란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어린아이의 부모와 회사 선배들은 사고의 뒷수습을 해주었고 당황한 신입사원은 죄송하다는 말만 내뱉고 있었다.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은 아이는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며칠 뒤 어린아이의 부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보험이 아닌 개인적으로 병원비만 받는 걸로 합의하자고 말씀하셨다. 병원비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10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좌로 보냈다. 어린아이의 부모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직장생활 하신지 얼마 안 된 것 같으신데요. 인생 선배로써 말씀드리는 건데, 이런 경우에는 여윳돈까지 보내주는 게 서로 좋지 않을까요? 회사 선배들이 보험처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안 했고, 사고로 인해서 저희는 급하게 스키장을 나왔는데 너무 계산적으로 병원비만 달랑 보내면 누구라도 좋게 생각하기 어려울 거예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회생활의 미숙함을 감추려 했지만 들킨 느낌이었다. 부끄러웠다.
5년이 지난 2020년, 최근에 자동차 접촉사고가 있었다. 업무 출장 차 경기도 양주에 가는 길에 노원구 쪽에서 난 사고는 상대방 차에만 살짝의 스크래치가 나는 경미한 사고였다.
사고의 경위는 2차선으로 주행하던 내 차 앞으로 1차선 차량이 끼어들기를 하려 했고, 내가 지나가고 끼어들 것이라 생각하고 앞 차와의 간격을 좁히고 있었다. 서로 부주의했기에 난 접촉사고였다. 5분 간 도로 한가운데서 서로의 차량을 살펴보는 중에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나중에 연락하기로 하고 명함을 주고받은 뒤 업무를 보러 출발했다.
운전 경력 7년 동안 교통사고는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대처했다. 명함을 주고받고 나중에 합의나 보험사를 통해 해결하기로 하고 빨리 교통체증을 해소하려고 했다. 사고 현장을 벗어나서는 바로 보험사에 연락해서 접촉사고 시 보험 진행 여부를 문의했다. 사고 위치는 지도 앱으로 저장해놓고 시간은 차의 시간을 사진 찍어놨다. 출장 업무 중 급한 업무를 마무리하고서는 사고 상대방에게 즉시 연락했다. 혹시 몰라 통화 녹음 버튼을 눌러 놓은 상태에서 말이다.
내 차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고, 상대방 차에만 긁힌 자국이 있었기에 서로에게 과실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가길 원했다. 반대로 상대방은 변상 비용을 받기를 원했다.
교통사고 합의 중에 상대방은 감정적으로 말씀하셨다.
젊은 사람이 양보 운전을 해야지,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운전하느냐
하지만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인생 선배님께서 해주시는 좋은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조심하면서 운전하겠습니다.
라며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저는 2차선에서 주행하고 있었고, 1차선에서 끼어들기를 하는 차량으로 인해 접촉사고 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피해 여부를 떠나서 과실 여부를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자면 제가 피해자고 선생님께서 가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라며 내 의견을 전달했다.
처음에는 무슨 가해자 나며 화를 내셨지만, 내 의사가 잘 전달되었는지 몇 분 뒤 다시 전화를 준 상대방도 아무 일 없이 개인적으로 처리하기로 합의를 했다.
교통사고 합의는 처음이었지만, 직장 생활 5년 동안 수많은 민원을 합의 보고 처음 겪는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한 것이 침착하게 대응하게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분쟁 업무를 맡으면서 상대방과 합의를 보는 방법을 체득해 나갔다. 상대방과 감정적으로 대화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
5년 전 스키장에서 같은 일이 지금 일어난다면 같이 병원에도 가고 최대한 죄송한 마음을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적어도 신입사원 때처럼 바보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직장생활 5년은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처하도록 만들어줬다.
내가 우리나라 평균 수명까지 산다면 아직 삶의 전환점을 돌지 않았다. 살아갈 날 동안 여러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누군가는 보고 비웃을지 모르는 5년이란 직장경력에서 나는 위기상황 시 대처능력을 배웠고, 침착하게 대응한다면 원만히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직장생활은 사회에서 1인분의 몫을 멋지게 해낼 자신감을 선물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