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하포드 <경제학 팟캐스트> X 윌리엄 번스타인 <부의 탄생>
인류의 문명은 0.1%의 창의적인 사람과 그것을 알아보고 협력하고 함께 문명을 건설하는 0.9%의 안목 있는 인간, 통찰력 있는 사람의 1%가 이끌었다. 나머지 99%의 인간은 1%가 건설한 문명에 감탄만 하는 잉여인간이다.
<엔트로피>, <공감의 시대> 저자 제레미 리프킨
'잉여'의 뜻은 쓰고 난 후의 남은 것이다. 상당히 도발적이다. 유명한 미래학자라지만 나를 잉여인간으로 규정짓다니 불쾌하다. 나름 가족과 사회, 직장에서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쓰고 난 후에 남은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을 건설한 1%의 통찰력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불쾌하지만 나는 잉여인간인가. 오히려 반대로 묻고 싶다.
1%의 통찰력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팀 하포드의 <경제학 팟캐스트>는 현대 경제를 만든 50가지 생각들을 정리해놓은 책이다. 경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엔 쉽게 접합 수 있는 철조망부터 근대 서구사회를 이끈 유한책임회사까지 읽다 보면 '1%의 통찰력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며 느끼게 된다.
1%의 사람의 생각이 과연 현대 경제를 이끌었다는 말을 검증하기 위해 최근에 읽은 윌리엄 번스타인의 <부의 탄생>에서 말하는 부가 탄생하는 기준을 가져왔다. 문명이 성장하고 부를 축적하는 데 필요한 것은 재산권, 과학적 합리주의, 현대적인 자본시장, 중요한 정보를 신속히 전달하고 사람과 재화를 수송하는 능력이다. 이 4가지 제도가 현대 경제의 부를 탄생시킨 것이다.
https://brunch.co.kr/@dongdong2/45
부가 탄생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4가지 제도가 설립될 수 있도록 문명을 이끈 1%의 통찰력 있는 사람의 발명품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1876년에 존 원 게이츠라는 젊은이가 텍사스 샌안토니오 중부 군사 지역에서 철사로 우리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텍사스에서 힘센 황소를 우리에 집어넣어도, 동료가 소몰이를 했을 때에도 우리는 끄떡없었다. 게이츠는 자신이 개발한 울타리로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철사로 된 울타리를 현대적인 철조망으로 만든 사람은 글리든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두 가닥의 부드러운 철사가 꼬여 있는 형태의 철조망을 만들었다. 이는 품질이 좋아서 바로 사용되었다. 게이츠와 글리든이 만든 철조망이 '가장 위대한 시대적 발견'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서부의 미개척지를 개발하는 시기와 맞물려서 철조망이 땅의 재산권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미개척된 땅에서는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났고, 생산성은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철조망으로 '내 땅'을 구분 지을 수 있었고 이는 생산성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게이츠와 글리든은 철조망으로 부자가 되었다. 글리든이 철조망 특허권을 받았던 해에 철조망 생산량은 50킬로미터에 불과했지만, 6년이 지난 1880년에는 42만 3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철조망을 생산했다고 한다. 이는 지구를 열 바퀴 감고도 남는 길이라고 한다.
중세의 유럽은 과학적이고 합리주의적 사고를 질식시켰다. 14세기부터 시작한 르네상스 이후 인류는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현대 경제에는 과학적 합리주의가 만개하였다. 부는 이러한 배경과 더불어서 급격히 축적됐다.
현대 경제에서 과학적 합리주의를 보여주는 발명품은 시장조사다. 산업혁명은 물건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넘치는 시대를 만들어줬으며, 이는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시장조사라고 하는 발명품은 '생산자 중심' 접근 방식에서 '소비자 중심'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제품을 먼저 만들어놓고 소비자에게 팔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조사해서 이를 토대로 제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의 출발점이었다.
<경제학 팟캐스트> p.100
20세기 초 미국 자동차 산업이 호황을 누렸지만, 1914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이러한 상황에 한 평론가는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자동차를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론가 찰스 쿨리지 팔린으로써, 시장조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팔린의 시도는 이후 많은 기업이 시장조사 부서를 만들게 하였고, 이후 10년간 미국의 광고 시장은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특히나, 소비자의 새로운 욕구를 창출하는 일을 광고로 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를 만들었다.
유한책임회사는 투자자들이 회사가 파산 시에 자신이 출자한 만큼만 책임을 지고, 회사 운영에서는 회사의 설립과 운영처럼 사적인 영역은 폭넓게 인정하는 회사 형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유한책임회사가 현대적인 자본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일까?
한번 생각해보자. 사업 실패로 집을 날릴 위험이 있다거나 교도소에 갈 위험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디에 투자를 할 것인가? 아마도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의 사업에만 투자를 할 것이다. 혹은 의심스러운 행동은 하지 않는지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지인의 사업 정도가 투자 대상일 것이다. 개인적ㅇ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경영자가 운영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은 아마도 고려 대상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사가 끌어모을 수 있는 자금의 규모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경제학 팟캐스트> p.188~189
투자자의 투자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낮춰준다. 이는 자본가가 발명가에게 투자하는 문턱을 낮춰주며, 발명가는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비용이 낮아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훌륭한 아이디어가 풍부한 자본을 만나 시너지를 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19세기의 철도와 전기 같은 많은 자본이 필요한 산업 분야가 유한책임회사 제도를 통하여 크게 성장하였다. 그렇지만 유한책임회사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 투자자가 맡긴 돈을 경영자가 무책임하게 관리하고 방탕하게 쓸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에서 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은 발전해왔지만, 정보 비대칭성에 따른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
디젤의 발명이 상업적 잠재력을 드러낸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였다. 당시 디젤 엔진은 승용차가 아닌 다른 교통수단에 활용되었다. 1920년대에 디젤 엔진을 장착한 트럭이 등장했고, 1930년대에는 디젤 기반의 기차가 나왔다. 1939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해상 무역의 4분의 1이 디젤 엔진을 탑재한 선박에 의해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디젤 엔진은 더욱 강력해지고 연비 또한 높아지면서 대형 선박에 널리 활용되었다. 디젤의 발명은 말 그대로 세계 무역의 엔진이었던 셈이다.
<경제학 팟캐스트> p.223
세계 무역의 엔진이 된 디젤 엔진을 연구한 사람은 루돌프 디젤이다. 젊은 시절 디젤은 엔진 효율의 이론적 한계에 대한 열역학 강의를 듣고는 열에너지 대부분을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엔진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가졌다. 당시에 엔진 효율은 10퍼센트에 불과했지만 디젤이 개발한 엔진은 25퍼센트를 넘었다. 오늘날의 디젤 엔진 최고 효율은 50퍼센트에 가깝다.
엔진의 효율성을 두 배 이상 늘렸지만 시장에서는 신뢰하지 않았다. 불만 가득한 고객들은 환불을 요청했고 디젤은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졌다. 결국 파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디젤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세계 무역의 엔진을 만들고 문명을 이끌었지만 파멸하였다는 점이 안타깝다.
문명을 이끈 발명품과 이를 발견한 사람을 살펴보았다. 철조망을 만든 게이츠는 성공하였지만, 디젤 엔진을 만든 디젤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파멸에 빠졌다. 문명에 필요한 발명을 하였지만 모두가 재정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모두 인류 발전에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앨런 가넷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에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브를 소개한다.
친숙성에 따라서 고객의 선호도가 다르며, 이는 5구간으로 나뉘는 특징을 지닌다.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발명품이면서도 재정적으로도 성공하려면 '스위트 스폿'단계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금은 낯설지만 선호도는 급격히 올라가는 지점이다.
철조망은 스위트 스폿에 위치하였지만, 디젤은 과격한 관심 구역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문명을 이끄는 1%의 능력있는 사람이었지만, '스위트 스폿'에서 발명품을 선보이는 건 천재들에게서도 어려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