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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May 15. 2020

우리의 운명은 의지로 바꿀 수 있을까

한나 크리츨로우 <운명의 과학>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지로 바꿀 수 있을까? 바꿀 수 있다면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의지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때가 있었다. 십여 년 전에 생각만으로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그 신호를 받아서 현실로 이뤄준다는 책을 읽었을 시기였다. 당시에 감명 깊게 읽어서 집 앞의 마트를 지나갈 때 500원을 줍는 생각을 그렇게 했었다. 당연히 500원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기도 했다. 그래서 작년에는 사주를 본 적이 있다. 생년월일과 이름으로 정해진 앞으로의 운명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운이 굉장히 좋다거나, 결혼 운이 앞으로 2년 동안 세다는 등 운명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러나 대체로 두리뭉실한 말들이었고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사실들이었다. 행운은 확인해볼 길이 없으며, 결혼 운이 세다는 건 나이가 결혼을 많이 하는 나이 대이기에 당연한 말이었다. 생년월일로 확인해 본 운명은 불확실했다.

 생각과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없었으며, 운명적으로 되는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운명처럼 정해진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의지로 길의 종착지를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영국의 스타 신경과학자인 한나 크리츨로우 박사는 <운명의 과학>에서 우리 몸에 내재되어 있는 유전으로 인한 운명과 생각으로 인한 자유 의지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운명은 먹고 자는 것처럼 살아가기 위한 욕망이다. 그렇지만 우리 몸에 내재되어 있는 식욕의 30퍼센트 정도는 우리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

 음식에 관한 행동이 오로지 유전자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체중에 있어서는 70퍼센트가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 직접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려 30퍼센트 정도가 환경적 요인에 달려 있다는 의미가 된다. 환경을 바꿔 줌으로써 인생의 아주 초반기에 뇌 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이 회로를 변경하거나 강화하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p.101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것에 운명과 자유 의지 각자의 역할이 있다. 이 중 우리가 원하는 건 운명보다는 자유 의지로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자유 의지로 멋진 모습으로 변하기 원한다면 작은 성공을 이루는 것이다. 작은 성공은 우리의 뇌의 신념 체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운명의 과학>에서는 뇌는 굉장히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엄청나게 쏟아지는 외부 자극을 곁가지는 무시하고 중요한 정보만 인식하고 처리하며 의미를 찾아낸다.

 뇌를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로부터 지속적으로 의미를 추출해 내려 애쓰는 '신념 엔진'이라 생각할 수 있다. 뇌는 자기가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 입력을 분류하고 상호 참조해서 패턴을 생성함으로써 이것을 해내고 있다. 대체로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이 작업의 목표는 의식적 인지로 하여금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것이 놀라운 능력이기는 하지만 항상 결함 없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뇌는 특정한 사실로부터 일반화하는 데 약점을 가지고 있다. 보통 일단 누군가가 똑같은 맥락에서 똑같은 경험을 두세 번 정도 겪게 되면 그 사람은 이것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기꺼이 주장하게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현실을 모형화한다. 그리고 이 예측 과정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도와준다. 이것은 '직접 경험 경로'라는 것을 통해 행동을 빚어내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사과를 접하고, 그것을 먹었더니, 맛이 좋았다. 따라서 당신은 다음에 만나는 사과도 맛이 좋을 거라 예측한다. 그리고 그랬더니 실제로 맛이 좋았다. 이런 경험을 몇 번 반복하면 당신은 결국 사과는 맛이 좋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그래서 당신은 사과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이것은 완전히 이성적인 행동이다. p.201

 작은 성공으로 굳어진 신념 체계는 보상을 가져온다. 믿음(신념) 자체가 행복감을 가져다 주기도 하며,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강한 응집력과 함께 고취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종교 활동은 또한 흔히 모두 어울려 기도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행동과 함께 이루어진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는 강력한 사회적 응집의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여기에 웅장한 종교적 건물, 기분 좋은 냄새, 건물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등이 더해지면 쾌락 반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하지만 흥미롭게도 여기서의 핵심은 종교가 아니라 신념일지도 모른다. 이런 연구 결과는 다른 다양한 공도의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재현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경기자에서 자기네 축구팀이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을 관람하는 것도 대단히 황홀한 감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혼자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관람하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이다. 보상의 느낌이 이렇게 치솟으면 팀에 대한 헌신이 더욱 공고해져서 올해야말로 자기네 팀이 챔피언에 등극하리라는 신념이 강화되고 또 다른 시즌에 대한 충성심도 굳어진다. p.210~211

 신념의 보상은 강화된 믿음을 가져온다. 작은 성공은 성취감이란 보상을 주고 이는 작은 성공이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강화된 신념으로 이어진다. '신념→보상→강화된 신념'이란 선순환이 이뤄진다.


 작은 성공을 맛보기 위해서 내가 하는 건 주로 매일 할 일 리스트를 작성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네모 박스 칸에 체크하기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독서를 하고 걷고는 한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매일의 성취감은 게임에서 경험치를 쌓아 레벨 업하는 기분이다.

 인생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신경과학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라고 대답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수록 운명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에 더 큰 힘이 실린다. 우리는 방대하고 복잡한 행동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배어들고, 놀라운 메커니즘을 통해 세대를 거쳐 전달되고, DNA 암호 속에 새겨지고, 또 유전자 볼륨 조절 다이얼을 통해 정신을 구성하는 회로의 구축을 지시하는지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과 현실감은 본질적인 정보 처리의 제약을 안고 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안고 있는 운명을 믿게 만든다. 반면, 뇌의 또 다른 특성인 가소성, 활력, 유연성은 행동, 나아가서는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여지를 남긴다. 하지만 개개의 습관을 깨뜨리려면 인내심과 함께 자아성찰, 그리고 타인과 소통하고 타인에 연민을 느끼는 능력도 필요하다. p.326-327

  나에게는 게으름이라는 특성이 내장되어 있다. 십여 년 전에 생각만으로 게으름에서 벗어나려 했다면 죄책감만 더해졌을 것이다. 반대로 운명에 몸을 맡겼다면 침대에서 등을 뗄 일이 없었을 것이다. <운명의 과학>에서 말하는 뇌가 가진 가소성과 활력, 유연성의 특성은 매일 할 일 리스트를 작성하게 만든다. 이 리스트는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지금도 카페 가서 서평 쓰기를 실천하기 위해 무거웠던 몸을 이끌고 밖에 나와 글을 마무리 짓는다. 작은 성공을 자주 맛보았더니 우리의 운명은 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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