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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Jun 14. 2020

낯선 죽음을 생각해봤다

일레인 카스켓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책의 장점은 무엇이고,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점과 이유를 나열하면 끝도 없지만 가장 큰 것은 간접 경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고 행동하는 건 경험으로 남는다. 직접 경험은 나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내가 경험한 것과 남이 경험한 것의 간격을 좁혀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독서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일레인 카스켓의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는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나에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SNS에 남긴 디지털 자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준다. SNS 플랫폼이 생긴 지 10여 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디지털 자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쌓여갔고, SNS 이용자들이 죽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디지털 유산에 대해 사회가 무관심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는 상세하게 소개한다.

집착이 심한 남자 친구에게 살해당한 여성의 SNS에는 가해자인 남자 친구와 같이 찍은 사진이 많았고, 이를 보며 괴로워하는 아버지.

남자 친구와 동거를 한 여성이 남자 친구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기존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같이 찍은 사진이 많은 노트북을 받지 못하는 경우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SNS 회사 규정에 따라 죽은 이의 계정을 인도받지 못하는 경우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은 이의 개인 정보를 모두 다 인도받는 경우 죽은 이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받는 경우

 책에서 소개하는 수많은 사례들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의 디지털 자료가 내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다뤄질까?' 섬뜩했다. 고민해본 적이 없기에 갈지(之) 자 행보를 보여온 일관성 없는 내 디지털 유산을 주변 사람들이 본다면 혼란스러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디부터 정리해야 할지 막막한 독자들에게 수년 동안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라는 책을 쓰면서 디지털 유산에 대해 고민해온 저자는 책 마지막에 10가지 지침을 소개한다.


 1. 죽음에 대한 불안에 직면한다

 2. 항상 점검하고 결코 추정하지 않는다

 3.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4. 죽음과 디지털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5.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유언장을 작성해둔다

 6. 권리를 위임받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마스터 패스워드 체계를 구축해둔다

 7. 당당한 큐레이터가 된다

 8. 더 많은 접속이 항상 더 나은 기분을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

 9. 오래된 방식을 존중한다

 10. 불멸 같은 건 잊는다

 이 마지막 지침의 요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능한 한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라. 많이 사랑하라. 살아가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라. 세상의 선을 위해 힘쓰라. 이런 삶에 헌신하다 보면, 그 삶의 유산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다. 유산의 형식과 지속 기간은 당신이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일레인 카스켓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p.422-423

 책을 통해 디지털 유산이란 생소한 단어를 마주했다. 나에게는 낯설었지만 이미 세상은 디지털 유산에 고통받기도 하며, 디지털 유산을 통해 위로받기도 하며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죽음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브런치에 남긴 글들은 디지털 유산이 될 것이다. 저자가 죽음이 낯선 독자들에게 말해준 십계명과 동시에 남겨질 디지털 유산들을 잘 관리해야겠다는 다짐을 새긴다.

 삶에 더 감사하고, 더 많이 사랑해야지. 이렇게 낯선 책은 남에게 공감하게 해 주고, 사회를 이해하게 해 주며, 나의 삶을 사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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