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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Mar 09. 2023

신에 대한 사색 (2)

노인과 소녀

 신을 믿는 한 젊은이가 살았다. 모두가 신을 믿지 않았을 때, 그는 홀로 성경을 펼치며 구약성서에 적힌 하느님의 섭리를 듣고자 노력했고, 불경을 펼쳐 업보와 윤회사상, 그리고 부처님에 관한 이야기를 늘 가슴에 새겼으며, 종교에 대한 지식을 여러 방면에서 쌓아 올렸다. 그에게 있어 신은 사랑이었으며, 보다 큰 만족과 기쁨이었고, 나날이 살아가는 이유에 해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한 꿈을 꾸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이름 모를 노인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노인과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    

 

ㅡ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ㅡ제 이름은 길명준입니다.

     

ㅡ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거지?

     

ㅡ제가 당신을 찾은 이유는 당신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ㅡ어허.. 가르침이라.. 그 전에 먼저 말해야 할 것이 있다네. 고민이 있어 보이는데, 자네의 고민을 먼저 말해보게나.     


ㅡ제 고민은 다음과 같습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생(生)을 향하여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모릅니다. 그들 또한 저를 모르지요. 하지만 그들과 저는 모두 같은 거리를 걷고 있으며, 저 멀리 우리를 내다보는 누군가의 뜻에 의해 생명을 간직한 채로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과 저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작은 뜻이든, 큰 뜻이든 간에 그들과 저는 필연적으로 어떤 공동 운명체를, 같은 방주를 탄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ㅡ계속 말해보게나.     


ㅡ누군가는 선생님으로, 누군가는 회사원으로, 또 누군가는 버스 기사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지나가는 고양이들은 따스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반겨주고, 도로의 비둘기들은 모이를 쫓아 자신만의 길을 나아갑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왜 사람들은, 그리고 생명체들은 각자에게 맡은 임무와 사명대로 살아가는 것입니까? 하물며 작은 미물에도 모두 생명의 섭리가 깃들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도대체 왜 태어난 것입니까? 그 비밀을 알려주소서.     


ㅡ내가 답할 수 있는 한 성심성의껏 말해보지. 잘 들어보게나. 먼저, 우리의 세상은 처음에 짙은 암흑이 드리워져 있었다네. 저 먼 누군가에 의해 세상이 개벽하고, 빛과 어둠이 생겨났으며, 우리가 두 발 딛는 대지가 나타나게 됐다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지. 무존재에서 존재로, 무생명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근원적인 지점을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야. 그 과정에서 해와 달, 바람과 바다, 바위와 사막이 생겨났고 더 시간이 지나 생명체가, 그 후에 마지막으로 ‘인간’이 생겨났지. 인간은 종교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네. 누군가는 불교를, 또 누군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를, 또 누군가는 유가 사상을 주장하며 신에 대한 다채로운 생각과 지향점들을 각자 다르게 주장했다네. 

    

ㅡ오, 노인이여. 이제 조금은 깨달음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더 말해주소서.

     

ㅡ생명의 원인과 탄생. 그 비밀은 바로 신의 섭리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라네. 인간의 무의식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의 의식 뒤에 놓여있는, 빙하의 거대한 아랫면 같은 그것들이 우리를 조종하고, 우리는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르지만 늘 의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지. 우리는 꼭두각시일 수 있어. 우리를 지켜보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어떤 분에 의해, 초월적인 성질을 지닌 한 분에 의해 만물이 살아가고 있는 법이라고 할 수 있지. 즉, 삶이란 것은 결국 신이라는 감독, 신이라는 훌륭한 연출가에 의해 돌아가는 하나의 다사다난한 연극일 수 있다는 것이야. 이러한 무의식을 우리는 신의 섭리라고 부른다네. 

 모든 생명체는 무의식을 지닌 채 살아가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자세히 모른다네. 그저 우리 눈앞에 놓여 있는 의무를, 그리고 숙제를 하루하루 다해나가며 생을 전개해나갈 뿐이지. 누군가는 이것을 숙명이라고 부른다네. 또 누군가는 숙명론을 부정하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고, 자신들만의 의견을 전개하고 있다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숙명론이 되었든 자유의지가 되었든, 인간의 합리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이성과 감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는 사실이라네.     

ㅡ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신과의 만남을 위해 제게 필요한 것은 바로 무엇입니까? 

    

ㅡ믿음. 바로 신에 대한 직관적 믿음이 필요하다네. 

    

ㅡ그렇다면 신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얻는 것입니까?  

   

ㅡ깨달음이라네.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는 득도(得度)를 하고, 나보다 높은 상위의 존재, 신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무언가의 형상과 교감할 수 있는 것이지. 득도를 통해서 만물의 합일에 대해 추구하고, 세상 만물에 대한 사랑을 느껴야 한다네.  

   

ㅡ그럴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ㅡ바로 다른 생명을 구원케 하는 힘, 더 나아가 비단 생명체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무생물에게까지도, 우리 모두를 구성하는 요소와 원자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노력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여기서의 기도는 종교적인 의미로서 강요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야. 내 생명과 세상의 만물이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아래에서, 무언의 에너지로 전파할 수 있는 무형의 그것, 생각, 사상, 가치관, 행동, 지행합일 등 모든 것을 의미한다네. 내가 하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나?   

   

노인은 잠시 말을 그쳤다.           


 그 순간, 젊은이는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옆에 화분이 하나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화분에서 피어난 꽃잎들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것들을 손으로 잡았다. 떨림은 곧 멈추었다.  


      

며칠 후, 그는 다시 꿈을 꾸었다. 꿈에서 한 소녀와 여성이 나타났다. 여성은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였고, 소녀의 몸은 이곳저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그는 소녀에게 물었다.    

 

ㅡ소녀야, 어디가 아프니?  

   

ㅡ전 괜찮아요. 하지만 저희 어머니가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저 때문에...

    

ㅡ너 때문에라니?  

   

ㅡ사실 저희 엄마는 이미 돌아가신 분이에요. 지금 제 앞에 있는 저희 어머니는 어머니의 영혼이에요.

     

ㅡ어머니의 영혼? 그럼 너 역시 죽은 상태인 거니? 

    

ㅡ하지만 저는 살아 있다고 믿고 있어요. 사람들은 저를 보고 죽었다고 하겠지만... 

    

ㅡ널 보니 문득 세상 사람들의 아픔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구나. 오해와 무지, 그리고 편견으로부터 얼룩진 고통들이 말이야...

     

ㅡ오빠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제 진실된 이야기를 받아들여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오빠는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에요?

    

ㅡ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니? 많은 종교 서적들과 옛 성인들의 가르침을 보면 영혼의 불멸성과 사후세계, 천국과 지옥의 존재에 대해 늘 논쟁하고 있거든. 나는 그게 항상 궁금했어. 꿈에서라도 하나의 힌트를 얻기를, 여러 단서들을 얻기를 늘 바래왔지. 

    

ㅡ오빠, 그건 제가 조금은 말해줄 수 있어요. 사실 저는 이미 사후세계를 한번 다녀와 본 사람이에요. 아니,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그곳에는 우리가 살았던 모든 생명체와 사람들, 오빠가 한때 열렬히 사랑하고 질투도 했던, 또 시기와 증오도 했던 누군가의 영혼들이 모두 모여 있어요. 언젠가 인연이 닿아 같은 거리를 거닐기도 했었던 생명의 영혼들마저 그곳에 있지요. 길고양이와 강아지, 새, 나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까지 전부 그들의 영혼이 기록되어 있는 도서관 같은 곳이에요. 

 그곳은 천국 같은 곳이기도 하고, 지옥 같은 곳이기도 해요. 누군가는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을 방문했지만, 그곳에서마저 지상에서 올라온 영혼들이 서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며 논쟁을 벌인 까닭에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아마 제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진 않으실 거에요. 다만 제가 오빠에게 말씀 드릴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이것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라는 사실이에요. 직접 경험해보고 직접 깨닫는 순간에만 파악할 수 있는, 그전까지는 깨달음에 이르러야 하는 고행이 필요한 종합적인 훈련 과정 같은 것이에요. 가보지 않은 이상, 가보았다고 호언장담 할 수 없는 곳이랄까요? 세계를 호령했던 나폴레옹, 한니발과 같은 장군들에서부터 고대의 여러 사상가들, 그리고 이성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었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까지도 도무지 파악 할 수 없었던 신비한 비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ㅡ신비한 비밀이라.. 아직은 내가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구나..    

  

 소녀가 말을 마친 순간, 그는 꿈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꿈에서 깬 그의 두 눈앞에, 언젠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구매했던 ‘어머니와 소녀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언뜻 본 소녀상의 모습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노트에 조용히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신의 장난이라도 되는 것처럼, 누군가의 계시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꿈에서 겪었던 생생한 기록들을 노트 위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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