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동이 Nov 29. 2022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3)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백수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느꼈던 건, 외부 세상과의 단절감이었다. 내면속으로 너무나 깊게 들어간 까닭이었을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분위기가 어색했고, 미묘한 감정들이 오갔으며,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오랜 지병을 앓았던 사람처럼, 그들의 말에 연거푸 물음만으로 끝을 맺을 뿐이었다. 그전까지는 상당히 외향적이었던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칩거 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내향적으로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군대를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우리 과에서 제일로 까부는 사나이였다.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늘 개그를 뽐내고, 슬랩스틱을 통해 웃음을 선사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일종의 광대였다. 나가서 노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해 나의 끼를 발산하는 것도 너무나 즐거웠다. 그랬던 내가 점차 내향적으로 변해 갈 줄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심정적으로 힘든 일들을 몇 번 겪고, 나름의 시련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기회들을 몇 번 부닥쳐보니 아무래도 자연스레 내향적으로 변해갔던 것 같다. 어떤 책에선가 보았는데, 흔히들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생각이 트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외부의 대상에 몰두하던 관심과 방향들이 자신의 내면을 향해 사고의 과정이 바뀌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변화는 친구들이 나에게 해주는 말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나를 보고 조금 변했다며, 성격이 이전과 같지 않아졌다고 말을 건넸다. 분명 친구를 만나면 누가 이길세라, 내 발언권을 꺼내 상대방과의 대화를 주도하려 했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또한 말이 많던 내가, 친구들을 만나면 유독 조용해졌다. 물론 정말 친한 친구들 앞에 있으면 지금도 수다쟁이가 되지만, 예전만큼 활발하게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나름의 필터링 없이 많은 말들을 했던 것 같다. 분명히 나의 말들로 인해 오해를 살 수도, 또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저 폭주 기관차처럼 친구들을 웃기는데 혈안을 기울였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보니, 오히려 외향적이었던 내가 내향적으로 변한 계기는 다소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조금 더 배려하고, 그와 동시에 나라는 사람을 차분하게 관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향적으로 변했던 나는, 회사를 퇴사한 이후부터 다시 책 읽기에 열중했다. 회사의 규칙적인 일상이 사라진 내게, 출근과 퇴근을 강요할 직장 상사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는 그때부터 본의 아니게 묵언수행(?)에 들어갔다. 가족들과도 대부분 말을 하지 않았으며, 밥 먹을 때를 제외하면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질 않았다. 다시 히키코모리로 변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때 당시 내가 중점적으로 읽었던 책들은 톨스토이의 저서들이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의 명저를 남긴 러시아의 대문호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더불어 나는 그의 사상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사상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점들도 있었지만, 그가 설파했던 사랑의 본질적인 가치, 평화에 이르고자하는 그의 노력들이 인상 깊었다. 죽기 전까지 썼다던 ‘참회록과 인생의 길’이라는 도서는 나의 심금을 울렸고, 그의 단편 소설들 역시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 책들을 읽고, 반복해서 또 읽었다. 다양한 작가의 책들을 읽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내가 끌리고 좋아하는 책들을 반복해서 읽는 것도 나의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톨스토이의 책들과 더불어, 나는 더 높은 깨달음에 이르고자 많은 종교책들을 읽었다. 우파니샤드라는 인도의 종교 경전은 ‘나의 내면’에 더욱 깊게 침잠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라는 존재와 내 안에 깊게 새겨진 본질, 아트만이라 불리우는 영(靈)이 그것이었다.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경전의 문장 하나하나에 온전히 집중을 했다. 내 호흡, 내 정신, 내 주관, 그리고 내 느낌 등. 보다 본질적인 가치들을 찾고자 우파니샤드와 같은 책들을 읽어 내려갔고, 또 그 영향으로 말미암아 변한 나의 내면은 이전보다 더욱 단단해져갔다. 

 독서와 온전히 하나가 되었던 나는, 조금씩 세상의 공기를 맡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책들에 적힌 내용과 내가 받아들인 세상의 정보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엮어서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파하고 싶은 감정을 느꼈다. 이로써,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