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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Nov 30. 2022

참을 수 없는 예술의 즐거움

비트박스, 팝핀, 그리고 소설

 예술. 영어로는 ART라고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술’하면 어딘가 기이한 인상을 떠올리기 쉽다. 수염을 턱끝까지 기르고, 머리카락은 치렁치렁하며, 넝마주이를 입고 자유분방한 손놀림으로 그림을 그리는 어떤 화가의 모습? 물론 방금 내가 적은 내용들은 과장이 포함된 것이겠지만, 일반적으로 예술가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어느 정도 일상생활과 괴리된 삶을 사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기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표현’을 내포한다. 즉, 내가 가진 감정이나 사상, 생각 등을 언어나 그림, 또는 춤 등 다양한 예술의 매개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저 먼 석기 시대 사람들도, 동굴에 벽화를 그려 그들의 세계관과 사상을 표현했으니 이 정도면 역사가 아주 유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예술에 끌렸을까? 엄마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 나는 아주 소심했다고 한다. 그저 종이접기를 좋아하고, 스테고사우루스와 같은 공룡 인형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주로 ‘혼자 노는 소년’에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내가 어떤 과정을 통해 사람들 앞에서 나의 글을 뽐내고, 나의 재능과 장기들을 뽐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나조차도 불가사의하다. 

 어렸을 때, 특히 초등학생 시절에 우연히 모르는 친구가 비트박스 하는 걸 본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지금처럼 유튜브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었던 시절이라 비트박스를 배우기 위해서는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강의 자료를 보던지, 아니면 재야에 은둔하는 비트박스 고수들에게 찾아가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친구가 수련회 장기자랑에 나가서, 비트박스로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고 등골까지 소름이 끼쳤다. 분명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자신이 배운 비트박스의 기술들로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 감정, 그리고 초등학생이 뽐내는 고유의 귀여움을 친구들 앞에서 표현한 것이었다. 그렇게 폭풍 같은 장기자랑이 끝나고, 나는 처음으로 비트박스로 내 세상을 나타내 보고 싶다는 예술혼을 마음속에 불사르게 된다.

  

비트박서의 모습

 나는 비트박스를 통해서, 그때 당시에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를 표현하고 싶었다. 일종의 정체성이랄까? 스스로를 위대한 아티스트라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자신의 독자적인 색깔을 비트박스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친구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이를 위해 그 친구에게 무작정 찾아간 나는 다짜고짜 비트박스를 알려달라고 졸라댔다. 그 친구와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나의 용기에 놀랐는지 조금씩 나에게 비트박스를 전수해 줬다. 친구에게 비법 전수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온 나는 인터넷 카페에 돌아다니는 비트박스 강의 자료를 다운 받았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잠이 들 때까지 입으로 계속해서 ‘북치기박치기’를 연습했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비트박스에 도가 튼 나는, 자유자재로 내가 표현하고 싶은 비트들을 비트박스의 현란한 기술들로 나타낼 수 있었다. 킥, 하이햇, 스네어와 같은 표현들로 당대 유행했던 대중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으며, 나와 같이 비트박스를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장기자랑에 나가 단체로 공연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그때의 희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열심히 배운 기술, 오랜 시간동안 터득하고 연마한 능력들로 나의 정체성이 담긴 하나의 때깔 좋은 비트박스를 통해 공연을 선보였을 때의 그 기쁨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였을까? 무언가를 계속해서 표현하고 나타내고자 하는, 나의 예술혼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졌던 때가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비트박스를 넘어서 새로운 예술 장르로 나의 감정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춤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스트릿댄스, 특히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이용한 춤인 ‘팝핀’이라는 장르를 배워보고 싶었다. 팝핀을 접한 계기도 내가 위에서 언급한 비트박스를 배운 사례와 유사하다. 고등학교 축제 때, 모르는 친구가 무대로 올라와서 뜬금없이 팝핀을 췄는데, 음악에 맞춰 프리스타일로 움직이는 그의 근육들과 멋진 동작들이 나를 한눈에 사로잡았다. 나는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수능이 끝나면 언젠가 꼭 춤을 배워야지라며 생각만 하고 있다가, 대학교 합격 발표가 난 이후 즉시 댄스 학원에 달려가 수업을 등록했다.


 

팝핀 댄스

 사실 그전까지 나는 몸치였다. 그것도 심각한 몸치였다. 키만 멀대같이 크고, 몸의 움직임이 굉장히 둔했던 나는 달리기도 못했고, 축구와 농구 같은 구기 종목 역시 잘하지 못하였다. 결국 잘하는 건 공부 밖에 없었던 나는 비트박스를 뛰어 넘는, 나의 예술혼을 더욱 불사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 고난이도의 동작을 취하고, 그것들로 노래의 정점들을 표현할 수 있는 춤이 바로 그것이었다. 노래에 맞춰서 자신의 동작들을 딱딱 움직이면서, 자신의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멋져 보였다.

 팝핀은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는 춤의 장르였다. 특히 팝이라는 테크닉을 통해, 노래에서 흘러나오는 강한 비트에 맞춰서 동작을 취하면 시원한 쾌감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로봇 댄스와 같이 여러 스타일의 춤들을 연습하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점점 찾아 나갔다. 사람들 앞에서 언젠가는 멋진 공연을 펼쳐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화장실에 들락날락 할 때 마다 거울을 쳐다보며 조금씩 춤을 연습했다. 또한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서 구성원들과 함께 밤을 새며 춤을 추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말미암아 나는 동아리 정기 공연에서 멋진 기량을 선보일 수 있었고, 과에서 진행하는 축제 때 단독으로 ‘팝핀 솔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세 번째, 현재 진행형에 해당하는 소설에 대한 예술혼이다. 사실 소설에 대한 나의 예술혼은 역사가 그렇게 길지는 않다. 비트박스는 16년 정도, 팝핀은 10년 정도, 소설은 한 6년쯤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접했던 세 가지 예술 장르에서 가장 늦게 시작한 분야였던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건 여러 문학작품들을 접하면서부터, 특히 러시아 문학과 고대 그리스 문학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들을 접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1년 동안 휴학을 하고, 과외로 벌었던 500만원을 전부 책을 사는데 투자했다. 각종 출판사에서 출간한 세계 문학 도서들에 관심이 생긴 나는, 사람들이 명저라고 부르는 고전들을 조금씩 읽어 나갔다. 러시아문학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고골 등이 그랬고,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는 에우리피데스와 호메로스 등이 그러했다. 오로지 책읽기를 통해서 작가를 꿈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내 브런치 글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올렸지만, 세계적인 대문호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강하게 피어올랐다. 내 사상과 세계관을 작품으로 나타내서, 이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싶다는 마음.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내 영혼을 불사를 정도의 작품들을 연이어 써내서 사람들을 놀래키고 싶다는 생각. 먼 훗날, 내가 죽더라도 나의 작품만은 불멸의 명성을 얻어 많은 이들에게 칭송되고,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위해 나는 습작을 조금씩 해나갔다.

 처음에는 책들 속에서 감명 깊게 읽은 부분들을 따로 모았다. 예를 들면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소설들 중에 하나인 돈키호테의 결말 부분을 따로 떼어내서, 그것만 반복적으로 읽는 것이었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 이야기’를 따로 떼어내서 그것만 반복적으로 읽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세계 문학의 하이라이트 부분들을 읽으니 내 사상이 더욱 원대해져 갔고, 세계적인 작가들이 고뇌했던 부분들과 섬세한 표현들로 나타내고 싶어 했던 그들의 생각들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었다. 독서를 통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정신적인 건강함으로 무장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독서를 통해 한 단계씩 다음 과정들을 밟아 나가면서, 나는 나만의 소설을 써내려갔다. 어떤 날은 비가 우중충하게 내리니까 조금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들을. 또 어떤 날은 해가 쨍쨍하게 떴으니까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을 생각하며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소녀들의 사랑 이야기를. 또 때로는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돈키호테와 비슷한 이야기를. 이렇게 하나 둘씩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가면서, 나의 생각과 감정들은 더욱 단단해져 나갔다. 마치 무딘 칼날을 날카롭게 만드는 과정처럼, 이야기가 하나씩 창조될수록 나는 그 전과 다른 상태로 변모해 있었다. 누군가 만약 “어디가 어떻게 바뀌셨나요?”라고 묻는다면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답변은 내놓기가 힘들지만, 글을 쓰기 이전과 다르게 정신적으로 강인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전에도 한 신문사가 주최하는 신춘문예에 작품을 제출했다. 나의 정성이 오롯이 담긴 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작품이다. 내가 쓴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나의 영혼으로 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각별히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 나의 작품을 읽고 스스럼없는 비판을 할 수도, 또는 자신의 관심사에 맞지 않는다며 내 작품을 내팽개칠 수도 있지만, 나의 손끝에서 작품들이 오롯이 탄생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기쁘다고 생각한다.

 비트박스와 춤, 그리고 소설까지 나의 예술혼을 불태웠던 세 가지 분야는 흥미롭게도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욱 관계가 끈끈해진 것 같다. 춤을 추면서 동시에 비트박스를 했던 나의 모습을 소설로서 나타낸 적도 있었다. 이러한 예술 형제들은 나라는 인간을 성장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으며, 더 나아가 나약했던 나의 내면이 ‘거대한 정신’으로 발돋움하는 단계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지금도 예술을 사랑한다. 그리고 표현하는 것이 참으로 즐겁다. 누군가 설령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다. 또한 나는 춤을 추며 비트박스도 해볼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예술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즐거움을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세상이 예술이 되는 날이 오기를 빌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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