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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Dec 01. 2022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4)

생애 첫 아르바이트(?), '보조출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초인이 생각났다. 산 속에서 수련을 마치고, 사회로 내려와 가르침을 설파하는 초인의 기분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시간의 방에서 정신적인 성숙을 거치고 난 뒤로, 나는 조금 더 과감해졌다. 내가 여태껏 해보지 못했던 경험들을 해보기로, 그동안 ‘공부 벌레’라는 타이틀에 갇혀 해보지 못했던 세상의 넓은 경험들을 몸소  느껴보기로 결심했다.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태어나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이 손에 꼽는다. 아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그전까지는 아르바이트가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 전에 잠시 거쳐가는 그런 단계? 잠시나마 경제적인 윤택함을 얻고자 노동력을 제공하는 며칠간의 일들. 뭐 그런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나는 ‘보조출연’이란 아르바이트에 지원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TV에 출연한다고? 물론 주연이나 조연의 역할은 아니지만, 그저 지나가는 행인1, 서있는 나무1 정도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아는 형의 제안으로 인해 나는 SBS ‘치얼업’이라는 드라마에 보조출연을 할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치얼업’이란 드라마는 연세대학교를 배경으로 한 ‘연희대학교’라는 가상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였다. 연희대학교 응원단에 속한 학생들의 사랑과 삶, 미스테리, 학교에서 일어날 법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다룬 드라마였다. 나는 그중에서도 연희대학교의 학생이 되어 ‘아카라카’라는 축제에 참여하는 ‘이름 모를 관객1’로 출연하게 된 것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까지, 백수생활이 길었던 지라 나는 내심 걱정이 많았다. 내가 회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도 폐를 끼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키만 멀대같이 크고 체력도 약한 내가, 사람들 틈에 끼여서 응원관객을 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여러 고전들을 읽으면서 주옥같이 적힌 말들이 있었으니. 바로 ‘일’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라는 것이었다. 버트런드 러셀이라는 철학자는 삶의 다양성을 경험해보면서,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고, 저 먼 바다의 해적도 되어보라는 말을 하였다. 나에게도 비록 소박한 기회이지만, 세상의 무궁무진함을 겪을 기회가 온 것이었다.

 8월의 어느 무더운 오후, 나는 보조출연자들에게 미리 도착한 문자메시지에 따라 필요한 의상을 입고 연세대학교로 향하였다. 연세대학교 강당 앞에 도착했을 때, 나와 비슷한 처지의 보조출연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빛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즐거움을 찾아 친구들과 추억 삼아 이곳을 온 신입생들도 있었고, 또는 보조출연을 전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사람들도 이곳저곳에 보였다. 누군가는 호기심과 모험의 눈동자로 사람들을 쳐다봤고, 또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비장한 마음을 품은 채 아르바이트 현장에 도착한 것이었다. 닭장같이 좁은 내 방에서 하루 종일 있다가, 그렇게 오랜만에 여러 사람들을 구경하니 무척 재밌기도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몸소 뛰어 보면서, 육체적인 노동의 즐거움을 조금은 깨달았다.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며 어깨를 흔들고, 열심히 응원가를 외쳐대니 어느덧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이름모를 관객1’이라는 역할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무리가 온 것 같았다. 오후 12시에 모여서, 새벽 2시쯤에 끝났으니 14시간을 서서 응원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종종 앉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움직이고 단장님의 명령에 따라 좌우로 틈을 벌이거나 앞뒤로 이동하며 연출의 방향에 맞게끔 동작을 수정해야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분들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내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내 나이가 30인데 지금쯤 어딘가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연령대가 높은 분들도 계셨다. 다들 사연 하나씩은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친해질 계기가 생겼다. 그 친구는 나이가 21살이었는데, 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돈을 벌기 위해 보조출연을 하러 왔다고 했다. 그 친구는 내 나이를 듣더니, 조금 의아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곤 물었다. 왜 30살인데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계시죠?라고 말이다. 그때는 그냥 간단히 대답했다. 아, 저는 회사를 퇴사하고 지금은 집에서 글쓰고 있어요, 라고 말이다. 그 친구는 나에게 무슨 글을 쓰냐고 물어 보았다. 나는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쓴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글 쓰는 사람을 처음 본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책 한권도 내지 않은 작가지망생이었다.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긴 했지만 뭐 어쩌랴? 그게 사실인 것을. 그 친구와는 9살이라는 나이차가 무색할 만큼,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 친구가 다니는 학교 이야기도 들어보고, 내가 20살 때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서로 공유하니 힘든 응원 시간이 뚝딱 흘러갔다. 좋은 추억을 남긴 것 같았다.

 소설가는 위대한 소설을 쓰기 위해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때 문득 들었다. 내가 만약 이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땡볕 아래 수백명의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응원을 하는 이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을까? 또한 이런 경험으로 말미암아, 나는 여태껏 우물 안의 개구리로 인생을 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고작 살아오면서 벌어본 돈이란 멘토링 몇 번, 과외 몇 번, 회사 월급 몇 번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또한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까지는 나름의 ‘서울대’ 프라이드가 심했다. 내가 서울대를 나왔는데, 땀 흘리며 돈버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나의 큰 오산이었다. 오히려 내 몇 없는 지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과외보다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육체를 써가며 돈을 번 이 경험이 비교 할 데 없이 가치가 있었다. 세상을 경험해 보라는 것. 그것이 왜 중요한지 그때서야 깨달았다. 연기에도 등장인물의 상태와 동일한 심정을 겪어보는 ‘메소드’ 연기가 있듯이, 소설에서도 ‘메소드’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 글을 써내려 가기 위해서는, 작가의 진심이 필요했다. 이 문장 하나가 내 땀과 피로 이루어진 문장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진정한 ‘경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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