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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Dec 05. 2022

달콤 쌉싸름한 짝사랑의 추억 (1)

저기, 제 이름은요...

책을 사러 서점에 들르면, 항상 보이는 문구의 책들이 있다. ‘지금, 사랑하라’, ‘사랑만이 위대하다’, ‘사랑의 기술’ 등등. 오래전부터 사랑의 가치는 고대 문헌에도 기록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는 중요한 이벤트였다.

 사랑을 책으로 배워서 그래, 너가. 내가 주로 들은 이야기였다. 내밀하고도 깊은 이야기지만, 내가 겪었던 사랑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쉽지가 않다. 어디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중학교 2학년 때, 동네 학원 누나를 짝사랑했던 그때의 나로? 아니다, 그건 너무 멀다.

 오늘은 잠깐의 내 짝사랑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풋풋하던 대학생 시절, 그것도 군대를 복학하고 나서 늠름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말이다. 24살 때의 일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는 일반적인 복학생답지 않게, 학교를 패션쇼장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외모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가방도 이리저리 매보고, 짝 달라붙는 스키니진도 입어보고, 머리 스타일도 바꿔가며 개성을 뽐냈다. 하지만 이렇게 외면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과 달리, 결국 승부는 내면의 양식에서 판가름 나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도 있고, 고백해 본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나의 섣부른 실수와 어리숙한 연애 실력(?) 덕분에 그 관계들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가끔은 대학교 CC를 생각하며, 상상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캠퍼스 교정을 거닐며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는 그런 모습. 나도 서울대학교를 다니면서 늘 낭만적으로 누군가를 그리며, 상상 속의 그녀를 만나길 손에 꼽으며 기다렸다. 아쉽게도 종종 기회가 생길 뻔도 하였지만, 결국 번번이 무산되었고 나는 시조 ‘황조가’의 화자처럼 떼지어 앉아있는 새들을 보며 혼자서 외로움을 삭여야 했다.

 나는 금사빠였을까?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절실한 사랑에 빠지는 유형이 있고, 운명적으로 첫눈에 반해 상대방과의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두 유형 중에 어디에 해당하였을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첫 번째 같기도, 두 번째 같기도 했다.

 내가 24살에 짝사랑했던 몽글몽글한 경험을 떠올려 보면, 그때의 나는 금사빠였던 것 같다. 때는 수업 시간이었다. 사범대학 학생이었던지라, 교육학을 반드시 들어야 했던 나는 혼자서 수업을 수강 신청했다. 같이 수업을 들을 사람도 없었고, 헌내기라 불리우는 늙은 복학생(?)들과는 전공 수업만 같이 듣는 걸로도 충분했다. 전역한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여자친구가 생기더니 나를 제외하고 대부분 연애를 하는 것 같았다. 조급함이 느껴진 나는, 어서 빨리 나의 짝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는 대부분 전공 수업들이었다. 나는 금요일 날은 강의를 비우기로 결심했지만, 졸업 사정상 수업을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해서 강의를 신청했다.

 나에게 교직 과목은 늘 따분했다. 수업에 집중을 못했고, 늘 다른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인터넷 세상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러 기사들을 읽으며 수업을 대신했다.

 나는 여타 다른 날과 같이,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딴 짓을 하고 있었다. 교수님은 몰래 도망가는 학생이 없는지, 교실 뒤에서 조용히 인원수를 파악했다. 나는 적어도 도망은 가지는 않는(?) 그런 학생이었다. 다만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었을 뿐.

 그날 수업의 대부분은 각 팀끼리 교재에 실린 내용들을 종합하여 발표하는 것이었다. 잠시 잠을 청할까 생각했던 나는, 피곤해서 눈을 붙이려고 교수님 몰래 앞자리에 갔다. 앞자리일수록 오히려 걸리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을 청하려던 찰나, 어디선가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꾀꼬리의 노랫말처럼, 아름다우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눈앞을 쳐다보니, 키가 무척이나 큰 어떤 여성분이 발표를 막 하려던 참이었다. 순간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아, 딱 내 스타일이다’라는 생각이 머리에 번쩍 들기 시작했다. 롱스커트를 입고, 밝은 색상의 단아한 의상을 입었던 그녀는 긴 생머리에 키가 컸다. 마치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을 처음 만난 차태현이 느꼈던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수업을 신청한 이후로, 처음으로 온 힘을 짜내 정신을 집중하며 그녀의 발표를 들었다. 조목조목 내용들을 발표하며, 차분하게 발표를 이끌고 가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날부터 나의 최애 수업은 단연코 금요일에 열리는 교직 과목이었다. 그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의 수업 게시판에는 출석 인원들의 출신 전공과 이름을 볼 수 있는 항목이 존재했다. 나는 다음 수업이 되었을 때, 교수님이 출석을 부를 때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후, 청각에 온 집중을 기울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이름이 불려졌을 때 그녀는 손을 들었고, 그때 나는 그녀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안 나는, 그녀 옆에 적힌 전공까지 볼 수 있었다.

 역시 사범대 수업이라서 그랬는지, 그녀 역시 나와 같은 사범대 학생이었다. 나는 그녀가 속해 있는 과에 내가 아는 친구들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 전공은, 대부분 여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군대에서 갓 전역한 복학생이었던 내가 그 과의 친구들을 알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때부터 그 여학생을 남몰래 흠모하기 시작했다. 금요일 수업 시간이 된다 싶으면, 한 시간을 넘게 거울 앞에서 서성였다. 혹시나 내 머리 스타일이 이상하지 않은지, 혹여나 그녀를 마주치는 순간 내 옷깃의 마무리가 이상하지는 않은지, 그녀가 날 보고 놀라지 않을지 그런 것들까지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단 한번만이라도 그녀와 인사를 나눠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서, 우연히 그녀의 정보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가는 퀸카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그녀를 흠모하는 남학생들이 한 둘이 아니며, 그녀의 당차고 멋진 매력에 나같은 극성팬(?)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녀와의 접점을 만들고 싶었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기말고사가 끝나고, 마지막 수업을 딱 한 번 남겨둔 날에,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결심했다.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말이다. 처음에는 초콜릿이나 과자를 그녀에게 주면서 말을 걸어볼까 고민했지만, 그건 너무 어리숙해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그녀를 떠올리며, 상상 속에서 그녀와의 대화를 조금씩 연습해 보았다. “안녕하세요?” “성함이?” “저는 누구라고 하는데..” 등등. 하지만 워낙 소심하고, 낯선 사람,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이성에게는 다가가기를 어려워했던 나로서는 많은 번뇌가 들었다. 그냥 짝사랑에서 끝이 나야 하는 것이냐, 아니면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 보아야 하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결국 나는 수업이 끝나고 친구와 사범대 건물을 향해 가는 그녀를 쫓아가 말을 걸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분명 나를 모를 것이고, 나만 그녀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무작정 일단 저질러보자라는 마음을 품고, 나는 그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아주 소심하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그녀는 못 들었는지 그냥 앞으로 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크게, “저기요”를 외쳤다. 그러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오똑한 코와 반짝거리는 눈, 그리고 흘러내리는 긴 생머리까지 그녀의 모습은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내가 말을 거니 그녀는 갑자기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 동동이라고 하는 사람인데요.. 그.. 음.. 다름이 아니라 혹시.. 음..” 하지만 다음 말을 끝맺지 못하고, 나는 계속해서 음..만을 외쳐댈 뿐이었다. 그녀는 나를 당황한 듯 쳐다봤다. 그녀의 친구 역시, 나의 갑작스러운 돌발 자기소개에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아, 저..음... 어디과에 몇학번인 동동이라는 학생인데요. 제 스타일이셔서 그런데 혹시 연락처좀 알려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말이다. 그때의 내 심장은 무척 두근두근거렸고, 얼굴은 빨개질 대로 빨개진 상태였다. 그녀는 다소 당황한 듯, 잠시 친구를 쳐다보더니 나의 폰을 받아들고는 번호를 건네주곤 다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나는 떠나가는 그녀를 보며, 그 자리에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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