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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Dec 11. 2022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사랑과 아픔, 그 한 끗 차이에 대하여

 최근에 아는 선배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한 해의 끝을 마무리하는 12월에 열린 결혼식인지라, 나는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위에 두꺼운 점퍼를 입은 채 길을 나섰다. 식장에 도착했을 때, 하객들과 사진을 촬영하는 선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배는 행커치프를 꽂은 채 멋진 정장을 입고, 신랑 화장을 한 늠름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수줍게 인사를 마친 나는 예식장으로 들어가 곧 열릴 결혼식을 조용히 기다렸다. 

 식장은 예상과 달리 크기는 작았지만, 그 덕분에 신랑과 신부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의 식장이었다. 업체들의 놀라운 기술 발전(?)으로 인해, 식장의 배경에는 거대한 꽃송이가 큼지막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요즘은 이런 식장도 있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곧 열릴 예식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머지않아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신랑과 신부 아버님의 덕담이 이어지고, 행복을 염원하는 친구들의 축가, 그리고 부부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식은 마무리되었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그들의 모습을 촬영했고, 또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며 미래의 부부가 될 그들을 한 마음 한 뜻으로 축복해주었다. 설렘과 기대로 부푼 예비 신랑과 신부의 행진 모습은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결혼식 장면

 

 언젠간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치른다면, 내 결혼식은 어떨까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비바람에 앞이 보이지 않고 화환과 의자들이 날아가지만 어딘가 낭만적인 그런 느낌의 결혼식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엄숙한 분위기 속, 주례를 읊어주는 아버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눈물 한방울을 흘리며 신체는 187cm의 커다란 장정이지만,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여린 순수한 소년의 결혼식을 떠올렸을까? 상상 속에서 수많은 결혼식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도 좋았고, 저것도 괜찮았지, 아마? 그래도 한 가지 정해 둔 건 있었다. 내가 결혼식에서 하객들 앞에서 틀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 특히 사회자가 큰 목소리로 ‘신랑 입장’을 외칠 때, 예식장의 문이 열리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행진하는 나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콕 찍어둔 노래 한 곡이 있었다.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OST로 쓰인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유미의 Knocking on’ heavens door라는 곡이다. 이 노래는 미국의 위대한 아티스트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노래로서, 죽어가는 어느 보안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시적 감수성이 풍부한 아름다운 노래이다. 청승맞게 결혼식에서 왜 이런 노래를 틀고 싶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딱히 구체적인 것들은 떠오르지 않는다. 음.. 생각을 한번 해보니, 이 노래를 들으면 나의 머릿속에서 오버랩되는 장면들이 수도 없이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누군가 다치고, 누군가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다. 부부라는 탄생의 시작을 알리는 결혼. 왜 그곳에서 난 누군가의 아픔이 떠올랐을까? 때로는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곤 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것들이 떠오른다고나 할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의 그리움과 슬픔이, 문득 사람들의 축복에 둘러싸여 식장을 행진하는 예비 신부의 장밋빛 미래와 겹쳐 떠오르곤 한다. 가끔은 사랑과 아픔이 동시에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최상의 기쁨이라는 ‘사랑’과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아픔’은 사실 다른 단어일뿐, 동일한 의미를 띠고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고,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어 주고 싶은 내게, 결혼식이란 지구 어디에선가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가 꿈에서만 그리는 자신의 ‘이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유미의 노래에서 느꼈고, 결혼식이라는 아름다운 행진 속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도 같이 느껴지기를 문득 바랐던 걸까? 특히 노래의 전주 부분에 흐르는 기타 선율과 조그맣게 치고 올라오는 유미의 목소리가 더해져, 그 노래를 틀고 내가 결혼식에서 행진을 한다면 왠지 축복과 슬픔(?)이 묘하게 떠오르는 감동적인 결혼식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유미의 Knocking on heaven's door라는 노래가 흐른다.

  물론 내게 결혼이란 아직은 너무나 먼 단어이다.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고,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은 내게 결혼식이란 그림의 떡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연결 되어 있지 않을까라는, 그런 연대 의식이 가끔씩은 떠오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만의 결혼식을 그리며, 특히 결혼 행진곡을 떠올리며 세상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 동시에 기쁨도 같이 담긴 용광로와 같은 역설적인 결혼식 상황을 그려보곤 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누군가의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감수성이 너무 풍부해서 그럴까? 아니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서 그럴까?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나의 생각들이(?) 결혼식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뭐, 언젠간 나도 햇빛이 가득한 아름다운 날에, 사랑하는 신부와 함께 행진을 하며 세상 사람들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그려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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