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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Dec 12. 2022

시절 인연

권진아의 음악을 들으며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그때는 내 모든 것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을 그런 인연들이 많았다. 사랑하는 연인에서부터 오랫동안 우정을 간직한 친구들까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각자의 삶이 바빠지면서부터 조심스레 그들과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그들을 만나도 언젠가부터 이전과 같이 더는 기쁘지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의 시련도 부닥쳐보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여러 번 느껴 보니 조심스레 가치관이 변해갔던 걸까?

 우리는 모두 시절 인연에 맞게끔 살아간다. 소중했던 그때 그 사람, 그때 그 것. 때로는 시간이 야속하기도 하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나도 중년 남성이 될테고, 거기서 더 시간이 지나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는 날이 오겠지? 지팡이를 짚으며, 머리는 하얗게 센 채로, 자식의 부축을 받고 어딘가로 향하는 내 모습이 가끔씩 그려지곤 한다. 그때가 되면 내가 맺었던 인연들은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때도 40년전, 50년전, 60년전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은 점차 희미해져 간다. 먹고 살기가 팍팍하니까. 우리는 삶을 마칠 때까지, 자신만의 인생이라는 노선에서 마라톤을 완주해내야만 한다.     


   권진아의 음악을 들으면 시절 인연이 떠오른다. 그녀가 부르는 노랫말에는 늘 그리움이라는 애틋한 정서가 담겨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또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덤덤하게 노래한다. 권진아의 음악에 심취한 나는 조용히 노트를 꺼내 한때 소중했었던 인연들의 이름을 적어본다. 비단 사랑했던 연인뿐만 아니라 개구쟁이였던 동네 친구들, 다정했던 이웃 아저씨, 지금은 볼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소중한 사람들까지. 지금쯤 그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우주가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그들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준다면, 난 그들과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을까? 야속하게도 시절 인연과는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그래도 내 기억 언저리 어딘가에서 한 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때 더 잘해줄걸.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말걸. 지금은 서로의 인생을 살아가기에 바쁘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인간관계의 폭은 좁아지고 온전히 나와 오랜 시간을 같이했던 인연들만 남게 되었다. 짧은 시간동안의 만남이었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해줬던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 지금은 남남이 된 채, 지구 어딘가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시절 인연들. 언젠가 그들과 다시 마주칠 수 있을까? 그때는 어색하지 않게, 환한 미소로 인사할 수 있을까?     


서로를 보다 가만히 걷다            

나는 너만 넌 먼 곳을 바라보다 

너의 마음의 시계바늘이 

이젠 나를 지나가고 있잖아      

                                                                                   

  …     


뜨거운 정오 아련한 오후

서늘했던 저녁이 지나가고

나란했었던 시계바늘이

둘이 되어 멀어지고 있잖아

이젠 나를 지나가고 있잖아     

                                                    

-권진아, 시계바늘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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